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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익한 종 (마태복음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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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새하늘 교회는 2004년 3월 28일에 개척하여 2008년 7월 27일에
강남으로 이전하였고 2011년 11월에 청담동으로 이전하여 지금까지 5년간 이 자리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일 새로운 장소로 이전을 하게 됩니다. 3번째 이사.
여러 가지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제일 감사드리고 주님께서 주신 이 장소를 잘 지켜내지 못한 제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드립니다.
교회가 있는 곳이 발전해야 하는데
고무적인 것은 새로운 장소가 활기를 띄고 있다는 점.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달란트 비유입니다.
비유의 클라이막스는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기고 떠난 주인이 나중에
돌아와서 종들과 계산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때 주인은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맡긴 종에게는 칭찬과 상을 내리지만 한 달란트 맡긴 종에게는 책망을 하고 있는 것까지도 다 빼앗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성경에서 참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마지막 날 저와 여러분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주님은
똑같이 평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단 한번으로 지나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에 종점이 있다는 것과 그 날에는 주님 앞에서 살아 온 날에 대해 보고해야 할 시간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늘나라에는 ‘생명책’과 ‘행위 책’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주인이 포도원에 일할 일꾼을 찾아 장터에 나가 이른 아침에, 또 오전 9시에, 정오에 그리고 오후 3시에 각각 사람들을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 나가보니 그때까지도 일을 찾지 못해 놀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도 포도원에 보냅니다.
보통 하루 일은 6시에 끝나기 때문에 5시에 일꾼을 쓰는 주인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주인은 한 시간밖에 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종을 채용했습니다. 그 날 빈손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만날 생각에 낙심하고 있던 종에게 그 주인은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아침부터 일한 종과 1시간을 일한 종 사이에는 분명히 일한 시간과 일한 분량에 큰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계산한 것은 일한 시간이나 양이 아니라 일한 종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도 똑같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 받은 종에 비하면 결과는 두 배 반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같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주인이 칭찬하는데 “너는 남보다 더 많이 남겼기 때문에 이 상을 준다”고 하지 않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기 때문에 칭찬하고 있습니다.
컴퍼스로 원을 그릴 때, 큰 원이든 작은 원이든 크기는 달라도 원의 중심만 똑같으면 두 원은 결국 하나입니다. 큰 원이냐 작은 원이냐는 컴퍼스의 길이에 따라 결정될 뿐입니다. 주님은 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중심이 같은 것을 보시고 똑같이 칭찬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비록 한 시간 밖에 일하지 못한 종이지만 하루 종일 일한 종들에 못지않은 그 충성, 신실함 때문에 주인에게서 똑같은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충성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사역에 희생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를 보면 압니다.
사실 희생이 들어가지 않은 사역은 취미 생활입니다.
전혀 희생없이 신앙생활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여러분이 다섯 달란트를 맡았든 두 달란트를 맡았든, 하나님은 일의 결과가 아니라 여러분이 그 일에 바친 희생과 최선을 평가하십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한 달란트 받은 종에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가진 오해의 첫 번째는 인생은 무엇이든 안전하고
편안하면 좋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은 순탄한 인생, 문제없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것을 땅 속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어디 장사가 쉬운 일인가? 얼마나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될텐데, 괜히 장사한다고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주인에게 꾸중이나 듣게 될 것이고”
그래서 주인의 꾸중도 듣지 않고 고생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받은 그대로 지키고 있다가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안전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myth. 신들의 이야기.
인생에 고통이 없고 위험이 없는 안전지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바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처음부터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진정한 안전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고난 없는 삶을 사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고난 없는 삶, 문제없는 인생을 한 번도 약속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라 하시고, 그 지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에 없는 안전을 좇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상처를 피하는 길, 고난을 피하는 길, 희생 없이 사는 길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형통이란 고난이나 문제없는 삶이 아니라 그 고난이나 나에게 닥친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복이었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문제없는 곳은 어느 곳도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항상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무사안일과 현상유지는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안전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능력 범위 안의 일을 합니다. 자기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만 합니다. 늘 얕은 물가에서 물장구나
치며 놀지 저 깊은 바다 속을 헤엄쳐 보지 못합니다.
오직 내 능력 범위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쉽고 편안한 일, 문제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왜 믿음이 필요하겠습니까?
왜 하나님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문제없는 교회가 아니라 문제를 믿음으로 이겨내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그 문제 때문에 오히려 믿음이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래서 문제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간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열심히 문제를 만들어 내지만 롬팔이팔의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도 사용하십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만 하면 서로 하나가 되고, 그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누가 제일 목소리가 큰지 아십니까?
제일 고생 많이 한 전방 수색대나 해병대에서 근무한 사람들입니다.
거기가 제일 군기가 세고 훈련이 고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도 그럴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제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사람들은 주님 위해 한쪽 팔을 잃어버린 사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다 자신의 다리를 바친 사람, 복음을 위해 선교지에서 남편과 자식을 바친 사람, 그런 분들일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도 적지만 주님과 비슷한 흔적이 있네요. 주님 보세요.”
그때 십자가의 흔적을 지닌 성도들은 자신있게 주님의 가슴에 안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하는 성도들도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상에서는 진정한 쉼도 없고 휴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 지상에서 안전을 찾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 항상 결과에 대해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19:21에서는 ‘엄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믿고 맡겨주는 주인의 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을 꼭 자기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나를 잘되라고 하신 말씀인데도 책임과 의무로만 여기고 무거운 짐으로 생각합니다.
믿는 분들 가운데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아니라 일종의 강박감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강박감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때에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요구하십니다. 또 일을 시키실 때에는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최선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잘못된 생각에서 우러난
자기가 만들어낸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아주 잘못되었고, 조금 잘못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온전한 하나님의 이
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나면 참된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만들어낸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참된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된 후에는 주를 섬기는 것이 강박감이나 죄책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감사함에서 우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랑 없이 하는 일은 무거운 짐이지만 사랑하면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마지막 날 많은 성도들이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책망 받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받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깨닫지
못하고 수많은 기회를 놓친 것 때문에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리고 오셔서 반드시 우리와 결산하실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의 남은
생을 올인하여 주님의 칭찬과 상급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Date: 2016/11/06 1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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