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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길 자를 택하라(여호수아 24장 15절)

   

 

   섬길 자를 택하라, 여호수아 24:15, 430장

 

호세아 11-14장, 요엘 1-3장

 

우리 교인들의 기도 제목, 경제와 건강

오늘 설교에 나오는 성경 말씀은 필수. 암기하고 실천할 수 있게 노력.

 

멀고 험한 이 세상 길

 

저희 집 뒤에는 인왕산이 있습니다. 

자그마한 산이지만 오르는 코스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각기 코스가 다 나름대로 특징이 있고 또 매력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번에 한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많은 길이 있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따라 하거나 흉내내어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힘들고 고달픈 삶은 사는 까닭도 알고 보면 우리의 선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닙니다.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길을 선택한 다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합니다. 한 사람과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귀기 시작한다면 다른 이성과의 관계는 끊어야 합니다. 양다리는 관계를 깨어 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분명한 선택을 하고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열왕기상 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삶이 피곤한 것은 애매한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애매한 선택을 하게 되면

눈치를 보게 되고 머리가 복잡해 집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머리가 심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온도는 미지근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하는 선두에 섰던 백전노장의 여호수아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하나님 앞에 가기 직전, 고별 설교를 하는 대목입니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특히 이스라엘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한 시대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는 장면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누구를 섬길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교의 문화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여호와만을 섬길 것인가의 문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땅은 정복했는데 영혼은 정복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달라집니다. 

바른 선택을 할 때 축복이 됩니다. 

 

저는 지금 저의 삶이 꿈과 같습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많은 복 중의 가장 큰 복, 가장 첫 째 되는 복을 말하라하면 저는 서슴없이 ‘믿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큰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믿어지는 정도의 작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정말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겨자씨만한 믿음에 천국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생각하면 할수록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자연과 우주와 수많은 생명들과 사람들과 저 자신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저절로 생겨나 진화하였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한 번 보십시오.

그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어떻게 진화되어서 생겼다고 믿어지십니까?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모두 다 그 창조주의 계획과 섭리를 따라 순종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그냥 다 자기 것인처럼 생각하고 

제 멋대로 지배하려 함으로 세상을 파괴하고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도 창조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법 지혜롭고,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능력이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었습니다. 

제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인간이 하는 짓 모두가 결국은 다 세상과 세계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제 생각과 계산으로는 이 세상은 망해도 벌써 망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참으로 신기한 것은 세상이 아직 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와 까닭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는 비교될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세상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격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즉시 건져주지 않으시고 그 어려움에 버려 두시는 때가 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훈련과 연단을 위해서입니다.

훈련과 연단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깨우치시기 위하여 잠시 고난과 역경 속에 우리를 던져두시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거기서 죽고 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사람과 세상을 보면 여전히 죽고 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선택하지 않으셔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버리셔서가 아닙니다.

우리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아서입니다. 

사랑과 구원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미신 손을 우리가 붙잡지 않는다면 구원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에도 보면 ‘그를 믿는 자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라는 말씀 속에는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이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축복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하심도 믿음이 없다면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어지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나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오른 쪽으로 갈 때 하나님 한 분이 왼 쪽이라 말씀하신다면 두 말 없이 하나님 편에 서서 홀로 왼 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믿음은 입으로 ‘주여. 주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믿음은 그렇게 하나님 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고 그대로 따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믿고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죽을 것 같지만 각오하고 그 믿음의 길을 선택하면 조금씩조금씩 편해집니다. 길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즐겁고 재미있어 집니다. 

오늘 부른 찬송가 가사 중에 정말 은혜가 되는 가사는 이것입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그는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의 복을 맛본 사람입니다. 믿음의 축복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편에 서서 주와 함께 걷는 길이 좁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즐겁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즐겁기 때문에 자기는 ‘날마다, 날마다’ 그 길을 걷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애굽에서 건져내신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 음성을 들으시고 그들을 애굽의 바로에게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구원을 성경을 보고 믿지만,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그 소설같고, 동화 같은 사실을 눈으로 보고 실제로 겪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면서부터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식과 법을 전수하지 못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과 길을 동경하여 흉내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호통을 친 것입니다. 15절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아멘. 아멘.

 

워렌 위어스비 목사가 아주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대표적인 우상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루어진 일의 공로를 자기 자신에게 돌릴 때 자기가 우상이 된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길 때 그 선물이 우상이 된다.” 

그렇습니다! 첫 번째 우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어떻게 됩니까? 예배에 가끔 빠지고 기도도 드문드문 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순간 내가 우상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우상은 바로 선물의 우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생기면 그 때부터 바로 그 돈을 우상으로 섬기게 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권력이나 명성 같은 것도 순식간에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또한 주목할 것은 여호수아가 말씀을 외쳤던 장소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친 곳은 세겜이었습니다. 

세겜이 어떤 곳입니까? 세겜은 선택과 결단의 장소로써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했던 복된 장소입니다.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만난 곳이 세겜입니다. 또한 야곱이 오랜 방황에서 돌아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 곳도 세겜입니다. 

오늘 우리의 세겜은 과연 어디입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새하늘 교회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세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바른 선택을 배우게 되지 않습니까?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올바른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난다고 합니다. 

올바른 결단을 우리로 하여금 내리게 하는 곳이 바로 이 새하늘 교회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 택하라”입니다. 

선택을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금융전문가들.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단의 때를 미루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타이밍을 알고 만사를 제치고 행동합니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때에 맞게 반응하는 것이 분별력입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미루면 위험합니다. 마귀가 가장 잘 쓰는 전략이 “내일 하라”는 것입니다. 미루다 보면 결국엔 못하게 됩니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사람이 내일 하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이런 결단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수아 한 사람의 결단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단호한 행동은 수만 마디 말보다 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모범이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여호수아처럼 결단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는 각오를 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단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5:1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여호수아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결단하자 이 결단의 파장이 온 이스라엘에 미쳤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모두가 넘어지고 타협하고 흔들리고 있는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한 분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선택하고 결단하고 따르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선택에 제 인생을 걸고 싶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여호수아의 고백을 저도 하며 살고 싶습니다. 늘 하나님 편에 서서 좁지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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