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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1-5)

목사님 0 883

   

    먼저 서로 인사들 나누시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넘치기를 바랍니다.”  

연말인가 싶더니, 금방 새해가 되고, 2023년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습니다.

세월은 이처럼 빨리 지나갑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세월을 아낄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나는 올 한해 내 신앙의 노트에는 무엇을 기록해 놓을 것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처음에만 반짝 적어 놓다가, 나중에는 은혜가 중단된 채, 깨끗한 노트로 남겨 놓을 것인가? 

아니면, 내 신앙의 노트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 놓을 것인가?  

간절히 바라기는, 여러분의 신앙의 노트에는 끝 장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이 빽빽이 기록 되어지는, 축복된 2023년도 한해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1-11장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 바벨탑.

12-50장은 족장시대로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네게 복을 주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복중의 복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기면 하면 다른 부수적인 복들은 다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을 주시기에 앞서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즉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말씀으로 불러주십니다. 

오늘의 시대는 선택의 시대입니다. 모든 것을 사람들이 구미에 맞게 선택합니다. 그래서 흔히 생각하기를 믿음도, 종교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보시고는 불러 주신 것입니다. 

믿는 우리들은 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다만 각 개인마다 하나님이 부르신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 속에서, 어떤 사람은 고난 속에서, 저는 찬송 속에서, 365장. 

우리 교회에는 새해에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예배, 말씀(최소 성경 일독), 기도(정해진 기도 시간) 이 세 가지를 꾸준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절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go to the land I will show you)

히브리서 11:8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 갔으며”

(even though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아브라함은 어디로 갈지를 보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먼저 믿음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먼저 베풀어 주시면 믿겠습니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의 믿음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세 종교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의 조상이 되게 하시려는 계획을 발표하시면서 ‘떠나라’는 명령부터 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기독교는 떠남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는 역설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떠나면 망할 것 같은데 사실은 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국 사람들의 원조는 영국의 청교도입니다. 그들도 쫓겨나고 밀려나서 고향을 떠났는데 지금은 그들이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동양에서는 자녀교육을 위한 훌륭한 모델로 맹자 어머니를 꼽는데 주저 

하지 않습니다. 아들을 위해 세 번씩이나 이사했습니다. 맹모삼천지교

인간의 내면에는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현실의 편안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만하면 됐지’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새로운 일을’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되지’

익숙한 것은 우리에게 있는 신선한 긴장을 빼앗아 버립니다. 적당한 긴장은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신앙생활에도 긴장감 필요. 

떠남은 아픔이 따르지만 떠남이 없이는 결코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결심으로 새해를 시작하십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9:1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이와 같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마음 자세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게으르고 안일한 마음에 새것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를 떠나라고 말씀 하십니다. 

첫째가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살던 땅, 삶의 터전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 명령 속에는 아브라함을 거룩하게 세우려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다 이런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속할 땅이 이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안정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꿔 앉으라고만 해도 불평합니다. 

헬스클럽에 가면 running machine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 나이가 75세인데 고향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집에서 오래 살다보면 늘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짐입니다. 집안에 짐이 많아져서 이사를 한번 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이사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럭저럭 그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사를 가끔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집안이 정리가 됩니다. 신앙은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이주하며 살았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가게 하신 것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훈련의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축복 받는 비결은 안일과 게으름과 죄의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둘째가 ‘네 친척을 떠나라’ 

당시 치안 유지가 잘 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는 오늘날보다 친척의 중요성 이 훨씬 컸습니다. 당시의 친척은 힘입니다. 든든한 것입니다. 

언제나 나를 돌보아 주는 씨족 공동체가 있어서 그것을 의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친척이 많은 자는 유력한 자로 여겨졌으며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친족들은 모여 살았습니다. 이렇게 의지하고 있던 친척에게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시려고. . . .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 외에 믿는 구석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나에게 힘이 되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신앙의 저해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 때 그 사람의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같이 물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축 쳐지도록 놔두었다가 몸에 힘이 다 빠지면 슬슬 끌고 나와서 

인공호흡을 하고 물을 빼는 일을 해서 살려냅니다. 

인간적인 욕심이 다 사라져야만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집도 떠나라고 

점진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 

여기서 아버지의 집이란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친척 뿐 아니라 보다 가까운 혈족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집조차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부모는 메소보다미아에서 우상숭배하며 조각상을 만들어 팔던 가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의 습관에 젖어 살아오던 삶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짓는 죄는 대부분 습관에서 옵니다. 

사람은 습관의 존재라고도 합니다.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습관은 제2의 천성이며,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좋은 습관보다는 나쁜 습관에 물들기가 쉬우며 그것은 마침내 타고난 좋은 천성마저 파괴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타성에 젖게 됩니다. 

거짓말 하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남을 믿지 않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예배시간에 늘 늦게 오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십일조를 안 하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십일조는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하지 않고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습관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시거든 지금 즉시 떠나십시오. 

떠남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떠남은 축복을 위한 떠남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뼈를 깎는 아픔이 있었지만 떠납니다. 

그래서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편 본문에서 ‘네게 복을 주오’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는 미완료형 

이는 하나님께서 한번 복을 주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복을 주시겠다,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역사가 계속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4절과 5절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2023년도 새해에는 우리가 떠나야 할 것에서는 분명히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서 마침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복을 

쟁취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후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하기 이전인 56년경 기록.

바울은 갈라디아에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침투해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 대신 율법 준수를 통한 구원을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 들었는 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 

 

1장

1-5절 인사말

6-10절 집필 동기

11-24절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자기 변호

 

2장

1-10절 바울의 주장에 대한 제1차 예루살렘 총회의 인정과 

       바울의 디도 할례 거부

11-14절 베드로의 잘못에 대한 바울의 책망

15-21절 율법의 행위에 대한 믿음의 우월성

 

3장

1-5절 갈라디아인들의 영적 어리석음

6-9절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본 칭의

10-14절 율법의 저주와 이를 극복하는 믿음

15-22절 믿음을 주기 위한 율법의 목적

23-29절 몽학선생으로서의 율법의 기능

 

4장

1-7절 후견인과 청지기인 율법

8-11절 종으로 돌아가려는 자의 어리석음

12-20절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고뇌

21-31절 종의 자녀와 자유자의 자녀

 

5장

1-15절 성도의 자유에 대한 권면

16-26절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6장

1-10절 사랑의 실천 권면

11-18절 결론적 훈계와 축도

 

에베소서

옥중서신, 로마에서 제1차 감옥 생활 중

당시 대부분의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록.

 

1장

1-2절 문안 인사

3-14절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 찬양

15-23절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

 

2장

1-10절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

11-22절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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