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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으로(마태복음 7:7-11,누가복음 11:9-13)

   

 

      좋은 것으로, 마태복음 7:7-11, 누가복음 11:9–13, 197장

 

잠언 28장 – 전도서 3장

 

종교개혁 기념주일 독일 보름스 성당

“원수들이 보름스 성당의 기왓장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가리라”며 재판정에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말합니다. “Oh, God! Here I stand. I have no choice. 하나님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루터의 신발

 

오늘의 이 본문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같이 나와 있는 말씀인데, 

이 구절은 얼핏 보면 간절한 기도의 필요성으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랬으니 열심히 간구하면 들어 주신다 하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이 말씀은 절반도 이해 못한 게 됩니다. 

먼저 서로 병행구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두 절을 비교해 보십시다.

우선 마태복음 7장 11절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13절을 읽어보십시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여러분! 뭐가 다릅니까? 

마태는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밝혀놓지 않았어요. 

그런데 누가는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태와 누가의 두 부분을 조합해 보십시다.

구하는 자에게 하늘 아버지께서 주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저는 한신대학원을 졸업한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입니다. 

저의 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유명합니다. 학교의 학풍은 대단히 이지적이고 합리적이며, 그래서 신학을 아주 깊이 있게 연구합니다. 

신앙만큼이나 인간의 이성(理性)도 중요시 하구요, 또 눌린 자들,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사회의 잘못된 것을 보면 적극적으로 저항합니다.. 그래서 데모를 하다가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합니다. 

이름없는 민중들을 사랑하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바람직스런 신학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점도 있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기도를 꼭 소리 내서 그렇게 요란 떨면서 기도해야 하느냐 그겁니다. 

그리고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성령"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학문적으로는 인정은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체험이 없습니다.  

 

성령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아니,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자체가 이미 성령 받은 증거인데, 무슨 따로 또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그럽니다. 

물론 이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우리가 스스로 믿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이 역사하셔서 믿음 주시고 믿게 하신 겁니다. 옳습니다!

그래서 따로 성령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성령 받은 겁니다. 

또한 성령 자체가 하나의 인격이신데, 무슨 물건처럼 달라고 하거나, 선심 쓰듯이 주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달라고 기도하면, 신학적으로 좀 유치한 것처럼 보는 풍토가 그 내면에 깔려 있어요. 그런데 한 번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다.

성령 받았다고 해도 날마다 날마다 성령 충만은 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것은 결혼하는 부부와 같습니다.

결혼을 한 것으로 그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부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인가요? 결혼한 자체가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을 했으면 이제는 한 가정을 이루면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는 겁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다고 가정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노력해야지요, 마찬가지로 성령충만을 위하여 노력해야. 

 

목회를 하다 보면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부분이 많음을 배워가게 됩니다.

별별 생각이 다 납니다.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내 능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그 일이 가능합니다.

스가랴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여러분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영역인줄 알았던 일들이 하나님의 영역의 일이구나 하고 깨달아가는 것, 그걸 신앙의 성장이라고 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가장 주고 싶어 하는 선물은 성령.

왜? 성령 안에 좋은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평소에 달라고 하던 것들을 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딱 한 장만, 두 장도 아니고 한 장만 주시면, 딱 한 번만 기회를 줘 보세요, 제가 어떻게 하나?" 

그렇게 기도하던 사람이 성령의 충만만 받으면 그 기도가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성령이 오셔서 감사, 기쁨이 얼굴에 넘치는 거예요.

 

그리고 성령 충만해 지면 기도가 참 단순해집니다. 

복잡하던 기도가 단순해집니다. 왜냐하면 우선순위를 확실히 깨닫기 때문.

그러니 하나씩 하나씩 해결이 되어 갑니다.  

성령님은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런데 성령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만 주신다는 겁니다. 성령충만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알아서 주시는 게 아니라, 반드시 우리가 구할 때만 주신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7장 6절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또 오늘 본문 전에 누가복음 11:5-8 말씀이 나오는데, 밤 늦게 친구가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서 떡 세 덩이를 빌려 달라고 한 사람의 얘기가 나옵니다. 밤에 자고 있는데 떡을 빌려달라고 문을 두드리니 얼마나 귀찮고 성가십니까? 그냥 가라고 해도 안 빌려주면 안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합니까? "에이! 네가 내 친구라서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빌려준다!" 그러면서 빌려준다는 거예요. 

8절에서는 '간청'으로 표현합니다.  

이 말씀의 진짜 뜻은 '끈질김', '낯두꺼움', '몰염치함' 그런 뜻입니다.  

한 마디로 남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뻔뻔함' 그 자체라는 겁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가 뭘까요?

한 마디로 성령충만 달라고 떼를 쓰라는 거예요. 뻔뻔하게, 끈질기게, 낯두껍게, 몰염치하게라도 구해서 어떻게든 받아내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받아야 될 게 성령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후쯔파, 몰염치해야지 창조적인 생각이 난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주님은 우리더러 "귀찮도록 달라고 해라. 특별히 성령에 대해서는 더 그렇게 해라" 그러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얌전을 떱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그러는 겁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봐 주는 겁니까?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왜 그렇게 얌전을 떠냐구요? 구해야 합니다. 

성령충만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세 가지 기도를 하라는 게 아니라, 간청하는 기도를 세 번 반복하라는 것.

점잖게 구해서 안되면 막무가내로 하나님께 매달리라는 거예요.  

성령 충만을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믿음생활도 하루하루 이대로 살다 보면, 우리는 이 삶에 그냥 중독되어 버리고 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다 보면 우리 삶은 그렇게 굳어지게 되고 인생은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맙니다. 

뭔가 이제는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 속에 무언가 오는 감동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뭔가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하겠다 하는 마음이 생기십니까?

바로 그 감동과 결단을 주시는 분이, 그리고 그 음성의 주인공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을 받아들이십시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Raiders of the lost ark

제 아무리 무술을 잘 해도 권총 가진 사람에겐 까불면 안되겠구나 

 

그 권총 가진 사람이 우립니다. 성령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을 갖는 겁니다.  

이 성령 충만의 역사가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을 구하십시다! 하나님이 분명히 주실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과 우리 교회 위에 성령 충만의 역사가 일어나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그 성령 충만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과 우리 교회 위에 임하시기를, 

그래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은혜와 역사가 일어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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