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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갈(아모스 8:11)

  

 

    기갈, 아모스 8장 11절, 200장. 

 

출애굽기 33-39장

 

이번 주 28일은 저희 새하늘 교회 개척 21주년 되는 날입니다. 

개척 21주년을 앞두고 우리 교회의 발자취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은 교회이지만 참으로 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선교 분야에서.

저희 교회는 차 사주는 은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가리아 플레벤 오브노바 교회 2번, 천안 말씀 세움 교회에도 봉고 차. 

그 교회 주보를 보면 말씀이란 믿음으로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잔소리로 된다는 뜻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 우물

저희 교회에서 캄보디아 여러 마을에 우물을 파 주었습니다. 그 우물 덕분에 사람들이 깨끗한 물도 먹고, 빨래도 하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우물 팔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들의 우상 앞에서 물 달라고 빌고만 있었습니다. 이렇듯 종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그 강대국이었던 이집트, 얼마나 어렵게들 살아가는 줄 모릅니다.

저희가 후원하던 캄보디아 정말 가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종교가 잘못되었습니다. 종교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정신과 육체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이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를 믿어도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믿어야,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를 바랍니다. 

작은 교회였지만 선교를 열심히 하니까 하나님이 부어주셨습니다.

2025년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자녀 셋을 키우며 외롭게 사역하시는 설나라 사모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움직이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어떤 시골 양반이 결혼식에 참석코자 서울에 있는 막내 딸 집에 다니러 왔습니다. 몇년 전에 오고 다시 몇년 만에 찾아왔습니다. 

그 골목까지는 들어섰는데 이 집도 저 집 같고 저 집도 이 집 같고 해서 딸네 집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좀 도와드릴 양으로 “어느 집을 찾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시골 양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담장 위에 검은 고양이가 앉아 있는 집을 찾습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어떻게 다릅니까?

결국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름다움도 변하고, 젊음도 변하고, 지식도 변하고, 명예도, 권세도 다 지나갑니다. 속절없이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지나가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영원한 가치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1:24, 25절을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인생이 그와 같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꽃은 마르고, 시들고, 떨어지는 법입니다. 그걸 아쉽게 여길 것 없습니다. 

지나가려는 것을 붙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버릴 것은 버립니다. 무가치한 것은 무가치한 것으로 돌려 버립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보다 더 영원한 가치의 것을 추구해 나갑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아마 칼 바르트를 말할 것입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말씀의 신학을 수립한 신학자로 유명합니다. 그런 칼 바르트가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꿈에 천국으로 줄서서 쭉 들어가는데, 들어가면서 보니 자기가 쓴 책을 수레에 가득 싣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문 앞에 버티고 섰던 베드로가 ‘네가 누구뇨?’하고 묻습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온 칼 바르트입니다.’ 

‘내가 너를 안다. 들어가라’ 그래 수레를 끌고 들어가려니까 ‘이건 안된다’

‘이건 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쓴 책인데요’

‘그래도 안돼. 오직 말씀만 가지고 들어가는거다. 만일 네가 정 이 책을 가지고 들어가겠다면 너도 못 들어간다’

여기서 그는 깜짝 놀라 잠을 깨었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에 의지할 때에만 생명이 있고, 길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있어서 성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있어서 기독교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그 책(the Book)의 종교라고 합니다.

말씀이 먼저 있고 그 말씀에 의해서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께서 광야에 나가 사십 일을 금식하시고 시험을 받으십니다. 사십 일을 굶어서 지금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시간입니다. 

그 절박한 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4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십 일을 굶으신 그 시간에도 필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오직 말씀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내 영이 살 수 없고, 이것이 없이는 내 정신이 살 수 없고, 이것이 없이는 내 육체도, 사회생활도, 인격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있습니다. 

성경은 건강한 영혼이 있고야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이 나온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한 두 주일 교회에 빠져도 괜찮겠습니까? 간간이 걸러도 괜찮은 것입니까?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육체가 병드는 것은 알지만 영이 병들어서 어느 사이에 마음이 황폐해지고, 비틀리고, 썩어져 나가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시편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그리고 성경의 또 하나의 특징은 누구에게나 개별적으로 현재적으로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읽는 것은 비록 아브라함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통하여 내게 말씀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2천 년전의 사건이지만 마음 문을 열고 기도하며 읽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현재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실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성경 너무 따지고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다가 성령의 감동이 올 때 해석이 제대로 됩니다. 참고서 보듯이 자꾸 분해하면 지식은 늘지 몰라도 확실히 감동은 적습니다. 그냥 읽으세요. 

그냥 읽으면 주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응답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본문 당시의 국제 정세는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아람 왕 벤하닷 3세가 앗수르에게 패하여 그 세력이 급속히 쇠퇴하던 때를 틈 타 이스라엘이 아람을 쳐 솔로몬 이후 정치적, 경제적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솔로몬 때의 왕국을 재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풍요로워지고 번영이 오자 저들은 사치하며 타락했습니다.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부정부패가 심해졌습니다. 

관리들은 부패하고, 백성들은 타락하고, 사치하고 방종했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모스를 통하여 이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런데 얼핏 생각하면 큰 심판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당장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망하리라, 경제가 결딴나리라, 당장 지진이 나리라, 당장 재난으로 인하여 다 죽어버리리라 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 땅에 기근을 보내리라, 굶주림을 보내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굶주림은 경제적 굶주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통고입니다. 

믿는 우리들에게 신앙인에게는 말씀이 들려지지 않을 때가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의 400년 간을 암흑기라고 합니다. 

왜 암흑기인지 아십니까? 그 당시에 먹고 살지를 못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선지서를 보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2:5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가서 전하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 그리하여 선지자가 이 땅에 있음을 알려라. 선지자가 떠나면 끝난 것입니다. 

그 후에는 말씀을 들을래야 들을 길이 없으리라, 아무리 말씀을 들으려고 헤매도 들을 길이 없으리라, 하십니다. 

 

이떤 분이 교회 성가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음치에다 박치였습니다. 그렇지만 성가대를 그만두라고 하면 상처를 받을 것이고, 그러면 교회를 떠나갈 것이 염려가 되어서 아무 말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부활절 칸타타를 하면서 일이 터졌습니다. 지휘자가 요청, 미안하지만 성가대 말고 다른 사역을 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집사님이 담임 목사님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뭘 그러십니까? 저는 목사님 설교 듣고도 계속 교회 나오는데요.

 

또 불행한 것은 교회에 나와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자기를 향한 말씀으로 듣지를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한 말씀으로만 듣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남편이 들어야 하는데, 이 말씀은 우리 며느리가 들어야 하는데, 이 말씀은 누가 들어야 하는데.

은혜 받을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 

말씀은 항상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personal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듣지 않고, 사회가 틀렸다, 누가 틀렸다, 누가 잘못됐다 하고 전부 다른 사람들을 향한 말씀으로나 들려진다면 이 사람에게서는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읽어야 할 책은 무엇입니까?

성경 밖에 없습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풍요 속의 빈곤, 풍요 속의 기갈, 이것은 바로 말씀의 기근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얼마나 절실하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믿음의 초점을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에 맞춤으로 

우리의 영이 윤택해지고, 우리의 미래가 보이고, 그리고 마침내 승리케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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