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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나라 사랑(로마서 9:1-5)

  

 

     그리스도인의 나라 사랑, 로마서 9:1-5, 457장

 

다니엘 9-12장

 

호세아 1-3장

 

기독교는 고난과 더불어 확장되는 종교라고 하는데 한국교회도 

지난날 고난을 통해서 기도하는 체질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면서 이 어려운 난국과 

역사의 굴곡을 헤쳐 나왔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전통입니다. 

하나님은 나라를 위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고, 

느헤미야와 에스더와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한국기독교는 애국심을 가지고 현실에 참여한 종교입니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1919년 3.1운동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1919년 3월 1일

자주 독립을 외치며 우리 조선 민족이 모두 궐기했던 날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기억나는 사건이 있던 해나 날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2월 25일하면 1978년 56년 전 2월 25일 군입대

왕십리 한양대 밑에서 눈물로 이별

유진 군대, 차 뒤편에서 논문쓰면서

1919년 3월 1일은 삼일절입니다. 매해 이 날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길

유대인들의 교육의 기본,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마라.

일본과의 화해, 화해의 모델은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사과

사과를 받아들일 때 화해, 사과하지 않으면 화해는 없습니다.

 

일본은 1910년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국제적인 관심은 한반도가 일본에 귀속된다 할지라도 일본이 남하해 오는 러시아의 세력을 막아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입장이었기에 한일합방에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고 자유를 잃었음에도 호소할 데가 없는 불행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3.1운동은 이러한 우리 민족이 민족적 자주생존권을 주장함과 동시에 자유를 선언한 운동입니다.

 

누구 누구 하지만 3·1절을 대표하는 인물은 유관순입니다.

그를 가리켜 한국의 잔 다르크라고 합니다. 

일본은 만세시위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회유하였지만 

유관순은 매수도 회유도 되지 않았습니다. 유관순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일본의 갖은 잔악한 술책에 저항하다 마침내 1920년 10월 12일 18살의 

꽃다운 생을 마쳤습니다. 

유관순은 비석이 없어 무덤을 찾을 수 없고, 유품하나 남겨 두지 않은 채, 오직 수의를 입은 사진 한 장만을 남겨두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국과 신앙을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파한 선교사들은 교회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기독교인들이 민족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신앙적인 행위가 아닌 것으로 잘못 생각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그 시대의 역사적 과제 해결에 무관심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확신한 기독교인들이 신앙적 결단으로 3.1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애국과 신앙을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 순국이 곧 순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재 선생이 감옥에 갇혀서 모진 고통을 치룰 때에 누가 이 일을 시켰냐고 매질을 할 때에 그는 시종일관 하나님이 시켰소라고 하고 만세 운동 본부가 어디냐가 하면 하늘에 있소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이 신앙고백이 한국 교회의 부흥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구원하실 때 먼저 한 사람을 선택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1960년대에 큰 변화가 있었던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와 필리핀입니다. 

싱가포르는 1965년에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여 나라를 새롭게 세우게 되었는데 리콴유가 초대 수상이 되어 26년간 장기 집권을 했습니다.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던 해인 1965년에 필리핀은 마르코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20년간 장기 집권을 했습니다. 

그런데 6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습니다. 

가장 가난했던 싱가포르가 가장 부자 나라가 되었고, 우리나라에 경제적인 지원을 했었던 필리핀이 가장 못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자원이나 인구를 보면 당연히 필리핀이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고, 싱가포르가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오늘 우리들은 이 부분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사람이 나라를 다스렸느냐?’의 차이입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싱가포르는 리콴유가 총리가 되어 청렴결백하게 나라를 다스려 부정과 부패가 자리를 잡을 수 없도록 정직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공무원의 비리는 결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싱가포르에 가 보시면 얼마나 깨끗하고 질서가 잘 지켜지는지 모릅니다.

거리에는 담배 꽁초 하나가 없고 택시도 정해진 구간에서만 손님을 태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불편할 것 같은데 그 시스템을 알고 나니까 정말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필리핀은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삶을 살다가 결국은 해외로 추방되고 맙니다. 

나라 곳곳이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멜다라는 부인이 한 몫을 톡톡히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필리핀을 가 보면 정말 못사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 큰 것입니다. 결국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3.1운동은 신앙의 발로였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애국자가 되어야 된다고 말씀하고, 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런 길을 살아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도바울의 글을 한번 읽어봅시다. 

1절과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거하노니”

사도바울은 그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을 위한 그릇, 사도로 택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주로 유대인보다는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더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 땅에서보다 외국, 이방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한 사도였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큰 근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근심과 고통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근심이고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지 먼저 유대인들을 찾아갔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바울이 새로운 마을에 들어가면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거기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그들이 마음을 열고 그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데, 유대인들은 한결 같이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에게는 고통이요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내 동족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내가 어떤 대가라도 다 치룰 수 있다고 그렇게 고백합니다. 3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다”

오늘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나의 형제 골육 친척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좋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저주받아서 지옥 불에 던져지더라도, 내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을 위해서 너무 비통해하고 너무 가슴 아파하며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바울의 간절한 고백은 이제 10장 1절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바울은 소원은 오직 한 가지, 내 동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 기도를 드린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입니다. 모세가 십계명판을 받으려고 시내산 위에 올라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들고 춤을 추며 먹고 마시고 음란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려고 할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건 기도였습니다.

출애굽기 32:32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것이 바로 모세의 마음이었고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은 나만 잘되면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장 큰 사명은 기도하는 사명입니다. 

우리가 영적 파수꾼이 되어서 이 민족이 죄로 물들지 않도록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고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외국에 나가도 대한민국 여권만 가지고 가면 어디 가서도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나라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나라를 위해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선조들은 찬송가에 애국가가 있어서 예배 시간에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축복하셔서 이렇게 우리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은혜 안에 살게 하신 것이 주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도 잃어버려가고, 국가에 대한 고마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어느 역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3.1.운동이 없었다면, 2차대전이 끝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일본에 편입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아셨습니까? 

우리는 3.1.운동이 있었기에, 우리가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치지 않는 고통을 말하던 사도바울의 신앙으로 오늘도 이 나라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 사랑이 신앙으로 승화되어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새생명을 전해주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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