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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의 하나님(사무엘상 7장 12절)

   

 

    열왕기하 2-8장

 

에벤에셀의 하나님, 사무엘상 7:12, 391장.

 

우리 인간들은 참으로 미련합니다. 망각의 동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환난을 막아 주시기도 하시고, 환난을 피해 가게도 하실 때에 이것을 은혜로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평범한 중에 일상 생활에서 받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별로 의식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주어지는 것처럼, 자연히 주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꽝하고 부딪쳐야만 압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운전할 때 얼마나 많은 위험이 있습니까?

내 차를 몰고 갑니다. 그런데 저 앞에서 꽝하고 부딪치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갑니다. 내 차가 부딪쳐야 비로소 지금까지 사고없이 산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하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사하다는 것, 평범함 속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건강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건강하게 살면 제가 잘나서 건강한 줄 압니다. 사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루 하루 건강을 지켜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 건강에 대하여 감사하느냐 하면, 아파서 병들어서야 비로소 건강했을 때가 얼마나 고마웠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큰 사건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러나 사실은 평범한 중에 주신 은혜가 훨씬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모름지기 이것을 의식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서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되 구체적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12절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그리고 기념비를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얼마나 확실하고 귀한 간증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인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래도록 우리를 참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을 보면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하나님께서는 오래 오래 참으십니다.

어느 교인이 목사님을 찾아가 내가 이렇게 착하게 살고, 남보다 진실하게 살고, 남보다 부지런하게 살려고 애쓰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한테 복을 빨리 안 주시는지 모르겠다며 하나님을 원망하였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초조합니까? 하나님께서 상을 빨리 안 주시는 것이 그렇게 불평불만입니까? 만일에 당신이 잘못될 때에 하나님께서 참지 아니하시고 즉각즉각 벌을 내리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교인이 당장 “그것은 안되지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나의 구원이 됨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16에서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실로 오래 참으사 하나님의 사람 되는 본을 삼으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있습니다. 참으로 오래 참아 주십니다. 

현대인들은 대개 잘 참지를 못합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리모콘입니다. 광고 나오는 것도 못 참아서 금새 다른 채널로 돌리지 않습니까? 

이리 저리 왔다 갔다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도대체 참지를 못합니다. 밥도 뜸이 들어야 먹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햇반과 ‘3분라면’을 먹습니다. 

초조하여 인내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오래 참으십니다. 그 인내로 인하여 우리들의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금년에도 잘 참아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안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아 놓으시고는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시킵니다. 

이웃 나라를 걱정하지 말아라. 정치, 경제, 문화, 재난 따위의 걱정은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하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어떻게 하여야 할 바를 가르쳐 주면서 먼저 우상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인에게는 돈이라는 대표적인 우상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전에는 여러 가지 우상들이 있었는데 지금의 시대의 우상은 거의 돈, 재물로 귀결되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돈 좀 있으면 교만하고, 돈 없다고 절망하고 자살하고... 

mammon이라고 하는 우상 앞에 꾸벅꾸벅합니다. 

돈 섬기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제거하십니다. 내가 제거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내려치십니다. 

내가 치지 못할 때 ‘이 우상 제해야 되겠는데’하면서 못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래 내가 해줄께’하시며 내려치시고 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와서 가나안의 우상을 섬깁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나서 이곳 가나안 땅의 정착민들을 보니까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기는데 그 바알 신은 풍요의 신이라 바알만 섬기면 농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게 첫 번째 이유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타협입니다. 

이곳 가나안의 정착민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마찰이 났을 때에 그들이 섬기는 것을 안 섬기고 자기네들은 하나님만 섬긴다 하게 되면 서로 부딪치게 되거든요. 그래서 굳이 그러지 말고 별 것도 아닌데 같이 우상 좀 섬기면 어떠냐 해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해서 섬기게 됩니다. 

소위 안정을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한 후에 말씀하십니다. 

먼저 우상을 제하라, 그 다음에 오는 책임은 내가 진다, 너희는 쓸데없는 

정치적 타협이나 종교적인 타협을 하지 말고, 깨끗하게 모든 우상을 다 진멸하고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라, 하십니다. 

그리고는 사무엘은 저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렇게 결혼해야 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하나님 법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마땅히 행할 일에 대하여 강론을 합니다. 

지난 날의 잘못된 것은 회개하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스바에 모여 있는 바로 이 순간을 기회로 해서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옵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의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모여 있는 이 때가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블레셋 연합군이 모여서 저들을 포위하고 다 없애 버릴 생각입니다. 

의기양양 쳐들어 옵니다.

그래서 7장을 읽어 보면 미스바에 모인 이 사람들이 벌벌 떱니다. 

두려워 합니다. 낙심합니다. 그러나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친히 우레를 내려서 블레셋 사람들을 다 흩으시고, 저들이 흩어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가서 치라’고 하십니다. 비록 훈련 받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이지만 도망가는 사람들을 따라가서 치기는 쉽지요.

그래서 모두가 나가서 전쟁을 하게 되고 이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 중요한 상징적 사건 앞에서 사무엘은 기념비를 세웁니다. 큰 돌을 세워 놓고 ‘에벤에셀-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이라 부릅니다.

이 이야기가 본문의 내용입니다.

12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

지정학적으로 오늘 여기까지 도와 주셨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다시 말해서 애굽에서부터 여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했고,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그래서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고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잘나서 오늘까지 살아왔습니까? 얼마나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았습니까? 우리 민족이 바른 길을 갔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셔서 우리가 있고, 지금 이 민족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의식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바른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조용한 기적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셔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7장을 보면 수십 만 명의 미디안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옵니다. 이스라엘은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저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라고 하는 사람을 부르셔서 ‘기드온아 네가 이 백성을 건지라’ 하십니다. 기드온은 여쭙니다. 

내가 뭘 가지고 건지라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보니 3만 2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저쪽은 수십만 명의 훈련된 군사요, 이쪽은 오합지졸입니다. 

3만 2천을 가지고는 도저히 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3만 2천도 너무 많다, 줄여라 하십니다. 그래 만 명으로 줄였습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많다, 또 줄여라. 이렇게 하다가 결국 남은 사람은 겨우 3백 명입니다. 

기드온은 기가 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순종은 하지만 이 3백 명으로 어찌 저 수십만 대군을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전쟁은 내가 한다, 너희가 숫자가 많으면 이긴 다음에 ‘우리가 싸워서 이겼다’ 할 것이 아니냐, 그런 교만을 나는 못 본다, 숫자를 줄이고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저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다, 우리가 나가서 싸우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이 기적이 있었다’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십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 봅시다. 내 모든 잘못, 내 허물, 이 많은 사건들 속에, 그 깊은 곳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계셨고,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사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역사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여러분 하나하나를 세밀히 돌보아서 인도하시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 바로 그 은혜에 대한 기념비적인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먼저 내 우상을 제거하고,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께서 저기까지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남은 생을 새롭게 살아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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