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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마가복음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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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2017.04.16 14:27
죽음이 아무리 강하게 보여도 새 생명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지나가고 새싹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다 죽은 것 같아 보였지만 생명의 씨는 그 씨앗 안에서 웅크려 때를 기다렸다가 봄이 되니 다시 살아났습니다.
해마다 새움이 돋는 봄날 이때가 되면 우리는 부활절을 맞게 됩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이 부활의 소식을 꽃봉오리에 새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었고,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의 날 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의 승리의 날입니다.
이 축제에 오신 여러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기독교 최대의 절기인 부활절입니다.
사실 초대 교회 사람들이 전한 메시지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예수 부활하셨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한 마디가 초대 교회가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세계로 기독교가 뻗어 나가는 시금석.
현재를 사는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 마음 속으로부터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역사적 사실 위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은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확실히 밝혀 두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일일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만약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가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 우리의 구원 그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부활절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많은 분들이 부활절의 계란을 말씀합니다.
계란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계속되고 있으며,
마치 겨울 뒤에 숨어있는 봄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 후에 계란을 하나씩 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집사님들이 정성껏 마련하신 흰 계란.
그런데 그 계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유정란과 무정란. 
유정란은 그 속에 생명이 있는데 무정란은 생명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분들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느 교인의 문자
계속해서 어렵지만 빈자리 없이 모두 꽉 채우는 전도를 하고 싶습니다.
올해 목표는 새하늘 교회에 좌석이 모자라서 성도들이 앉을 자리 없어
서로 양보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짖궂은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전도할 수 있는 능력까지 꼭 기도해 주십시오. 

교회가 불쌍한 사람들도 구제하고,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교회의 사명은 부활의 신앙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 병들어 죽어가는 자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돈을 한차 갖다 줘보세요! 그것이 그 사람의 소망이 되는가? 죽는데 돈 한 차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러나 그에게 부활소망을 줘보세요!
당신이 비록 이 땅에서는 병들어 죽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의지하면, 이 다음 부활하여 영원히 병들지 않는 천국에 갈 수 있다!
이 보다 더 좋은 메시지가 어디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그 마음에 심어주면, 그 인생은 병이 들었어도, 돈이 없어도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이 땅의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때는 새벽이었습니다.
2절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알패오의 아내)와 또 살로메가 찾아간 곳은 예수님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새벽은 특별했습니다.
그 날 새벽은 온 세상을 향해 위대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본래 새벽이란 단어는 ‘처음, 시작, 발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새벽에 시작됩니다. 하루도 새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루를 새벽예배로 여시는 분들이 복이 있습니다.
이번 주간 특별새벽예배는 저에게는 특별했습니다. 1/3의 인원이 참석.
인천 공항 근처 청도에서, 수지에서, 상암동에서 버스 타고.
새벽예배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어제는 설교 준비가 안될 정도로.

이제 새벽이 밝아지자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절을 맞은 우리도 영혼의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맑은 생명의 공기를 들이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안식 후 첫날 세 명의 여인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물론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확신하고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고, 다만 마지막 사랑을 드리러 갔습니다.
즉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려고 간 겁니다.
그런데 동굴에 갔을 때 이미 굴을 막았던 큰 바위는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는 곱게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나서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부활하면 갈릴리로 가겠다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제자들에게 빨리 알려서 갈릴리로 가셨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21장으로 연결이 됩니다.
제자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왜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가 아니고 갈릴리입니까?
삶에서의 부활은 현재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실패의 자리일 수도 있고, 권태로운 자리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진정한 부활이란, 엉망인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답은 언제나 지금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만약 지금 있는 자리가 답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라는 싸인을 주십니다. 떠나는 것은 그때 떠나도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주의하여 할 점은 작년에 하지 못한 일, 지난 달에 하지 못한 일, 어제 하지 못한 일 다시 하려고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새 날이 있고, 새 달이 있고, 새 해가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오늘 못한 게 있다면 밤에 “주님 제가 오늘 게을렀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믿음으로 주무십시오!
그러면 버리는 날은 그날 하루로 끝납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열심히 살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없이 그날 그날을 복구하려고 하면 시간 버리고 몸 버리고 일은 안되고, 이것은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고 결국엔 운명이 되어 버립니다. 너무 비약한 감이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새 날은 어제 일을 잊고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새 달은 지난 달을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새 해 역시 묵은 해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지 못하면 과거에 얽매이게 되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진정한 생활 속의 부활이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부활신앙이 정말 당신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까?
주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며 부활 새벽의 은혜를 가슴에 안고 힘차게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주님!
2000년 전 오늘 새벽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셔서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에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 좌정하여 주시사,
우리 모두 다시 만나 영원히 살게 될 것임을 기억케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