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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통제(에베소서 4:22-29)

   

 

     자기 통제, 에베소서 4:22-29, 390장. 

 

요한복음 14-20장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을 충고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장기 바둑 훈수  

더 나아가 남을 비방하는 일. 뒷담화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마도 자기를 다스리는 능력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참으로 자기의 마음과 인격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용사보다도 

더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그는 진정 위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등장인물 중 예수님 이외의 가장 위대한 사람은 당연히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학식도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믿고 나서 나의 나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이 로마서에 잘 나타나 있는데, 로마서를 읽어 가노라면 그의 진실함과 솔직함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그의 얼굴도 보지 못한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로마서 한 가운데인 7장에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리고 25절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더 나아가 고린도후서 12장 7절을 보면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육체의 가시’가 그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특별히 이 문제를 

놓고 세 번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네가 지금 받고 있는 은혜만으로도 족하다, 충분하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간단합니다. 받아들이는 우리가 복잡하지요.

 

바울은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가시가 있어야 한다. 가시가 없으면 교만해지고, 가시가 없으면 방종하니까, 이렇게 쿡쿡 찌르는 것이 있어야 내가 겸손할 수 있고 진실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때로 내가 원치 않는 고통도 있고 질병도 있습니다. 실패도 있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괴로운 사정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주후 1-3 세기의 기독교인들, 그러니까 초기 기독교인들은 잔혹한 박해를 받으면서 역경 속에서 너무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만날 때마다 이렇게 속삭였다고 합니다.

"데오 그라티아스!" 이 말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데오 그라티아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 어거스틴은 그들은 환경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을 오늘 소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고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고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옵소서! 그리고 고칠 수 없는 것과 고칠 수 있는 것을 식별할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무릅쓰고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용기를 구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마다하시는 일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그대로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하여 냉정을 구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쳐야 할 것, 고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용기와 냉정함과 지혜를 주옵소서! 

참으로 귀한 기도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도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여러분들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을 우리는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강도 만난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외딴 곳입니다. 그런데 레위인, 제사장들이 지나가다 보았지만 이 사람들은 자기공동체에 충실해서 자기 일이 아니라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천대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 사람을 봅니다. 이때 사마리아 사람이 ‘지금 강도가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을 돕는다고 어물어물하다가는 내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어차피 죽을 사람이다. 죽을 사람 돕다가 나 죽을 것 없잖은가?’ 이렇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도망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돕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서 이웃에게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이 사마리아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 문제는 ‘이기주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기주의로 살면 나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습니까? 

이기주의가 얼마나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고 산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나를 자꾸자꾸 불행하게 만들 따름입니다.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남을 섬기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옛사람은 여전히 살아서 들먹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목회자가 된 지도 꽤 되었는데도 여태 옛것이 남아있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낡고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깨끗이 목욕한 후에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잠시나마 기분이 얼마나 산뜻하고 좋겠습니까?

인격도 그처럼 쉽게 바뀐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의 변화는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 많은 시련 가운데 변화해 갑니다.

여러분, 10년 지났으니까 이제 괜찮겠지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잠자고 있던 본성이 한순간에 화들짝 깨어난다는 말씀입니다. 

믿는 것은 순간이지만 성화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갓 태어난 호랑이 새끼를 데려다 우유를 먹여 키우면 마치 강아지처럼 키울 수 있습니다. 아주 순하게 잘 자랍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 가서 제 종자인 호랑이를 만나면 그 순간에 사나운 호랑이로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여러분, 10년 지났으니까 이제 괜찮겠지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잠자고 있던 본성이 한순간에 화들짝 깨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려 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긴 세월동안 애쓰지만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찰나적입니다. 

단 한 순간에 데꺽 돌아가 버립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구원받은 자로 살며, 구원을 지켜가며 사는 생활이 얼마나 긴 훈련이요 

긴 과정인가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자기를 극복하는 비법을 오늘의 본문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25절에서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합니다. 

저희 집 식구들은 권투를 참 좋아 했습니다. 어떤 해설자라도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방어만 해서는 권투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손을 내뻗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를 지켜야 합니다. 수동적이요 소극적인 자세로 방어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참된 것을 말하라” 어떠어떠한 말은 하지 말아라,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아라, 이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본문은 참된 것을 말하라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26, 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분을 품지 말라, 분한 감정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을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분이 있어도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오늘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한번 분을 품으면 시간이 갈수록 오해가 점점 더 커지고, 경직되고, 고집스러워집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풀 것은 빨리 풀고 용서할 것은 빨리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분을 품고 있는 상태가 여러 시간, 여러 날이 계속되면 마침내 사단이 발동을 합니다 ‘한 번 붙어봐라, 싸워라, 터뜨려라, 가만히 있지 말고 퍼부어라’ 어느새 마귀의 종이 되어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고 맙니다. 

내가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마귀가 좋아합니다.

장로님과 목사님이 붙었는데 서로 마귀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거기에 29절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은혜를 끼치게 하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이 좋아할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 우리 한국 여성들이 얼마나 남편을 사랑합니까? 

그처럼 사랑하면서도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가관입니다. 

좋은 말 다 놔두고 꼭 나쁜 말만 골라 합니다. 

마음으로 사랑한다고요, 사랑하거든 표현을 하십시오.

그리고 표현을 하더라도 기를 살리는 표현을 하여야 합니다. 

내 배우자 기가 살면 그 기가 다 내게로 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께서 피 값으로 사신 새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은혜를 사모하시면 주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로 인해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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