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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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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지금이 내 인생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때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과연, 무엇이 가장 귀하고 소중할까요?

내 가족에게 남길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가장 귀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며, 가장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살면서 많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지만, 가장 큰 아픔을 남기게

만드는 것은, ‘좀 더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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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 사랑장, 14장 은사장, 15잘 부활장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1-3절 고린도전서 14장 은사장을 시작하면서 은사를 구해도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하십니다.

사도 요한 또한 요한일서 4:8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단언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단 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느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이 에로스냐, 아가페냐,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 용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에로스는 항상 나 중심입니다.

나의 필요를 위해서 사랑합니다. 나 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다 사랑이라고 합니다. 남편을 괴롭히고, 아내를 괴롭히고, 자식을 괴롭힙니다.

반면에 아가페라고 하면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으로 중심이 옮겨갑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까?를 생각하면서 배려하기 시작합니다.

 

유럽에 가면 집시들, 골치덩어리.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프랑스의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Carmen.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

당시 세비야에는 집시들이 많이 살았는데, 카르멘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여자 카르멘은 장교 호세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에게 싫증을 느껴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카르멘에게 버림받은 호세는 제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다가 이를 거부하는 카르멘을 죽이고 맙니다.

배신한 카르멘, 그러나 인간은 언제와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지만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 면전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는 저 사람을 몰라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라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새벽닭이 울자마자 극심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밖으로 나가서 통곡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 혹시 그들이 자기도 죽이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하는데 말씀대로 살면 손해볼까 봐!

 

만약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면, 누가 움직였는지 생각해 보라.

누가 움직였을 것 같습니까? 우리가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늘 제 자리에 계신데 우리가 멀리 도망가고 움직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도 도망가고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도망을 갔던 제자들은 자신에게 실망을 했습니다.

, 이제는 끝났다. 예수님께서 나를 좋아하실 리도 없고 내가 예수님을 볼 면목도 없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보잘 것 없고 예수님을 배반하고 낙심한 나를 다시 쓰시지 않을 거야. 그러니 갈릴리 바다에 옛날처럼 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로 가서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업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고기 잡는 일이 전문이었는데 지금 와서는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심한 허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 쓸모없는 존재야.”

이렇게 낙심하고 힘없이 돌아오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고기를 얼마나 잡았소?” “고기는 무슨 고기, 한 마리도 못 잡고 밤새 고생만 했소.” “그러면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져 보아라.”

그 말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 153마리를 그물에 가득 차도록 잡았다는 것입니다. 153 모나미.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부인하고 떠나 생업으로 돌아간 베드로나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오히려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빵과 물고기로 먹을 것을 준비해서 나와서 나와 같이 조반 먹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리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여러분에게 다가오셔서 말을 거시고, 먹을 것을 마련해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혹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망했거나 하나님을 실망시켰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 여러분을 찾아 오셔서 받아주시고 용서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죄인입니다.

계집종 앞에서 벌벌 떨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고, 저주하고 맹세하며,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죄로 말하면, 하나님을 저주한 죄요, 씻을 수 없는 죄요, 가증스럽고 비굴하기 짝이 없는 죄인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던 죄책감에 눌려, 절망하고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 그때 내가 너를 빤히 쳐다보는 앞에서 나와 상관이 없다고 했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관심은,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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