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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행적(시편 46:7-11)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참으로 섭섭했던 부분은 마켓에 시식 코너가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요즈음은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시식 코너를 통하여 새로운 상품을 알게 되고 그 전에는 몰랐던 것인데 맛있다는 것을 알고는 사게 됩니다. 

맛을 알아야 사게 되어 있습니다. 라면 처음 나왔을 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아는 만큼 다른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것이 가장 소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좋아했던 말씀입니다.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이 힘찬 찬송은 바로 7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하는 시편 말씀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오, 내 힘이 되시고, 강한 성이 되신다. 

많은 사람에게 애창되고 우리도 함께 부르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경건의 시간,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성찰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어부지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고전인 ‘전국책’에 나오는 고사로서, 쌍방이 싸우는 틈을 이용하여 제삼자가 애쓰지 않고 가로챈 이득을 뜻하는 말입니다. 

한 어부가 망태기를 메고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모래사장에 조개 하나가 있는데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황새가 이 조개의 속살을 콱 물었더니 이 조개는 입을 꽉 닫아 버렸습니다. 

황새는 조개를 물고, 조개는 황새의 부리를 물고 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네가 놓아라, 네가 놓아라 하지만 둘 다 놓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러고 있는 황새와 조개를 어부가 고스란히 거두어서 망태기에 집어넣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부는 힘도 안들이고 공짜로 얻은 셈이고, 황새와 조개는 둘이 싸우다가 둘 다 먹히고 만 셈입니다.

결코 근시안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이 요구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나무꾼 친구가 산에 올라갔습니다. 경쟁적으로 나무를 찍어 장작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유달리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지지 않을 양으로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나무를 찍었습니다. 다른 한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식으로 숨을 돌려 가면서 일했습니다. 

산을 내려갈 때가 되어서 두 사람은 각자 수고한 결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쉬어가면서 일한 친구가 훨씬 더 많은 장작을 장만했더랍니다. 승부욕이 강한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투덜거렸습니다.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도 왜 자네 것이 더 많단 말인가?”

그러자 다른 친구는 점잖게 설명합니다. “나는 10분씩 쉴 때마다 도끼날을 갈았다네” 그러니 당연히 이길 수 밖에 없지요.

도끼날 무뎌지는 것도 모르는 채 덮어놓고 열심만 낸다고 되겠습니까?

 

요즈음은 길에서나 차 안에서나 노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시끄러우면 정신이 나고 조용하면 잡니다. 

그들은 너무나 강한 자극을 받으며 자라났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조용한 것이 이상합니다. 조용해지면 불안해 합니다. 

현대인들의 결정적인 약점 가운데 하나가 명상의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명상이라고는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찾아가는 일에는 서투릅니다. 

조용히 자아의 모습을 점검해 볼 줄 아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어지럽고 시끄러운지, 모두가 격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원망과 시기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원망이란 제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데서 비롯됩니다. 자기 책임을 통째로 남에게 떠맡기려고 하는데서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반만 내가 책임을 져도 원망은 없습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나의 책임이라고 자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책임을 사회의 모순에 돌린다든가,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책임이야말로 오늘날의 크나큰 병폐입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신은 피해자라고들 합니다.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남편은 자기의 성격이 아내 때문에 고약해졌다고 하며, 아내는 남편 때문에 히스테릭해졌다고 둘러댑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잘못만나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핑계되고, 부모는 자식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피해 망상증에 걸려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조용하게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혹시 내가 가해자는 아닐까? 내가 피해자이기 이전에 가해자는 아닐까? 

 

디모데후서 3:1 이하를 보면, 말세에 나타날 인간상을 나열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하고 말하는데

3절을 보면 ‘조급하며’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특징이 조급한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가 왜 이다지도 깨어지고 부딪히는 소리 투성이입니까? 무엇이건 한 걸음에, 한꺼번에, 일시에, 금방, 후딱, 그렇게 해치우려고 덤비는 조바심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찌어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옵니다. 

애굽에서 탈출시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홍해로 인도하십니다.

뒤에는 애굽의 말발굽 소리가 다가옵니다. 그러자 원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기에 왜 나오자고 했더냐?’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 ‘누구 때문이냐’ 그리고 나중에는 ‘애굽에 공동묘지가 없어서 여기까지 데려다 죽이려고 하느냐?’ 별의별 소리를 다하면서 원망을 합니다. 원망하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14:13 “너희는 두려워 하지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것이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가만히 서서 구원을 보라!

서두르지 맙시다.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도 섣불리 말고 신중히 하도록 합시다. 덤비지 말고 좀 더 생각을 합시다. 말도 일단을 중단합시다. 

근심, 걱정, 두려움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 버립시다. 

그리고 고요히 들어 보십시다. 모든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시끄러운 현실 속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현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큰 경륜이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바알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에서 다 죽이는 큰일을 이루었지만, 결국 이세벨에게 쫓겨 한 로뎀나무 아래로 피합니다. 그리고 원망을 합니다.

19:4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하나님, 다 죽고 나 홀로 남았습니다. 저들이 내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족하오니 저 사람들 손에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거두어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원망을 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19:11-12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조용한 가운데에 주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미한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려면 내 마음이 고요해야 합니다.

마음이 들떠 있어서는 듣지 못합니다. 

세미하게 들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쟁쟁한 음성으로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마음을 고요하게, 아주 고요하게 가라앉혀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신학자 본회퍼는 그의 저서 ‘윤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좋은 말씀(good words)도 아니고, 옳은 말씀(right words)도 아니고, 아름다운 말씀(beautiful words)도 아니고, 재미있는 말씀(interesting words)도 아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말씀(living words)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항상 현재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오늘도 살아서 내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우리가 읽는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통하여 내게 말씀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몇 천년 전의 사건이지만 마음 문을 열고 기도하며 읽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현재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기록된 말씀이 살아서 역사한다는 것을 우리가 체험하게 됩니다. 

개별적으로 현재적으로 말씀하는 것이 성경의 특징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살리시는 능력을 가지고 역사합니다. 

읽는 사람에게 지식을 주고 지혜를 주고 능력과 용기를 줍니다마는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생명을 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살리시고 성장케 하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생명은 언제나 사망과 더불어 싸웁니다. 우리 몸을 흐르고 있는 피 속에는 끊임없이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몸에 해로운 병균이 들어왔을 때, 백혈구가 나서서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백혈구가 이기지 못하고 지면 병에 걸리고 마지막에는 죽고 맙니다. 

이와 같이 생명은 사망과 더불어 끊임없이 싸웁니다. 

이 전쟁은 어디에서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죄와 싸우고, 불신앙과 싸우고, 절망과 싸웁니다. 

생명의 말씀이 공급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습니까? 깜짝 놀랄 행동을 했습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이유는 내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이나 의지를 따랐기 때문이요,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입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내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계셔서 내 마음을 주관하고 계실 때에만 죄를 이기고,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악한 사람과 폭력을 숱하게 보면서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합니다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을 때에는 충분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철학,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사회학,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간학이 사람을 이토록 무섭게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문제의 해결입니다. 말씀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만이 죄를 깨우치며, 영혼을 변화시키며, 양심을 밝게 하며, 이성을 깨끗하게 만들며, 몸도 사회도 바르게 개혁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도 성경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The Words of god wait for us in the bible.

 

우리는 고요할 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바른 심상을 가질 때에라야 주님의 모습을 뵈올 수가 있습니다. 

시편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성급하며, 생각도 없고, 깨달음도 없이 바삐 살아서는 안됩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혀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나를 사랑하고 계시며,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느끼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새로운 자기 존재된 나를 확인하고 찬송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뜻에, 그 말씀에 응답하며 창조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고보서 3장 ~ 베드로전서 4장

 

야고보서 3장

1-12절 혀의 올바른 사용,  10절

13-18절 선행으로 나타나야 할 참된 지혜, 16절

 

4장

1-10절 성도간의 다툼에 대한 경계,  7, 8졸

11-12절 성도 상호간의 비방에 대한 경계

13-17절 세속적 삶에 대한 경계, 14절, 17절

 

5장

1-6절 불의한 부자에 대한 경계

7-11절 고난 중의 인내에 대한 권면, 

12-18절 맹세 금지 및 기도에 대한 권면, 12절 마태복음 5:33, 34절

19-20절 미혹된 자를 구할 것을 촉구하는 권면

 

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는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받는 당시의 

여러 가지 고난에 대하여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집필.

소망의 서신, 격려의 서신

 

1장

1-2절 문안 인사

3-12절 성도가 고난 중에도 기뻐할 이유, 8-9절

13-25절 성결한 삶과 형제 사랑에 대한 권면, 16절

 

2장

1-10절 성화의 방법과 이유,  9절

11-12절 성도의 사회 생활 자세에 대한 원론적 교훈 11절

13-17절 국가 위정자에 대한 성도의 자세

18-25절 주인에 대한 종의 자세 18절 19-20절

 

3장

1-7절 부부간의 올바른 도리, 7절

8-12절 성도의 고난 극복 자세에 대한 원론적 교훈

13-22절 핍박자에 대한 성도의 자세, 14절

 

4장

1-11절 고난의 유익과 선한 청지기 삶 권면, 7-8절

12-19절 고난에 직면한 성도들에 대한 격려와 권면, 12-13절 

         결론은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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