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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교회 (사도행전 2: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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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해서 고생해야지 하는 목사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저희 새하늘 교회는 2004년 3월 28일에 상암동에서 개척되었고
2008년 7월에 이 근처로 이전하였고, 2011년 11월부터 5년간 청담동으로
그리고 오늘 2016년 11월 13일 새성전에서 첫예배를 드립니다.
이전하면서 놀란 것은 낭비가 심하였다.

예술에서 아우라(Aura)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독일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처음으로 썼는데 예술작품의 원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고함을 “아우라”라고 합니다. 모조품이나 복사품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진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고함을 뜻합니다.
광장 시장의 빈대떡 원조는 전경민 성도님이 가르쳐 주셨는데
아직도 장충동 원조 족발집, 충무 김밥 집.
교회에도 아우라가 있습니다. 진품의 교회, 원형의 교회, 명품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가운데 온전한 교회, 즉 이상향의 교회는
없지만 우리의 예배 가운데 사도행전적인 교회, 즉 아우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수많은 교회들의 구호입니다.
어쩌면 교회의 영원한 목표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의 모범이 되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요약된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은혜 받아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이기주의’라는 굳은 껍질에서 벗어나 자기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그 결과로 저절로 부흥이 된 교회였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성장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자꾸만 쇠퇴하고 죽어 가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교회도 건강하고 생명력이 충만하여 자라나야 하고, 교인수도 늘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은 함께 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한마디로 공동체의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의 교회에는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공동체 의식이 없는 교회와 성도는 그 심령에 이기주의만 가득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어떤 능력도 없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좋은 환경 속에 살면서도 쉽게 우울해 지고, 공허해 하는 이유가 소속감의 결여와 공동체 의식의 결여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한 새하늘 교회 공동체의
한 형제자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돌봐주고, 서로 세워주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성장하는 교회
바로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꿈꾸고 함께 만들어가야 할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대통령 퇴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피켓을 들고 나오는데 제일 재미있는 것이 ‘이게 나라냐?’입니다.
우리들에게 대입하면 ‘이게 교회냐?’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답답하고 괴로운 세상을 다 보시면서도, 우리 생각에는 당장 화끈하게 문제를 처리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한 가정을 선택하시고, 한 교회를 선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서서히, 마치 겨자씨가 자라나는 것같이, 조용히 조용히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선택의 도리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 명령하시면서 그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여러분, 이것을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네가 복되게 살리라, 하신 것이 아니고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먼저 한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가 선택받은 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무슨 천지개벽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감화하고 중생케 하고 가르치고 바로 잡고, 그리고 그
역사가 파급되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 history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방법입니다.

우선 아브라함을 보면 그는 한 평생 발붙일 만큼도 땅도 얻지 못하고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한평생 천막 치고 유목민으로 이리 방황하고 저리 방황하고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모든 민족이, 모든 나라가, 모든 열방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신분도 분명히 애굽으로 팔려간 하나의 노예였습니다.
보디발이라고 하는 애굽의 시위대장 집에 팔려간 노예입니다마는 그 요셉이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 바로 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그 집에 복을 주십니다.
그 집 주인 보디발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고, 안주인은 요셉을 유혹하는 요사스러운 여자였습니다. 복받을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창세기 39:5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요셉이 그 집에 있는 동안 요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망하는 세상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의인 열 명을 찾으십니다.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이 성을 사하리라, 그러나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5:1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한 사람만 있어도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한 사람의 믿음과 그 한 사람의 진실과
그 한 사람의 순종을 보시고 전체를 사하십니다.
그래서 전체에 대하여 진노를 참으시는 것입니다.
왜? 이 한 사람을 통해서 파급효과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세 가지 의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바로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일이다’
여러분, 지난 날을 탓할 것도 없고, 환경을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지난 주 설교 준비 힘 들었습니다. 이전하고 철거하고.
생각해 보니 준비 잘 된 주가 드물었습니다.
먼저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그리고 충성된 사람만 되면 어떠한
환경이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 하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복이 되는 삶을 살아갈 때 내가 속한 가정이 살고 내가 속한 교회가 살고 내가 속한 직장이 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알아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사단이 먼저 우리를 알아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가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무당으로 행세하는 몇몇 유대인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고 하면서 흉내를 냅니다.
그런데 귀신이 그들에게 15절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고 하면서 달려들어 그들을 때리고 옷을 찢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발가벗긴 채 그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우리가 위선과 가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잘 믿는 척하려고 하면 귀신이 먼저 알아봅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귀신이 더 잘 압니다.

초대교회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공의 요소라고 하는 것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의 가난한 어부 출신들로서, 자신의 몸 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지식이 남들보다 뛰어났습니까, 사회적으로 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인간의 성공 요소나 성공 조건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역사를 뒤엎었습니다. 그 위대한 로마 제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한 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의하여 점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변변치 않았던 사람들 120여명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4을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7절에 보면, 성령 충만함을 받았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문 47절을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바른 믿음, 건강한 믿음은 언제나 건강한 열매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생활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믿음이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과는 뭔가 다를 것만 같은, 그리고 달라야 한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찬송을 잘 부르고,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하고, 기독교의 교리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를 우러러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순결하고 성결한 삶을 바라보고
감동을 받고 싶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그것만이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이적과 기적의 역사, 이것이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을 주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증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 이적과 표적이 일어났고,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43절을 보면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그들은 성전에 한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성도와의 아름다운 교제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이러한 성도들이 모습으로 인한 결과를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의 영적 성장의 결과는 바로 구원받는 새로운 영혼들이 날마다 더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새하늘 교회는 죽어져 가는 이 땅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 가운데는 예배의 구경꾼이 없어야 합니다.
예배에 구경꾼이 없을 때에 우리 교회는 성령님과 함께 하셔서
부흥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는 신앙은 부끄러운 구경꾼 신앙이다.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새로운 영혼을 날마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11/13 11: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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