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에서, 여호수아 5:2-9, 347장
욥기 42장 – 잠언 1-6장
퐁당 퐁당 휴일을 보내면서 삶의 리듬이 많이 깨졌습니다.
10월을 맞이하면서 다시들 마음을 다잡아야겠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찬양
핸드폰이 우리 문화를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모릅니다. 특히 사진
예전에는 사진을 그냥 허투루 찍지 않았습니다. 필름도 비싸고 인화하는데도 돈이 많이 드니까 생각해서 한 장 한 장 찍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핸드폰에 디지털 카메라를 부착하면서 사진을 쉽게 찍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다녀와도 그 때 뿐이지 잘 보지를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행을 다녀오면 snaps라는 album으로 만들어 놓게 되었습니다. 지난 사진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 줄 모릅니다. 시간이 훅 지나갑니다.
제 취미는 사진을 보는 것인데 저희 집사람은 사진 찍는 것입니다.
대학교 때 사진반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진을 잘 찍는데.
사진을 찍을 때 피하여야 되는 것이 역광입니다.
그런데 사람 눈은 역광 속에서도 보입니다. 기가 막히게 잘 만드셨습니다.
1970년에 엔게디에서 불탄 채로 숯같이 생긴 사본이 발견.
엔게디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은신해 있던 장소로서 사해 인근.
이스라엘 문화재청 금고로 직행해 40년간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3D 기술의 발달로 그 불탄 두루마리 해독에 성공.
복원해 보니 레위기.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랍비들은 토라(모세오경)을 줄줄 외웁니다. 외워서 보존.
제 생각, 유대인들의 암기 능력과 집요함.
하나님이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 주신 대단한 능력. 암기.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예수 잘 믿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역광을 뚫는 사람의 눈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경을 보라고,
좋은 머리는 성경을 외우라고.
여호수아서는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하에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 1장부터 5장까지는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한 준비기간이고, 6장부터 여리고성 정복을 시작으로 실질적인 가나안 정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언약 받으면 끝났다, 아닙니다.
언약 받으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것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 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분의 방법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인 5장에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마지막 최종적인 점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서 길갈이란 곳에 첫 유숙지를 정하게 됩니다.
길갈의 뜻. 수치의 해소, 불행으로부터의 자유
길갈에서 수치가 해소되고 행복해 지는 길을 말씀해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전투에 임할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에게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서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례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잘라 내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에서는 세례, 침례가 됩니다.
할례는 구별됨의 표시입니다. 주변 가나안 족속과. 아랍 민족과의 구별.
다시 말하면 구별됨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 편이냐 하는 것입니다.
대한 민국 군인이냐? 북조선 인민군이야?
‘나는 하나님의 소속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속이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신 약속의 증표입니다.
믿음의 흔적을 몸에다 새기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그동안 그것을 제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인과 똑같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요단강을 건너왔다는 것에
가나안 사람들이 기가 죽어서 사기가 지금 팍 떨어져있을 때 이때 공격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창세기 34장을 보면 야곱의 외동 딸 디나가 히위 족속의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함. 그렇지만 결혼하자고 함.
야곱의 아들들이 “우리와 사돈 맺고 싶으면 너희들 다 할례 받아라”
그러고는 공격해서 히위 족속을 전멸시킨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리고 정복을 앞두고 여리고 군들이 언제 쳐들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여리고 앞에서, 정말 저 여리고를 무너뜨려야 내 인생이 달라지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서 붙들고 기도했더니 엉뚱한 응답.
정복 전쟁 후에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을 하셔야 더 합리적일 것 같은데
지금 전쟁을 앞 둔 상태에서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먼저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관심사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해서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를까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
궁극적인 목적은 같습니다. 그런데 이루는 방법은 다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싶으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싶으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 꽤 있습니다. 기독교는 착하게 살자가 아니잖아요.
오늘 내 인생이,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 나라가, 내 민족이 잘 되고 못 되고 있는 것이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지혜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 내 인생에 성공과 행복과 승리의 조건은 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 인생이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내 가정이, 내 직장이, 내 사업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순위입니다.
시편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그 자체가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축복을 받은 모든 인물들은 주께로 가까이 간 자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허물이 있을지라도 주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는 실수 투성이였지만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나아가다가 복을 . . 에서는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복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로마 군사들에 의해 체포되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완전히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기가 민망했던지 예수님을 따라가기는 했는데 거리를 두고 “멀찍이”(58절) 따라 갔습니다.
베드로가 안전거리를 두고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피해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멀찍이 두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 교회를 멀찍이 하고 사는 사람, 목회자와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 하다가 깊이 빠져서 골치 아픈 일 안 생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손해 보지 않으려다가 결국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손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할례를 받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 됨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실패 하고, 죄를 짓고, 어려움 당해도 “내 팔자” 이러지 않고 여기에 하나님 뜻이 있구나! 내가 깨달아야 될 일이 뭘까? 나에게 이 어려움을 주신 이유가 뭘까? 뭔가 뜻이 있을 거야!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 어려움 중에 고난의 의미를 찾고 고난을 이겨나갈 힘을 그 속에서 얻는데, 이것이 하나님 자녀 됨의 정체성입니다.
또 내가 좀 남보다 돈이 좀 있다, 지식이 있다하여도 그냥 단순히 이것 가지고 누리고 내 마음대로 내가 편안하게 하고 내가 내 생각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특별한 은혜를 주신 이 하나님의 뜻이 뭘까? 내가 인생을 마치기 전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내 삶의 사명이 뭘까?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이 축복을 받은 내가 남다르게 하나님 앞에 살아드릴 삶의 그 사명,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 사명이 뭘까?
그런 분들은 소명의 삶을 살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리고 무너지는 것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원하시는 것은 네가 정말 나의 자녀로 나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가? 그것 먼저 점검해 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중요한 이유는 이 백성들에게 온전한 순종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적들 앞에서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겠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순종은 내가 골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유익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여리고에 그 병사들이, 이스라엘 병사들이 할례 받고 다 누워서 끙끙거리고 앓는데 오면 다 죽는 겁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고 누워 있을 수있다는 것은 옛 사람이 죽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5:50에 보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우리가 혈과 육으로는 절대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할례는 우리의 혈과 육을 십자가에다가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혈과 육이 죽지 않으면 우리의 영이 절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십자가에 죽어버리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이 바닥이 나고 더 이상 내가 가망이 없다고 여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런 나에게서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내 육신대로 살고, 내 육신이 원하는 것, 내가 보이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면, 내 인생 속에는 육체의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그 삶을 주님은 여기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6절 말씀 읽어 봅니다. 주님께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말씀은 순종하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 나는 허용치 않아!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다시 한 번 신앙을 재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예수 안 믿는 것이고, 믿는 우리들에게 궁극적으로 있는 죄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제가 하나님 뜻에 복종하겠습니다.
바로 그 의지와 결단을 여호와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여리고성 내가 무너뜨려줄게 그 약속 보다 더 중요하고 더 급한 것,
주님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어서 오늘 내 삶을 먼저 고치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축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