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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이사야 40:27-31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이사야 40:27-31, 354장 

 

요한계시록 7-13장

 

어릴 때 집 앞에 유도 도장이 있어서 유도를 배우러 갔는데 유도는 낙법부터 가르칩니다. 넘어지는 훈련을 합니다. 집어 던지러 갔는데 넘어지는 연습부터 합니다. 제대로 넘어지는 훈련을 해야 다시 일어나 상대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련한 축구선수는 공만 잘 차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태클을 잘 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축구선수가 태클이 들어올 때마다 걸려 넘어지고 발목을 다치는 선수는 제대로 공격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넘어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태클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쓰러져 낙심만 하고 있으면 한 걸음도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태클이 있을 때마다 상처받아 누워있으면 꿈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 공격과 갈등이 어느 정도 비판이 있지만 공격과 갈등과 비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찬이냐 아니냐는 어디로부터 힘을 얻느냐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가 아니예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 다 같이 읽은 본문은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서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이 실수하고 넘어지고 깨지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절망과 낙심 그리고 한숨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40장에 와서는 희망의 메시지가 선포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우울하고 어두웠던 메시지를 대신하여 밝고 빛나는 희망의 메시지가 선포되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연구가들은 39장까지를 제1이사야서 40장부터를 제2이사야서라고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며,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됨을 얼마나 실감- 하며 사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친밀한 사귐을 위해서 우리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일을 만납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승승장구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질병으로 고생할 때도 있고, 경제적인 위기를 만날 때도 있고, 가정적으로 혹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형통하다가 오늘 와서 형편이 반전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잠언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본문 2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곤란한 처지에 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들은 포로생활에 지친 나머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정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토로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아무 응답도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듯이, 믿는 우리들도 

때로는 곤고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가리우신 것처럼,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고난이 중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처럼 낙심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한시라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시편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438장

 

그리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할 일은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앙망한다’함은 희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 믿고 기다리는 것이 곧 앙망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만 앙망하는 것입니다. 

나의 방법을 사용하고 그래도 힘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앙망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직장 생활, 데이트.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같아 보이다가도, 세상에 나가서는 세상 방법대로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할 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은 위대한 기적들이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만 나온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왜? 우리가 경외하는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에 따라 행진하다보니 어느덧 홍해 가에 당도했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병거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고 이를 본 이스라엘 자손은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기면서 그냥 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자고 꼬드겨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 하더라.

모세가 대답하기를 출애굽기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더러 나가서 애굽의 군대와 싸우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홍해를 헤엄쳐 건너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그 사이에 난 길로 이스라엘 자손을 건너게 하셨으며 뒤 따라 들어온 애굽의 마병들을 홍해에 수장시키셨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 때에 북방의 강대국인 앗수르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앗수르를 막아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 왕은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앗수르 왕의 편지를 펴 놓고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열왕기하 19: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히스기야는 애굽에 구원병을 요청하지 않았고, 군대도 소집하지도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오직 여호와만 앙망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군을 치셔서 유다는 싸우지도 않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을 미워하던 신하들이 다리오 왕을 충동질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지기로 한 법령을 만들어서 왕의 어인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서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평소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하루 세 번 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혹 홍해같은 문제가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처럼 피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까? 앗수르 대군에 의해 포위된 히스기야처럼 속수무책이 되었습니까? 

여호와를 앙망하십시오. 여호와를 앙망할 때 홍해가 갈라지고, 사자의 입이 봉해 지고, 대적들이 멸망하고 말았듯이, 우리들의 당면한 문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거에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도무지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신다”고 했는데 새 힘이 무엇일까요? 

새 힘이 있으면 헌 힘도 있겠지요. 헌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힘, 내 자원, 내 경험, 내 지혜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자원이 전부인줄 알고 썩을 것들만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낡은 것이요 그것이 헌 것입니다. 

새 힘은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차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들! 

오늘날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기에는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세속의 유혹과 황금만능주의 풍조에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려면 특별한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호와를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앙망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주시는 새 힘을 받아서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힘있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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