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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여호수아 5:2-9)

  

 

     예레미야 14-20장

 

할 례, 여호수아 5:2-9, 338장

 

어느 여작가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쓰든지 항상 글의 첫머리에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어둡고도 우울한 밤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하루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여보, 시작하는 글을 좀 바꿔보지 그래?” “그럼 어떻게 바꿔볼까요?”

“음, ‘옛날 옛적에’라는 말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알았어요.” 

부인은 남편의 조언을 좋게 받아들여서 큰 마음을 먹고 첫 문장을 다시 썼습니다. “옛날 옛적에 어둡고도 우울한 밤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사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만일 내가 저 사람처럼 부모를 잘만났더라면. 

’‘내가 만일 저 사람 처럼 머리가 좋다면. . .’ 

‘내가 만일 . . . .’을 반복하며 삽니다. 

남의 떡이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것은 과소평가합니다. 

자기는 늘 작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세월은 다 지나고(허송세월) 나를 알아 줄 사람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사회에 가든지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들어서 일꾼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본래 일 잘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 잘못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많습니다. 연장을 나무랍니다.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을 보면  

그들은 달란트를 받고 머뭇거리지 않고 곧 바로 가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극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가지고 가서 땅속에 묻어두었습니다. 

두려워서. . . 얼마나 자기가 맡은 일에 소극적입니까? 

누가 이런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그래서 주인은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소극적, 수동적인 사람은 있는 것도 뺏깁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두려워서 나서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다른 사람을 이끌어가는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진정한 실패란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가 아니고 경험입니다. 훈련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이 참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언약을 받았다, 언약 받으면 끝났다, 아닙니다. 

언약 받으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것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 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분의 방법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여호수아 1장부터 5장까지는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한 준비기간이고, 

6장부터 실질적인 가나안 정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인 5장에서는 싸우기 전 마지막 최종적인 점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서 길갈이란 곳에 

첫 유숙지를 정하게 됩니다. 길갈의 뜻. 수치의 해소, 불행으로부터의 자유

하나님께서 길갈에서 수치가 해소되고 행복해 지는 길을 말씀해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전투에 임할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례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잘라 내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에서는 세례, 침례가 됩니다. 

즉 할례는 구별됨의 표시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 편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는 하나님의 소속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속이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흔적을 몸에다가 새기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그동안 그것을 제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인과 똑같아지고 말았습니다. 광야에서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느라 택한 백성의 표시인 할례를 누구도 받아야 된다고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받으라는 얘기는 지금의 우리 상황에 적용해 보면, 지금 내가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점검해 보아라’와 똑 같은 겁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여리고 앞에서, 정말 저 여리고를 무너뜨려야 내 인생이 달라지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서 붙들고 기도했더니 엉뚱한 응답이 

오는 거예요. 정복 전쟁 후에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을 하셔야 더 합리적일 것 같은데 지금 전쟁을 앞 둔 상태에서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먼저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관심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위해서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이 최대의 관심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다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싶으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싶으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기독교는 착하게 살자가 아니잖아요. 

오늘 내 인생이,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 나라가, 내 민족이 잘 되고 못 되고 있는 것이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지혜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 내 인생에 성공과 행복과 승리의 조건은 하나님께 다 있습니다. 

그러기에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내 가정에서, 내 직장에서, 내 사업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순위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는 의미가 뭡니까? 

주님과의 우선순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서 살아갈 때,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신다는 그 의미가 이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진정한 성공에 대한 DNA는 주님에게만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원래 성공 DNA가 없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위해서 주님께 구하십시오. 

가족을 위해서, 사업을 위해서, 자녀의 합격을 위하여, 집 잘 팔리게.

그런데 주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순위입니다. 

 

여러분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합니까? 

괴테는 유명한 ‘태초에 갈등이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아무 고민 없이 가뿐하게 선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다가도 결국 신앙적인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는 사람,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바로 이런 순간에 우리의 진짜 신앙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기준으로 알아서 선택하겠다, 이것은 ‘내가 책임지는 삶’입니다. 

반대로 나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선택하겠다, 이것이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삶’입니다. 

 

또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됨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실패 하고, 죄를 짓고, 어려움 당해도 “내 팔자” 이러지 말고  여기에 하나님 뜻이 있구나! 내가 깨달아야 될 일이 뭘까? 나에게 이 어려움을 주신 이유가 뭘까? 뭔가 뜻이 있을 거야! 

그 어려움 중에 고난의 의미를 찾고 고난을 이겨나갈 힘을 그 속에서 얻는데, 이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 자녀 됨의 정체성입니다. 

또 내가 좀 남보다 돈이 좀 있다, 지식이 있다하여도 그냥 단순히 이것 가지고 누리고 내 마음대로 내가 편안하게 하고 내가 내 생각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특별한 은혜를 주신 이 하나님의 뜻이 뭘까? 내가 인생을 마치기 전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내 삶의 사명이 뭘까?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이 축복을 받은 내가 남다르게 하나님 앞에 살아드릴 삶의 그 사명,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그 사명이 뭘까? 

소명의 삶을 살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리고 무너뜨리는 것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원하시는 것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가? 그것 먼저 점검해 보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이유가 뭐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전한 순종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적들 앞에서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순종은 내가 골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유익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승리를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앞으로의 승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거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병사들이 할례 받고 다 누워서 끙끙거리고 앓는데 오면 다 죽는 거예요. 

 

창세기를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이 “자기동생 디나를 정말 너희들 식구로 삼고 싶으면 너희들 다 할례 받아라” 그래서 세겜에 있는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아 세겜의 잘 훈련된 병사를 싹 다 죽여 버렸습니다. 

왜? 할례가 그만큼 전투력을 상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는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혈과 육을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5:50에 보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혈과 육으로는 절대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할례는 우리의 혈과 육을 십자가에다가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혈과 육이 죽지 않으면 우리의 영이 절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십자가에서 죽어버리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육신대로 살고, 내 육신이 원하는 것, 내가 보이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면, 내 인생 속에서 육체의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6절 말씀 보면 주님께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 맹세하셔서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신앙을 재정비해야 할 때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있는 죄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유혹입니다. 이번만, 이번만, 다음부터는. 

즉 내가 하나님 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죄악의 근원입니다. 

항복, 항복, 제가 하나님 뜻에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바로 그 의지와 결단을 오늘 우리에게서 찾고 계십니다. 

여리고 성과 같은 인생의 문제 앞에서 고민하는 여러분들, 

기도하면 하나님은 여리고성 내가 무너뜨려줄게, 

그 보다는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확실히 하라는 응답 주실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는 그 세미한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 주시는 그 축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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