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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신하라 깨어라 (베드로전서 5:7-11)

  

     베드로전서는 네로 황제 시대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보낸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을 심어 주는 편지입니다. 

그래서 격려의 서신, 소망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이때는 이미 초대교회가 개척된 지 20~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의 연령층도 다양해졌습니다. 그러자 진보적인 청년들과 보수적인 나이든 성도들 사이에 긴장관계가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의 질서가 무너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교회의 영적 질서 유지를 위하여 장로들과 젊은이들이 

각각 힘써야 할 바가 무엇인지 말해 주기 위해서 본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우리 교회가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권고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종교입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를 올바른 인격자가 되도록 가르쳐야하고, 

학교에서는 지식과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가르쳐야하고,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양육과 교육을 받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고, 귀한 사람이 되고, 세상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쓰임 받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본자세를 잘 

배워야 합니다. 기본자세는 누구에게나 굉장히 중요합니다. 

각종 스포츠도 기본자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려고 하면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본자세가 자기의 생각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자기의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데도 기본자세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봉사자들에게 기본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1절에서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고난을 싫어하는 자들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고난 후영광

 

그리고 3절에 보면 지도자들은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합니다.  

본이라는 것은 모델이 되라는 것입니다. 패션모델들은 지금 여름이 다가오는데, 겨울 옷을 입고 준비합니다. 미리 앞서 가는 사람들입니다. 

양 무리의 본이 된다, 교회의 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앞서가는 것입니다. 

모델이 되고 본이 된다는 것은 남들보다 앞서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터에서 너희는 앞에 가라, 나는 뒤에서 가겠다는 지휘관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앞장서서 모델이 되고, 앞장서서 양무리의 본이 되는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우리 교회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주인 의식, 주인공 의식.

 

이 세상 그 누구도 걱정이나 염려가 전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걱정을 “우리 시대의 공식적 감정(the official emotion of our age)”이라고 말했습니다. 걱정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는데

어제에 대한 후회입니다. 이 사람들의 전문 용어는 “...껄”입니다.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 껄” 

두 번째는 내일에 대한 염려입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전문 용어는 “만약...”입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7절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염려라는 말은 마음이 갈라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염려하면 우리 마음이 갈라져서 한 곳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염려하기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염려가 해결되면 또 다른 염려가 생깁니다. 직장 생활로 염려하고, 결혼문제로 염려하고, 그리고 자녀 양육 문제로 염려합니다. 

그 염려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던져 버리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염려한다고 안 될 일이 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염려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염려할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일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마귀는 우리의가 믿음이 연약해지는 순간 역사하는 영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흔들리면 마귀는 벌써 우리들의 믿음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좋은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입니다. 

때문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아주 강하고 담대한 믿음 그리고 흔들리지 않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근신하라는 말은 감정, 욕망, 염려 등에 대해 절제하라는 말입니다. 

먹는 것을 절제하고 노는 것을 절제하고 말하는 것도 절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절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깨어 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순간에도 방심하거나 헛생각을 품지 말고 늘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당달봉사라고 부릅니다. 

세상에는 당달봉사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깨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마음을 풀어놓고 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집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눈뒀다 뭐해?

 

무엇보다도 믿지 않는 자들은 차치하고 믿는 우리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버스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열차를 탈 때에도 승객들이 다 졸거나 잠이 들어도 운전하는 분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온 승객들의 안전과 생명이 깨어있는 운전자들의 어깨 위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의 대부분이 위기의 순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둑이 찾아오듯이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순간에 위기가 닥칠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 깨어 있으라는 것이지요.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는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함께 데리고 가셔서 세 번씩이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장차 들이닥치게 될 위기와 고난을 전혀 체감하지 못한 채 쿨쿨 깊은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여러분 '영적 각성'이 무슨 뜻입니까? 영적으로 깨어나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수면 상태로부터 깨어나 하나님과 교통을 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베드로서에서는 시편 22:13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탄마귀를 ‘우는 사자’로 비유합니다.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방심한 채 잠이 든 사람은 우는 사자가 덤벼들 때 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잠든 사람은 사탄마귀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 우리를 삼키려고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을 볼 수도 없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만이 사탄과 대적하여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누군가 나와 같은 고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와 용기가 됩니다.

고난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그 까짓 걸 가지고 뭘 그래? 남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성도들의 싸움은 잘사느냐? 못사느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하는 그런 싸움이 아닙니다. 성도의 싸움은 죽느냐, 사느냐, 생명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 영적 전투는 내 힘만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10-20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제목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사는 길이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10절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11절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마음이 지쳐서 

 

오늘 말씀을 보면 근신하며 깨어 있는 것으로만 안 되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마귀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방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초병이 깨어 있는 것까지는 좋은 데, 

적이 침투해 올 경우 신속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깨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위기상황을 수습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중요한 것은 오직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초병만이 적을 가장 빨리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깨어 있음’은 적군과 맞서 싸움에 있어서 선결조건이며 필수조건인 것입니다!

영적인 전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마귀가 가지가지의 형태로 우리를 위협하고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할 때 

깨어 있는 성도만이 이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방심하지 않고 깨어 있는 성도들만이 마귀의 움직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근신하며 깨어 있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세상 속에 나가보면 세상은 어지럽기 짝이 없습니다. 온갖 종류의 사악한 죄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오직 평소에 긴장을 잃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깨어있는 거룩한 습관을 기르십시오!

그러므로 할 수 있으면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룩한 습관만이 마귀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성수, 매일 말씀 묵상, 암송.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 차츰차츰 믿음이 힘을 잃어 가는 것을 봅니다. 

예배 시간에 보이다가 안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 읽는 소리가 점점 줄어듭니다. 기도소리가 점점 작아집니다. 세상과 점점 가까워 지더니, 이제는 교회와 점점 멀어집니다. 

이렇게 신앙이 나태해지면 무엇이 따라 붙습니까? 마귀가 따라 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절“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모이는데 열심을 내고, 말씀 듣는데 열심을 내고, 기도하는데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주님과 가까이 하면 마귀가 멀리 떠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되고, 나타날 영광에 참여하여 때가 되면 우리를 높이시는 그 좋으신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함으로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상 1-8장

사무엘 상하는 왕정 체제의 건립 및 그 초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를 보여줌. 

사무엘 상은 B.C 1105년 사무엘의 탄생부터 B.C 1010년 길보아 전투 중 

사울의 사망까지 이스라엘 초기 왕정 체제가 정착해 가던 시대의 이스라엘 역사를 다루고 있고, 

이스라엘이 신정체제에서 왕정 체제로 전환되던 과도기 역사

 

1-7장 사무엘의 출생와 그의 사역

8-15장 사울의 등장

16-31장 사울과 다윗의 갈등

 

1장

1-8절 사무엘의 가계, 엘가나, 한나와 브닌나

9-18절 한나의 서원, 11절

19-28절 사무엘의 출생과 한나의 서원

 

2장

1-11절 한나의 노래, 6절

12-26절 엘리의 두 아들, 24절

27-36절 엘리 가문의 멸망 예언, 30절, 홉니와 비느하스

 

3장

1-14절 사무엘의 소명, 4절, 6절, 8절

15-21절 선지자가 된 사무엘, 19절

 

4장

1-10절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의 패배, 3절

11-22절 엘리 집안의 멸망

 

5장

1-5절 다곤 신상의 파괴

6-12절 블레셋의 각 지방에 내린 심판 가드,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6장

1-9절 언약궤 반환을 위한 논의

10-18절 돌아온 언약궤

19-21절 벳세메스인들이 받은 재앙

 

7장

1-6절 미스바 대성회, 3절

7-11절 에벤에셀 전투에서의 승리

12-17절 이스라엘이 되찾은 평강, 12절

 

8장

1-9절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 요엘과 아비야

10-18절 왕정 제도에 대한 경고

19-22절 왕정 체제에 대한 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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