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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은총(시편 32:1-7)

목사님 0 342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을 받습니다. 

그런 다윗의 별명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직은 행위의 온전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할 때 머뭇거리지 않고 회개하는 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직하기 위해서는 이 정직 뒤에 오는 불이익과 후속 결과에 대해서 염려를 하지 않아야 됩니다. 정직한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묻지 마시고 우선 정직하고 볼 것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죽음의 문제요, 또 하나는 죄의 문제입니다.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면 철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로소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짐으로 도덕적 존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나아가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바른 종교인이 되어가는 길입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와서 구원받는 곳입니다.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죄인으로 들어왔다가 회개하여 의인이 되어 나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 왕은 죄를 지은 죄인이지만 회개한 의인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죄, 잘 아시지요? 사무엘하 11: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이에 유혹을 느껴서 그 여인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 범하고 맙니다.

밧세바의 남편은 왕을 위해 전선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용감한 장수, 우리아입니다. 그런 여인과 간통을 하고, 임신까지 하게 만듭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앞뒤 헤아릴 정황도 없이 우선 그 일을 숨길 생각부터 합니다. 그래서 일선에 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에게 특별휴가를 줍니다.

우리아가 돌아오면 밧세바와 동침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잉태된 아기를 

우리아의 아기로 위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휴가를 받고 집에 돌아온 우리아는 일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전우들을 생각해서 아내와 편안하게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동침을 하지 않고 그냥 부대로 돌아갑니다. 

다윗은 결국 우리아를 없애기로 마음먹고 계략을 씁니다.

그는 우리아의 상관에게 비밀 지령을 보내서 우리아를 최전방에 내보내 

결국 적의 손에 죽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남편 잃은 밧세바를 후궁으로 취하게 됩니다. 

 

여러분, 죄라는 것은 유혹의 매력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다윗에게는 많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남의 유부녀가 그토록 예쁘게 보여서 죄를 짓게 만드느냐, 그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죄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죄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아름다워 보이는 것, 눈길을 끄는 것, 이것이 사단의 유혹이요 죄의 매력입니다. 

에덴 동산에도 많은 나무와 온갖 과실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어째서 하필이면 금단의 나무 주위를 맴돕니까? 

왜 그것만 쳐다봅니까? 창세기 3:6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렇습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죄에는 인간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그 죄를 숨기려고 하다 보니까 죄는 점점 더 불어납니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섭니다. 

회개하지 않은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죄를 회개하지 아니할 때에 또 다른 죄를 

거듭해서 지을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음에 범한 죄는 간음죄였지만 그 죄를 숨기려다가 밧세바의 남편을 죽이는 살인죄까지 범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처음의 죄를 숨기려다가 점점 더 죄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3절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내 뼈가 쇠하였도다” 뼈마디가 쑤시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병이 있으니 육체도 쇠약해 진 것입니다. 

이어서 4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온몸이 아프고, 괴롭고, 마르고 비틀어지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회개의 기회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돌아올 때까지, 뉘우칠 때까지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이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때에는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또 놓치다 보면 마침내는 회개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다윗이 고통을 겪고 있던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 주신 것은 은총입니다. 

혼자서는 회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책망을 받음으로 

다윗은 비로소 용기를 얻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에,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부딪쳐 오면서 회개하라고 촉구할 때에, 이때야말로 은혜의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합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아직도 그 분의 말씀이 들려온다는 것은 크나큰 은총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에 회개의 용기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회개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우물쭈물하다가 

세월 다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우물 쭈물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회개의 용기란 크나큰 포기를 의미합니다. 위대한 자기부정을 의미합니다. 

이제 다윗은 전부를 잃어야 하는 순간에 왔습니다. 

그는 왕좌에 앉아 삼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위풍당당하던 그가 유부녀와 간통을 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그 여자의 남편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자 이제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듣고는 이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얼마나 어려운 순간입니까?

명예고 체통이고 위신이고 권세고, 다 포기해야 할 순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담대하게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립니다. 

하나님께 깨끗이 위탁해 버립니다. 

백성들이 돌을 던지든 말든, 어떤 망신을 당하든, 어떤 위기가 오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 맡기고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고백합니다. 

그는 회개함으로써 찾아지는 그 자유가 얼마나 값지고 귀한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는 다윗의 고백이 5절 후반부의 말씀입니다.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빚을 깨끗이 갚듯이 죄의 삯이 말끔히 청산된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눈물과 회개를 보시고 용서하십니다. 밧세바는 왕후가 될 뿐만 아니라 저 지혜의 왕 솔로몬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렇게 회개에 대해 화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다 용서했다가도 뒤에 가서 새삼스럽게 “옛날에 어떻게 했더라? 네가 어떤 죄를 지었더라?”하고 지난 일을 뒤적거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깨끗이 용서하시고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회개할 때에 정죄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러쿵저러쿵 죄의 대가를 따지지 않으시고 당신의 자녀로 영접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회개입니다. 그런데 회개가 무엇입니까?

내 죄를 인정하는 것이요, 인정하되 자기의 죄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코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성경 어디를 보아도 그가 밧세바를 원망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 여자 때문에 내가 그런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또한 그에게는 어떠한 변명도 없습니다.

여러분, 변명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가끔 보면 사과하러 갔다가 다시 싸우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면 끝나는데 ‘나도 잘못했지만 당신도...’ 여기서 다시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과할 때에는 사과만 하면 됩니다. ‘미안합니다’는 ‘미안합니다’로 끝나야지 ‘그러나’가 붙으면 앞의 사과는 헛일입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딴소리는 따라붙을 까닭이 없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진실하게 죄를 고백하는 것, 이것만이 최선의 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칭찬을 해도 회개만이 문제를 푸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그러나 죄를 반성하고 뉘우치고 후회하며, 죄 때문에 고민한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부터 의롭게 살기로 결심하고 무슨 고행을 하고 공로를 세워서 지난 날의 불의를 속죄하리라, 보상하리라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 속죄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제 손으로 자기 머리를 붙잡아 올리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아무리 끌어올려 봐야 몸은 몸대로 더 깊은 곳으로 떠내려 갈 뿐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들 아시지요. 돌아온 탕자가 머나먼 타국에서 아무리 후회하고 뉘우쳐도 그의 죄가 사함 받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와야 합니다. 체면불구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는 절대로 사함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은 회개한 사람의 기쁨을 말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죄를 고백할 때에 복이 있습니다. 

벌 받을까 해서, 혹은 명예나 출세, 부한 삶을 노린 간사한 마음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죄사함 받기 위하여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께 나아옵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자복하고 숨김없이 아뢰고 고백합니다. 

내가 잘못했나이다,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하고 고백할 때에 주님께서 저를 사하셨다는 말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 거룩하신 은혜로 용서받게 될 때에만 해결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전에는 무섭기만 하던 하나님이 이제는 반가운 하나님이요, 전에는 진노의 하나님이시더니 이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전에는 그 음성이 저주와 심판으로 들리더니 이제는 자비로운 음성으로 들리며, 기쁘게 주님을 뵈올 수 있게 됩니다. 

그러고 나니 나 자신이 소중해 집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과 나를 위하여 지불하신 십자가의 대가, 그 엄청난 하나님의 희생을 생각할 때에 나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를 사랑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본문은 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절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이제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내 귀에 뚜렷이 들려오는 데에 무슨 

두려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할 때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지었던 모든 죄들을 

다른 곳에서는 해결받을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죄사함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참되게 회개하고 죄사함 받는 은총을 입게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디모데후서 2장

 

디모데전서 2장

1-7절 중보 기도 명령과 그 필요성

2절, 4절

8-15절 공중 예배 시 남녀 성도의 일치와 질서 유지에 관한 교훈

12절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아야, 교회에서는 남녀 평등

 

3장

1-13절 감독과 집사의 자격

감독은 교인들을 돌보아 주는 역할, 감독은 교회를 다스리는 직능과 더불어 교인들의 생활 전반을 보살펴 주는 책임

14-16절 본서 기록 동기 천명

당시 로마 제 1차 투옥에서 풀려난 바울이 소아시아 지방을 돌아보고 있던 중 에베소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대처할 필요를 느껴 디모데를 그곳에 남게 하였고 그 후 속히 볼일을 마친 후 디모데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서신을 보내 디모데를 격려.

 

4장

1-5절 배도에 관한 예언과 이단의 그릇된 교훈에 대한 경계

4, 5절

6-16절 참 교사로서 목회자가 힘쓸 일들

 

5장

1-16절 여러 유형의 성도들과 과부에 대한 예우

8절

17-25절 장로에 대한 예우와 권징 관련 목회 지침

장로는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 23절

 

6장

1-2절 상전에 대한 종의 바른 자세

3-10절 경건과 물욕의 절제에 대한 교훈

7절, 8절, 10절

11-21절 디모데에 대한 개인적 권면과 끝맺는 말

11절, 18절

 

디모데후서 서론

본서는 제 2차로 로마 감옥에 투옥된 바울이 자신의 순교를 앞두고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로서 바울 서신 중 제일 마지막 서신.

먼저 교회 밖으로는 네로의 기독교 박해와 이로 인하여 배교자들이 많이 발생하였으며 내부적으로는 이단들이 많았다. 

 

1장

1-2절 문안 인사

3-18절 디모데의 믿음에 대한 감사와 격려

5절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

 

2장

1-13절 사역자의 참된 자세와 장차 누릴 영광

3절, 13절

14-26절 충성된 그리스도의 일꾼이 힘쓸 일들

15절, 23, 24,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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