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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교회(사도행전 2:42-47)

목사님 0 376

 

 

       우리 새하늘 교회는 2004년에 상암동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2008년에 교회가 도로로 편입되는 바람에 교인들에 의해서 신사동으로 이전하였고 그 후 2011년, 2016년에 지금 장소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2022년 10월 2일에 새로운 장소, 새로운 분위기에서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그동안 교회가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지만 많은 교인들이 떠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원인은 다름 아닌 교회의 본질인 영혼 

구원을 등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본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교인들의 삶도 나아지지를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인 분들에게 참으로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설교를 준비하면서 오늘의 본문 말씀이 구구절절이 제 마음에 와서 닿았고 참된 회개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면서 소망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 열심히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술작품의 원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고함을 “아우라”라고 합니다. 

모조품이나 복사품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진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고함을 뜻합니다. 

광장 시장의 빈대떡 원조는 순이네집, 육회는 자매집, 

아직도 장충동 원조 족발집, 충무 김밥 집. 

교회에도 아우라가 있습니다. 진품의 교회, 원형의 교회, 명품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가운데 온전한 교회는 없지만 우리의 예배 가운데 사도행전적인 교회, 아우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수많은 교회들의 구호입니다. 

어쩌면 교회의 영원한 목표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의 모범이 되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요약된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은혜 받아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이기주의’라는 굳은 껍질에서 벗어나 자기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그 결과로 저절로 부흥이 된 교회였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성장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자꾸만 쇠퇴하고 죽어 가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교회도 건강하고 생명력이 충만하여 자라나야 하고, 교인수도 늘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은 함께 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한마디로 공동체의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의 교회에는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공동체 의식이 없는 교회와 성도는 그 심령에 개인주의만 가득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어떤 능력도 없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좋은 환경 속에 살면서도 쉽게 우울해 지고, 공허해 하는 이유가 소속감의 결여와 공동체 의식의 결여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한 새하늘 교회 공동체의 

한 형제자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돌봐주고, 서로 세워주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성장하는 교회 

바로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면에서 이제부터는 셀모임을 강화하여 교인들간의 유대감도 더 굳게 하고 우리 새하늘 교회에서 공동으로 하는 성경일독에 무조건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답답하고 괴로운 세상을 다 보시면서도, 우리 생각에는 당장 화끈하게 문제를 처리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한 가정을 선택하시고, 한 교회를 선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서서히, 마치 겨자씨가 자라나는 것같이, 조용히 조용히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선택의 도리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 명령하시면서 그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여러분, 이것을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네가 복되게 살리라, 하신 것이 아니고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먼저 한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가 선택받은 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무슨 천지개벽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감화하고 중생케 하고 가르치고 바로 잡고, 그리고 그 

역사가 파급되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 history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방법입니다. 

 

우선 아브라함을 보면 그는 한 평생 발붙일 만큼도 땅도 얻지 못하고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한평생 천막 치고 유목민으로 이리 방황하고 저리 방황하고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모든 민족이, 모든 나라가, 모든 열방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신분도 분명히 애굽으로 팔려간 하나의 노예였습니다. 

보디발이라고 하는 애굽의 시위대장 집에 팔려간 노예입니다마는 그 요셉이 그곳에서 신앙적으로 바로 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그 집에 복을 주십니다. 

그 집 주인 보디발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고, 안주인은 요셉을 유혹하는 요사스러운 여자였습니다. 복받을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창세기 39:5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요셉이 그 집에 있는 동안 요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힘든 세상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의인 열 명을 찾으십니다.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이 성을 사하리라, 그러나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5:1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한 사람만 있어도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 한 사람의 믿음과 그 한 사람의 진실과 

그 한 사람의 순종을 보시고 전체를 사하십니다. 

그래서 전체에 대하여 진노를 참으시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세 가지 의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바로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일이다’

여러분, 지난 날을 탓할 것도 없고, 환경을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지난 주 설교 준비 힘 들었습니다. 철거하고, 이전하고, 또 철거가 남아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준비 잘 된 주가 드물었습니다. 

문제는 나 하나가 오늘 이 시간에 어떤 사람으로 나타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로 인해서 주변에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나는 복의 근원입니까? 화의 근원입니까?

먼저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그리고 충성된 사람만 되면 어떠한 

환경이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 하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복이 되는 삶을 살아갈 때 내가 속한 가정이 살고 내가 속한 교회가 살고 내가 속한 직장이 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알아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사단이 먼저 우리를 알아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가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무당으로 행세하는 몇몇 유대인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고 하면서 흉내를 냅니다. 

그런데 귀신이 그들에게 15절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고 하면서 달려들어 그들을 때리고 옷을 찢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발가벗긴 채 그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우리가 위선과 가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잘 믿는 척하려고 하면 귀신이 먼저 알아봅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귀신이 더 잘 압니다.

 

초대교회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공의 요소라고 하는 것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의 가난한 어부 출신들로서, 애초에 넉넉한 재산도 없었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도 다 버려 두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들에게는 자신의 몸 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지식이 남들보다 뛰어났습니까, 사회적으로 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인간의 성공 요소나 성공 조건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역사를 뒤엎었습니다. 그 위대한 로마 제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한 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의하여 점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변변치 않았던 사람들 120여명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4을 보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7절에 보면, 성령 충만함을 받았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문 47절을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바른 믿음, 건강한 믿음은 언제나 건강한 열매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생활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믿음이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과는 뭔가 다를 것만 같은, 그리고 달라야 한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찬송을 잘 부르고,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하고, 기독교의 교리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를 우러러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순결하고 성결한 삶을 바라보고 

감동을 받고 싶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그것만이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에는 많은 향을 피워서 교회가 향냄새와 연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의 예배에 참석한 후 집에 돌아가면 옷과 몸에서 향냄새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만 합니다. 그러할 때에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이적과 기적의 역사, 이것이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을 주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증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 이적과 표적이 일어났고,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43절을 보면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그들은 성전에 한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성도와의 아름다운 교제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이러한 성도들이 모습으로 인한 결과를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새하늘 교회는 죽어져 가는 이 땅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 가운데는 예배의 구경꾼이 없어야 합니다.  

예배에 구경꾼이 없을 때에 우리 교회는 성령님과 함께 하셔서 

부흥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새로운 영혼을 날마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5-11장

 

5장

1-9절 베데스다 연못

10-18절 안식일 논쟁

19-29절 하나님과 동등됨을 선언한 예수님

30-47절 45절 유대인들은 모세에게는 최대의 존경을 나타내었으나 예수님께 대해서는 배척으로 일관, 그래서 모세가 고발할 것이라고.

 

6장 

1-15절 오병이어

16-21절 7대 표적 가운데 다섯 번째 표적.

22-59절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60-71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상반된 반응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영적 무지로 인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60-66절)과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노라는 태도를 보인 사람들로 나뉘어 집니다(67-71절)

7장

1-9절 형제들로부터 배척당하신 예수님

10-24절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

25-36절 고조되는 배척과 핍박의 열기

37-53절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

 

8장

1-11절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

11절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

12-20절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21-30절 예수님과 하나님의 일체성

31-59절 자유케 하는 진리이신 예수님

 

9장

1-12절 나면서 소경된 자를 고치신 예수님  3절 죄의 결과인 질병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

13-34절 소경되었던 자의 신앙 고백   25절 

34절 질병의 원인을 죄로 여겼던 유대교인들

35-41절 영적 소경에 관한 교훈    39절

 

10장

1-21절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22-39절 솔로몬 행각에서 가르치신 예수님

22절 수전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이방신 제사로 더럽혔던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한 사건.

40-42절 베레아로 피신하신 예수님

베레아 지방은 세례 요한이 사역의 중심지로 삼았던 곳.

 

11장 7번째 표적

1-16절 나사로의 죽음 

17-37절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38-44절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

45-57절 예수를 살해하려는 산헤드린의 음모

45절 믿은 유대인 46절 바리새인에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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