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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보라 (출애굽기 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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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59-65장

 

구원을 보라!, 출애굽기 14:10-14, 240장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 갈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주 난처한 상황을 가리켜서 우리는 ‘진퇴양난’라고 합니다. 

어느 대기업 면접 시험에서 ‘진퇴양난’을 영어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면접을 보았던 지원자들 가운데 90% 이상은 문장을 사용하여 

설명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간단히 한 단어로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딜레마’ 실제로 사전을 찾아보면 ‘딜레마’(dilemma)는 “몇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와 같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 귀찮은지 안주 이름에 ‘아무거나’ 중국집 ‘짬짜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이와 같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과 같은 진퇴양란의 절박한 상황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추격해오고 있는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답답한 상황으로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14장 1절과 2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하나님은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향을 돌리셔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바하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편 바다가로 인도하셨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지도를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수르 광야로 가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만약 그 길로 갔다면 홍해를 건널 필요도 없이 일주일이나 열흘이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성도들인데도, 다른 좋은 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그런 막다른 길로 몰아넣으셔서 이해할 수 없는 

‘진퇴양란’의 환경을 만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게 맞긴 맞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가는 길임에도 원치 않는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순종하는 길임에도 가로막는 일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본문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그 대답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31절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들을 인도하신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들을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여호와를 더욱 경외하며 여호와의 종 모세를 신뢰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단어는 바로 ‘큰 일’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작은 일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작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됐다고 하거나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 하면서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 수군은 그야말로 볼품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도저히 일본수군과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12척을 가지고 330척과 싸워 승리하는 세계역사상 전례가 없는 승리를 기록하였습니다. 

지금도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12척을 가지고 330척을 물리친 일 그 일은 정말 큰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반대로 이순신 장군이 330척을 가지고 일본의 수군 12척을 물리쳤다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큰 일을 행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이 330척가지고 12척을 못 물리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때때로 330척이 아니라 12척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12척이 아닌 330척을 주시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과 은혜는 330척을 가지고 12척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축복과 은혜는 12척을 가지고 330척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상황과 환경은 단 12척 밖에 되지 않는 상황,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330척이나 되는 

우리의 적들과 당당히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큰 일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 당하고 있는 상황이 막막하게 보이고 힘겹게 느껴질지라도 그것으로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의 상황이 열악하고 힘겨울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크고 위대한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일을 나를 위하여 나의 가정을 위하여 행하실 것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에 빠져 죽거나 아니면 바로의 칼에 찔려서 죽는 것 밖에는 살아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두 종류의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위기 앞에서 초연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겹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자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11절, 12절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십니다. 

좋을 때는 “고맙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조금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섭섭하다하고 아우성치고 탄식하는 존재, 바로 그런 것이 가장 본래의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려움을 풀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 자기는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여러분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든지 전가시키려고 합니다. 

 

종종 신앙의 실패자들은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신앙 생활 해보았자 현실은 여전히 어렵고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생각되면 마음에 유혹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앞으로 앞으로’의 종교이지 ‘뒤로 뒤로’의 종교가 아닙니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이 있습니까? 

베드로가 되돌아간 갈릴리 바다가 오늘 우리에게는 주님 때문에 포기했던 술집일 수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내려놓았던 세상친구들일 수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포기한 악한 습관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돌아가려고 하는 그 과거는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모세에게 달려가서 항변합니다. 

애굽에 공동묘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죽게 하느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다고 원망합니다.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환경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범죄한 인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그들에게 일어난 첫 번째 변화가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사라지고 불안과 공포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두려워 나무 그늘 밑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두려움이라는 것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질 때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인도하실 때에 결코 한 번에 두 걸음을 안내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내가 한 걸음을 내디뎌야만 다음 걸음을 인도해 가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법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한꺼번에 모든 길을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한 가지씩 순간순간 인도해 가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한 걸음씩 인도하실까요? 

그것은 우리를 가장 잘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조급한지 몰라요. 한국인의 의식구조라고 하는 책을 쓰신 이규태씨의 글 가운데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사람의 성품 중에, 의식구조 속에, 그 체질 중에 고쳐야 할 것 하나가 있다, 고 강조합니다. 그게 뭐냐하면 '쿼터리즘'입니다. 

쿼터라는 말은 15분이라는 말입니다. ‘15분주의’ 그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정에 성숙하지 못하고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초조해. 꼭 뭐든지 15분밖에 못합니다. 

조급한 마음, 이것이 이렇게 원망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모세의 반응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에야말로 우리는 우리의 바른 믿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것을 믿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절망의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믿음 때문이었다면 그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원망하고 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3절, 14절 말씀입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전쟁에서는 나가서 싸워든지 아니면 살기 위해서 도망을 쳐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웃기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느냐,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환경만 바라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군대라고 한다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립니다. 

본문의 모세가 그랬습니다. 사방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방이 꽉 막혔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위를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모세는 손에 든 지팡이로 홍해를 쳤습니다. 그러나 이 지팡이는 보잘 것 없는 마른 막대기입니다. 불에 넣으면 재가 되는 부지깽이입니다. 

도끼로 쪼개면 산산조각나는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지팡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모세가 잡았습니다. 그 당시에 모세의 지팡이 외에도 수많은 지팡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홍해를 갈랐던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힌 모세의 지팡이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힘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달아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쁘게 풀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내 능력으로 풀어 나가려고 하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마른 막대기와 같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리어 

홍해를 가르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저와 여러분들이 처한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일에서든지 경험케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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