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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으로 (누가복음 1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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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2017.04.23 14:26
요즈음 저는 제 방을 참 잘 즐기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기 때문.
그러면서 교회가 점점 좋아져 왔음을 생각하며 감사.
상암동 연립주택, 청담 순두부 앞 지하, 청담동, 지금 자리
정말 좋아졌습니다. 청담동에서 인테리어 할 때 제 방을 입구 쪽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냥 안으로.
화장실을 생각해 보아도 참 재미있습니다. 상암동에서는 그냥 욕실.
로고스 빌딩에서는 하나를 남녀가 같이.
청담동에서 비로소 남녀가 구별. 지금 건물은 비데까지

감사찬양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 회퍼의 신학명제는
“값싼 은혜가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유혹이다.” 그의 신학의 주제입니다.
흔히들 복을 달라고 비는데 그 속에 십자가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초점이 십자가에 맞추어져 계십니다.
마태복음 16:24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에 생명의 길이 있다, 하십니다. 그런데 흔히들 십자가는 간데없이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님만을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훈련이 없는 은혜, 훈련과정을 무시한 은혜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도 긴 시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때 훌쩍 책장을 넘기듯이 하루아침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십 년이라고 하는 긴 훈련 코스, 이 과정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사실 공부에도 지름길은 없습니다. 공부에 요행수는 없는 것입니다.
빨리 빨리 되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깨닫고 또 깨닫고.
그래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뎅이로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격도 마찬가지로 전기 스위치를 건드리면 반짝하고 불이 들어오듯이, 컴퓨터를 클릭하면 금새 눈앞에 화면이 뜨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인격은 많은 시간과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훌륭한 인격으로 키워져 나가는 것입니다. 
기나긴 훈련과정, 이 시련, 이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복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귀한 진리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주 의미심장한 질문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23절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잘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앞 18-21절에서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성격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힘쓰라’는 말은 ‘죽을힘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make every effort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권투시합이나 레슬링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싸울 때 죽을힘을
다해 싸울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구원의 문,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문제들과 죽을힘을 다해 싸우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처음에 예수님을 따를 때 기적을 바라고, 축복을 바라고, 형통을 바라고, 출세를 바라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따르면서 예수님의 교훈을 잘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 귀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하십니다.
이런 말씀 하시는 것을 보고, ‘아 내 소원성취, 아무래도 어렵겠는데...’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해 본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이에 예수님께서 딱 한 마디 말씀을 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저에게 제일 큰 기도제목, 화두는 어떻게 해야 교인들이 잘 살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여기 있는데 이것은 하지 않고 그냥 쉽게 가려고 해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기도도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우리 셀 리더가 해 주시겠지?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중도에 하차합니다. 모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출발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섰다가도 못하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일이 마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25-27절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25절을 보면 천국 문이 닫힌 다음에 가서 두드리고 “열어주소서”
그러나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이 말씀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6절을 보십시오.
“그때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또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 동네 길거리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구경꾼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방관자처럼 살았습니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바쁜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성경 공부는 무슨 성경 공부.
예수님은 이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예수님은 구경꾼들을 가리켜 행악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하십니다.
음식 같이 먹었다고 그게 구원의 조건이냐?
total commitment, 전적인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름만 가진 교인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늬만 교인이어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피상적인 교인, 헌신이 없는 교인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 “사람이 겪는 어려운 일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억울한 고통을 견디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하여 책망 받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 억울하게 공격당하는 것이 어렵다. 그 두 번째가 비밀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슨 비밀을 알고 나면 그것을 말하고 싶어서 못 견딥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이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때때로 우리에게 한가한 시간이 있습니다.
이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며칠 전에 점심 식사를 하는데 옆에 젊은 직장인들.
헬스 끊어 놓기는 했는데 가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자조 섞인 
운동기구가 있다고 건강해 집니까? 아니올시다. 운동을 하여야 합니다.
제가 운동을 열심히 할 때 아무 운동 기구도 없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기구가 필요 없습니다. 내가 하겠다는 의지, 결단이 중요한 것입니다.
운동은 나 스스로가 하여야 내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내가 봉사하고 내가 헌신해서 그 속에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고 보기만 하고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하십니다.
내 몫의 십자가를 조용히 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십니다. 
여러분,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존경받는 분들, 하나같이 한평생 외길을 간 사람들입니다.
휘청휘청하고 넓게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좁게 산 사람들입니다.
먹을 수 있다고 다 먹고, 잘 수 있다고 다 자고, 그러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넓은 세상을 좁게 사신 분들입니다. 스스로 좁혀 가면서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 나오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길도 좁은 길이지만 새벽기도까지 매일 나오는 것은 더 좁은 길입니다. 좁게 살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먼 훗날에 심판대 앞에 서면 너는 헌신하였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과연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좁은 문 뒤에 영생이 있고, 넓은 문 뒤에 사망이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좁혀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주님의 이 음성에 순종하여 기뻐하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