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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복된 사람(마태복음 16:13-20)

  

 

   이사야 31-37장

 

가장 복된 사람, 마태복음 16:13-20, 588장

 

이번 주 금요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의 명절, 추석,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는 설날과 더불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있어서 한가위는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서 조상들을 생각하며 지난 1년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는 즐거운 날입니다.

추석을 맞이해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선물로 감사를 전하여야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개인적인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보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이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건강치 못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부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독교는 언제나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섬김과 배려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고아, 과부, 나그네, 베드윈 족.

성경은 밭의 네 귀퉁이를 남기는 것과 떨어진 나락과 볏단을 줍지 말고 

버려두어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 가게 하는 것 등을 말씀함으로 구체적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 대한 배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개인의 성공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성공의 궁극적인 목적을 나눔과 섬김에 둡니다.

 

우리 나라에 추석이 있다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최초의 추수감사절은 1621년 가을에 플리머스 정착지에서 청교도들에 의하여 지켜졌습니다. 영국에서는 명절 때에 큰 거위를 구워 먹는 습관이 있었는데 신대륙에서는 거위 대신에 칠면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의 잔치 음식은 칠면조를 중심으로 해서 크랜배리소스와 호박 파이로 이루어집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서서히 다른 지역들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1863년에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공포하였고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추석과 같아서 고향으로 감. 

 

한국에서의 추수감사절

한국에서는 1904년 제4회 조선예수교 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감사일을 정해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1914년 회의를 거쳐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한 인간의 불행은 스스로 좋아 하는 일만을 하는데서부터 비롯됩니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별도로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분리되고 모순된 생을 살아가려니 아주 피곤합니다. 

반면에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더 큰 불행은 믿을 것을 믿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나도 못 믿고 다른 사람도 못 믿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얼마나 믿고 계십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믿음의 뿌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고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을 때에 내가 또 남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왜 무너진지 아십니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마누라도 못믿고, 남편도 못믿고, 자식도 못믿고, 자기 부모도 못 믿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는 인간이 가지는 모든 잠재력이 소멸되고 맙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고백을 듣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물으십니다. 15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직선적으로,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너는 나를 누구라 고백하느냐 하심입니다. 참으로 귀중한 말씀입니다. 

개인적인 고백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안다는 것, 이것은 일평생의 과제입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캘빈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이는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다”라고 단언합니다. 

그런데 나에 대한 지식이 나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발견하기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런 재미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가장 큰 행복은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사랑하지만 혼자서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짝사랑이지요.

사랑을 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거기에 행복의 극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있고 신앙을 고백할 때, 거기에 내 존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순간에 베드로가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어떤 이득을 보고, 어떤 병을 고치고,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공과 실패, 나에게 일어나는 잡다한 사건들 속에서 내가 점점 그리스도의 얼굴을 밝히 보게 되고,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이것이 중요헌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처럼 기록으로 남겨두는 때도 아니고, 녹음을 할 수 있는 때도 아니기 때문에 많이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이 말씀이 옳으냐, 그르냐, 합리적이냐, 불합리하냐, 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그 많은 말씀을 들으면서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 분은 메시야시다’하는 것을 알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교회에 나오십니까?

그 많은 날 동안 성경을 읽었고, 그 많은 날 동안 찬송을 불렀고, 

그 많은 날 동안 말씀을 들었지만 얼마나 기억하십니까?

그러나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뿌옇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하늘나라가 환히 열립니다. 

이것이 복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17절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보고 들었다, 보고 들은 경험이 있었으나 그것을 가지고 안 것이 아니라, 성령이 감동하사 네 눈을 뜨게 하고 네 귀를 열게 해서 깨닫게 되었구나. 그런고로 너는 복되다. 하십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믿어지고 알아지는 것, 그렇게 될 때 이 지식과 믿음 위에 주님께서 곧바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천국 열쇠를 내게 주리라”

바로 이것과 함께 천국이 환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하늘나라가 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누가 복된 사람입니까? 그 옛날 순교자들은 재산도 빼앗기고, 가족도 흩어지고, 소중한 생명마저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는 복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구주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천국 열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내 구주이심을 믿고 알게 될 때, 

그리고 그것을 이 사실을 생활 속에서 고백하며 간증하며 살아가는 

복된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떤 기적보다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가장 복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달은대로 이 천국의 비밀을 생활 속에서 증거케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를 택하시고 신실하게 이끌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성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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