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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앞에서(여호수아 6:1-7)

   

 

     역대하 4-10장

 

여리고 앞에서, 여호수아 6:1-7, 359장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십니다. 

그리고 사단의 시험을 통과하신 후에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시험 문제라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면 대단한 상을 준다는 것이었는데 

그 시험을 통과하신 후에,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부터 정리하여 나는 진정한 크리스찬인가?’라는 문제부터 해결하고 시작하여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시원치 않기 때문에 조그마한 

문제에 부딪혀도 휘청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뭐가 조금 됐다고 해서 교만하다가 좀 안된다고해서 실망하고, 사느니 죽느니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든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냐?’하는 것이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이 문제를 풀고 나면 하나님은 누구신지를 알기 시작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복잡한 문제를 매우 쉽게 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믿는 우리들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어떤 신기할 일로 역사하실까?”라고 기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신기한 일을 기대하며 맛보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입학 시험을 앞에 놓고, 결혼을 앞에 놓고, 사업을 앞에 놓고, 장벽에 부딪치면 먼저 자신의 능력을 살펴봅니다. 

그리고는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 앞에서 좌절하곤 합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결코 이러한 여리고 성 앞에서 좌절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앞에는 어떠한 여리고가 있습니까? 

나름대로의 여리고가 다들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이면 이를 수 있는 길을 4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려 지나왔습니다. 힘들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긴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말이 40년이지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그러나 이제 긴 여정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의 문턱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이제 고생도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가장 먼저 발목을 잡는 것은 모세의 죽음이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사라진 것입니다. 모세 없이 어떻게 그 수많은 난관들을 헤쳐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가나안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올 때 느보산에서 모세가 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그것이 신명기 34장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1장에서는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가 세워졌고 그의 리더십을 따라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아가는 길목에 또 다시 부딪혀온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단강이었습니다. 우기에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널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적적으로 그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범람하는 요단강 위에 발을 내디디자 길이 난겁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길이 나고나서 발을 내디딘 것이 아니라 강물은 흘러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발을 내디디자 강물이 멈춘 겁니다. 그것이 3장과 4장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가나안 정복에 나서게 되는데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해 전해오는 하나님의 명령은 참으로 황당한 명령이었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을 앞두고 거룩이 더 중요하다. 

크리스찬들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결, 거룩입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고통을 느끼면서 그들은 일주일 이상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습니다. 이러다가 공격을 당하면 그대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합니다. 그것이 5장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리고성 정복이라는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스라엘은 또 다시 거대한 장벽 앞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나아왔으면, 그들 앞에 순탄한 길, 탄탄대로가 열려야 하는데,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여리고라는 거대한 성벽이었습니다.

그 여리고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더군다나 여리고성은 성벽을 이중으로 쌓아서 도저히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무너뜨릴 수가 없는 실로 거대한 바위와도 같은 단단한 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과 능력으로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6장의 기록입니다. 

1절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모든 문이 닫혔습니다. 모든 가능성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문이 닫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길이 막혔을 때가 믿는 우리들에게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모든 길이 막히자 이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찌 여호수아에게만 말씀하시겠습니까? 

오늘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 가운데 서있는 새하늘 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2절을 보면 “보라”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보라는 것입니까?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여리고를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을 여시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리고를 보는 것은 신앙 없음이지만 하나님을 보는 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나는 못하지만, 나는 연약하지만, 나는 가진 것이 없지만 하나님이 그 

장벽을 무너뜨릴 것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말씀은 2절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I have delivered Jericho into your hands.” 

현재 완료형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이 여리고 성은 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긴 싸움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걸어갔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의 방법이 주어집니다. 그렇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있고, 하나님의 계산이 있습니다. 

그 중의 대표가 주일 성수와 십일조입니다. 

주일 성수는 영적인 축복의 통로이고, 십일조는 물질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계산에 따라서, 자기 방법대로 삽니다. 

심지어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세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피곤한 생을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입니다. 야곱은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복에 대한 집념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마는 편법을 써서라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쨌든 복을 받아야 된다, 그렇게 생각한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야곱이 처음에는 물질을 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머슴살이를 하면서 열심히 재산을 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열심에 복을 더해 주셔서 많은 재산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그가 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아서 12지파의 족장이 됩니다. 

그는 아주 로맨틱한 화끈한 연애도 한번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라헬이라고 하는 그 여자를 얼마나 사랑했든지 그녀를 얻기 위해서 머슴살이를 하는데 ‘7년을 수일같이’여겼다고 성경에서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만큼 화끈한 연애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애써서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습니다. 이제 이만하면 가질 것 다 가졌습니다. 물질도 가졌고, 자녀도 가졌고, 사랑하는 여인도 가진 그가 

애굽의 바로 앞에 섰을 때 이런 고백을 합니다. 창세기 47:9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렇게 모으느라고, 이렇게 잘 살아보려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지만 자신의 꾀로 그 복을 쟁취하려고 했던 야곱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황당합니다. 3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저 성을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6일 동안은 하루에 한번만, 그리고 7일째 되는 날에는 7바퀴를 돌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다는 결과를 먼저 보고 있지만 지금 성을 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일수록,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일수록, 사리판단에 빠른 사람일수록 매일 성을 돈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살라! 아무리 좋아보여도, 아무리 굉장해 보여도 세상의 방법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라!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여리고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말씀대로 살 수 있는지를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돌라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따랐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벽한 승리가 주어집니다.  

히브리서 11:30은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칠일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여러분들 앞에 어떤 여리고성이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 여리고성을 정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방법이 있음을 믿고 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방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미루지 말고.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가장 커다란 위기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조상들이 경험했던 그 하나님, 말로만 듣던 그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난관을 통과하면서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설교 시간에 선포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주시기도 하시고, 우리 삶에 강한 압력을 가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겨 나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지는 인생의 어려운 순간일지라도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훈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그 옛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 새하늘 교회를 통하여 강하게 역사하고 계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러분 각자 앞에 놓인 여리고성을 정복해 나감으로써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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