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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구원 (출애굽기 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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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목사님 2017.05.28 13:53
선교 보고, 불가리아 소피아, 카롤리나

목회의 변곡점. 새벽예배와 100명
개척해서 새벽예배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상암동, 서울노회, 마포시찰, 공덕 교회 김광집 목사님, 새벽예배
저희 부부 둘이, 저희 집사람에게 나오지 말라고, 두 분 집사님.
이미경 성도님과 서정훈, 합이 6
전병금 목사님, 이런 교회는 보지 못했다, 자립하느냐고, 100명

제가 20대까지만 해도 프로 야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고교 야구가 대세
그 중에서도 군산상고가 인기. 역전의 명수,
사람들은 역전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성경도 역전의 역사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다윗이 거인이고 골리앗이 양치는 목동이었다 하면

우리 나라 역사에서도 제일 유명한 장군은 이순신.
이순신 장군도 역전.
임진왜란 당시 우리 수군은 그야말로 볼품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도저히 일본수군과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12척을 가지고 330척과 싸워 승리하는 세계역사상 전례가 없는 승리를 기록하였습니다.
12척을 가지고 330척을 물리친 일 그 일은 정말 큰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반대로 이순신 장군이 330척을 가지고 일본의 수군 12척을 물리쳤다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큰 일을 행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이 330척가지고 12척을 못 물리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때때로 330척이 아니라 12척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12척이 아닌 330척을 주시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과 은혜는 12척을 가지고 330척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상황과 환경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330척이나 되는 우리의 적들과 당당히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들을 통해 당신의 위대하심과 높으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보여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를 위하여, 우리 가정을 위하여, 우리 교회를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집에 가서 ‘짬짜면’ 안주 이름에 ‘아무거나’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 갈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주 난처한 상황을 가리켜서 우리는 ‘진퇴양난’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이와 같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과 같은 진퇴양란의 절박한 상황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추격해오고 있는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답답한 상황으로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14장 1절과 2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많은 성경학자들은 지도를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수르 광야로 가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만약 그 길로 갔다면 홍해를 건널 필요도 없이 일주일이나 열흘이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성도들인데도, 다른 좋은 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그런 막다른 길로 몰아넣으시는지 이해할 수 없는 ‘진퇴양란’의 환경을 만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게 맞긴 맞습니까? 그렇게 사랑하신다고 하신 주님인데
그것은 우리가 우리 사이즈의 일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사여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은 “바로가 가까워 올 때에”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에 빠져 죽거나 아니면 애굽 군대에 죽거나  살아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먼저 백성들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겹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자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11절, 12절입니다.
여기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 줍니다. 
모세에게 달려가서 항변합니다. 애굽에 공동묘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죽게 하느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다고 원망합니다.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환경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범죄한 인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그들에게 일어난 첫 번째 변화가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두려워 나무 그늘 밑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두려움이라는 것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질 때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불신앙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본래 일 잘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 못하는 사람들은 연장을 나무랍니다. 연장 핑계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 나서야 합니다.
앞에 나서다 보면 얼굴도 드러나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욕도 먹고.그러나 이런 것이 두려워서 나서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다른 사람을 이끌어가는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두려워 하는 사람을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진정한 실패란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가 아니고 경험입니다. 훈련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이 참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모세의 반응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에야말로 우리는 우리의 바른 믿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것을 믿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절망의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믿음 때문이었다면 그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원망하고 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3절, 14절 말씀입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전쟁에서는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아니면 살기 위해서 도망을 쳐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웃기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느냐,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환경만 바라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군대라고 한다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립니다.
본문의 모세가 그랬습니다. 사방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방이 꽉 막혔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위를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모세는 손에 든 지팡이로 홍해를 쳤습니다. 그러나 이 지팡이는 보잘 것 없는 마른 막대기입니다. 불에 넣으면 재가 되는 부지깽이입니다.
도끼로 쪼개면 산산조각나는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사용하셨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모세의 지팡이가 특별한 지팡이가 아니라
모세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셨기 때문에
오늘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마른 막대기와 같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 군대와 같은 이 세상의 어떠한 불가능과 고난을 정복해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