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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하나님 (로마서 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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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나이 17살에 미국을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여권(passport)가 잘 나오지 않던 시기였는데 럭키하게. 
백판, 원판, 방송국에서 빌리러 올 정도. 
그리고 포스터, 비틀즈, 라켈 웰치, 판넬을 해서 제 방에 붙여 놓았던 포스터. 

“I believe in the sun even when it is not shining. 
I believe in Love even when I am alone. 
I believe in God even when he is silent.”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쾰른 지하 감옥에 새겨져 있는 기도문.  
참으로 위대한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눈에 햇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느끼고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히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침묵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분명히 계십니다. 

유대인 포로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자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한 
‘인간의 탐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당시 6백만에 이르는 많은 유대인들이 끔찍한 생체 실험과 갖은 고문을 다 당하고, 가스실로 옮겨져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저자는 나치 독일의 그 죄악상과 유대인들이 그 핍박과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는가를 고발하고 연구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자포자기한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쇠약해져서 그냥 죽어서 나갔다. 
그러나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소망을 가지도록 격려하던 사람들은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더라는 겁니다. 
소원과 소망의 차이점. 소원은 나의 필요에 근거가 있는 것,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를 두는 것, 그러니까 소원은 나로부터 시작하지만 소망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게 차이점. 
그런데 만사가 형통할 때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많다고 해서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여유 있고 편안하기만 하다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싸우게 됩니다. 
여러분! 소망의 문제란 역설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난 속에서 강한 소망을 얻고, 역경 속에서 소망이 순수해 집니다. 
오히려 남달리 모진 역경 속에 있을 때에, 남달리 어려운 고난을 겪고 있을 때에 그 현실을 딛고 일어서서 더 강한 소망의 사람이 되는 것을 봅니다. 
사랑도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은 전쟁 속에서 피는 사랑. 우리 부모. 
사도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로마서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연단은 character.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이것을 그대로 연결하면 환난 없이 소망이 없으며, 소망이 없이는 기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그 소망에 근거해서 기쁨이 넘칩니다. 
거기에 새 의욕이 있고, 영광이 함께 따르는 것입니다. 

현대는 기쁨이 없는 세대라고 합니다. 잃은 사람은 억울해서 기쁨이 없고, 얻은 사람은 더 얻지 못해서 기쁨이 없습니다. 
적으면 모자라서 걱정, 많으면 지키느라고 걱정, 이래저래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구원받은 사람처럼 보인다면 나도 그들의 구원을 믿겠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말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이 없고, 늘 은혜를 말하지만 은혜받은 사람의 기쁨이 없다는 말입니다.  428장. 

의학이 발달해서 오래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어떤 분은 이야기 합니다. 나이 많아 구십 되고 보니 외로워서 못 살겠다 하십니다. 친구들은 다 가버리고 혼자 남아서 그렇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려고 해도 상대해 주지를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일리가 있더랍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도 역시 싫겠더랍니다. 
그러니까 너무 오래 사는 것도 바람직한 것 같지 않습니다. 
남 갈 때 같이 가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과학의 발달이 문명의 발달이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을 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기댈 곳이 없습니다. 
어느 정치가 선했으며, 그 어떤 제도가 사람의 소망을 만족시켜 주었습니까? 
어떤 교육이 인간을 인간되게 제구실했습니까? 
오늘 이 세대는 갈수록 캄캄하고 암담합니다. 
끝내 절망하고 주저앉을 수 밖에 없을 것만 같습니다. 
특별히 정치는 사드 문제로 중국과,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몰래 합의, 독도 일본과 대통령은 국정 농단으로 감옥.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1901년에 조선에 오신 방위량 선교사의 업적을 그의 사위 한부선 선교사, 1903년 평양에서 태어나 조선 말 유창. 
시편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사람의 생존본능 중에 으뜸이 식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먹고 싶은 욕망이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면 이제 입고 싶은 욕망,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집 없는 사람은 자기 집 한 칸 마련하려고 지독히도 고생을 합니다. 
또 사업하는 사람들은 사업하는 사람 나름으로, 정치인은 정치인 나름으로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갖은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지간히 채워지고 나면 허무라고 하는 절망의 심연으로 깊이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는 소망이 없다. 
미래학이란 학문이 있습니다. 산업사회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거기서 생기는 여러 가지 사회 병리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예측 대비해나가려는 학문. 
그런데 미래학을 깊이 연구하고 나서 나오는 결론이 무엇이냐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태학적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무엇으로 미루어보든지 미래가 없다. 
이것이 미래학의 결론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의 종말론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을 읽고 소망을 발견한 사람들이 참 신앙인. 
나도 들려 올려 간다. 

소망의 하나님, 그 분은 창조주이시며 그 분의 뜻과 섭리에 따라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은 약속하신 것을 변경하지 않으십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하나님이 약속하셨을 때에 저들은 약속을 어기더라도 하나님 편에서는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가셨습니다. 
언약하시고 성실히 지키시는 하나님, 그리고 성취하시는 하나님, 
긍휼과 사랑이 넘치는 분이시기에 그 분은 우리의 소망의 대상이십니다. 
나는 내게 소망을 둘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 능력을 믿고 그 역사를 믿을 때에 비로소 소망이 넘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현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며, 과학적인 이야기도 아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아닙니다. 
오직 눈을 들어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릴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그 엄청난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 오직 하나님께만 믿음의 근거를 둘 때에 비로소 참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본문은 “성령의 능력으로”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 나폴레옹. 성령의 능력으로 크리스찬.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온전하게 이루게 하기 위하여 때로는 
우리에게 환난이 있고, 역경이 있고, 어려운 일들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심령 속에 소망이 넘치게 하실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기쁨의 사람이 되고, 관용의 사람이 되고 화평의 사람이 됩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봄으로 이 힘들고 거친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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