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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암호(고린도전서 1:18)

목사님 0 478

 

   어느 부자가 세상을 떠나려고 보니까 그 동안 모아 놓았던 재산이 너무 

아까운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 세상에서 벌었던 모든 재물을 천국에 

가져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때를 썼습니다. 

그러자 너무 때를 쓰니 하나님도 할 수 없어 허락을 하기는 했는데  

그 대신 samsonite 여행용 가방 하나만 가지고 가라. 

그러자 부자는 모든 재산을 금으로 바꾸어 가방 하나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끌고 천국에 이르자 베드로가 나와서 가방 검사를 합니다. 

그리고는 ‘자네는 보도 블록을 뭐하러 들고 왔나?’ 하더랍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관일 겁니다.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과 사람과 자신을 보고 사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바르고 정확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데, 우리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 중요한 인생관이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왜곡된 인생관을 바로 잡기 위하여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종교마다 그 종교를 상징하는 문양이 있습니다. 불교는 만자 형태의 문양을 사용합니다. 만물의 덕스럽고 좋은 것을 뜻하는 문양이라고 합니다. 

원불교에서는 동그라미를 상징 문양으로 사용합니다. 모든 진리가 하나의 

원리에서 시작되었고, 하나의 진리로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슬람교는 초승달을 상징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점점 커지는 초기에 뜨는 달이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진리의 시작이라는 뜻을 담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상징하는 문양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처참하고 잔인한 사형 틀이었는데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도”라는 말은 사전적으로는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 라고 설명되어있습니다. 

십자가 없이 세상과 역사를 보면 절망스럽게 보이지만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과 역사를 보면 소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소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 중에 개척한 부족할 것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5절에 보면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말씀을 통하여 고린도교회에는 세상적으로 출중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장 7절에 보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고린도교회에는 방언이나 예언 등 하나님의 은사가 많이 나타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 파가 갈리어 서로 다투고 싸우는 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 여행 중에 고린도 교회의 교인인 글로에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책망하기 위하여 쓴 서신이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사도바울은 저들의 치명적인 분쟁을 종식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바울이 제시한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하나님의 암호! 

암호는 자기 편에게만 공개합니다. 군대 있을 때 비둘기, 평화 

암호는 생사를 갈라놓을 정도로 중대한 것입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 비밀을 선택된 사람들에게는 다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들으면 선택된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순순히 믿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할 때 믿음으로 “아멘!” 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의 암호가 등장합니다.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놋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자 하나님이 진노하여 불뱀이 나타나 그들을 물었고, 그들은 온 몸이 부어오르고 죽어갑니다. 그때 모세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암호를 알려줍니다. 놋으로 불뱀과 동일한 모형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대로 믿고 바라본 사람은 다 살았지만, 믿지 않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암호를 믿기만 하면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행위나 공로는 필요 없습니다. 

이 믿음의 유무에 따라 모든 인간이 둘로 갈라집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표적으로 두 부류로 말하고 있습니다. 22절. 헬라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메시야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바랬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야라면 표적을 보여주시오, 표적을 보여주시오’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그런 능력을 가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힘없이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무능력한 것이었고, 우스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마지막까지 조롱하며 외치기를 ‘네가 메시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를 구원하고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합니다. 그 표적이 보이는 곳을 향해 움직입니다. 병 낫게 해 주십시오. 만사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놀라운 기적과 이적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놀라운 일들이 내 주위에 일어나야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찔려야 좋은 종교. 

 

반면에 헬라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 과학의 힘으로 모든 질병과 인류의 문제를 극복하고 결국은 파라다이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대 헬라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추구한 것이 철학입니다.  

철학은 영어로 필로소피입니다. 필로는 ‘사랑한다’는 말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인들은 철학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지혜와 지식을 찾아 나섭니다. 

 

본문을 쓴 바울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적인 삶과 지식과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적인 삶을 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바리새파 유대인이었지만 또 헬라 철학에 능통하였습니다. 

그 당시 유명한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비웃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비웃었던 십자가에서 아주 놀라운 ‘십자가의 도’의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24절에서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고백을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의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집니다. 

바울은 ‘내가 평생에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사도바울은 언제나 십자가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훌륭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십자가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와 같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는 것에 대하여 그는 늘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의와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였고,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며 고백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의와 능력을 자랑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31절에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역설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가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를 세우고 베뢰아, 데살로니가를 거쳐 고린도를 가기 전에 아테네에서 그 유수한 철학자들 앞에서 그들과 논쟁을 합니다. 논쟁은 나도 좀 하지 하고 했는데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고 깨달은 것이 십자가의 도라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교회에서 실천해야 할 십자가의 도는 무엇일까?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입니다. 주택에 유리창이 오랜 시간 깨져 있다는 것은 집주인이나 보수할 사람이 살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에 내가 그 집의 다른 유리창을 깨뜨려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깨진 유리창의 문제이지만 점차 그 집에 쓰레기가 쌓이게 될 것이요, 노숙하는 이들의 아지트가 될 것이며, 결국 우범지역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윌 교회의 깨진 유리창부터 갈아 끼우는 일이 시급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큰 위기의 순간에 와 있습니다. 11월 재계약, 헌금은 줄고

과연 우리 교회에 깨진 유리창은 무엇일까? 두 가지, 

성경 일독의 참여가 저조, 세 분, 셀 리더들은, 김미경 집사님, 윤태준 성도님, 박민형 반주자 셀원들 독려해서 성경 일독에 참여들하게

십일조는 우리 교회의 재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시던 분들이 점점 안하기 시작. 십일조는 하나님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우리 새하늘 교회의 유지를 위해서도 미루지 않고 낼 수 있도록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다 편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물론 편히 사는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일도 아닙니다. 

무조건 편히 사는 것만 추구하다보면 우리들은 몸도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지고, 정신도 약해지고, 신앙도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범을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 보여지만 거기에 생명과 축복과 상급과 위로가 있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십자가의 도의 의미를 확실히 깨달아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에서 펼쳐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레위기 23장 – 마태복음 2징

레위기 23장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한 각종 절기들

1-3절 안식일

4-8절 유월절과 무교절

9-14절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행해지는 첫 이삭 단을 드리는 축제.

15-22절 오순절(칠칠절)

23-25절 나팔절

26-32절 속죄일

33-44절 장막절(초막절)

 

24장 공동체의 신앙 및 사회 생활 유지의 법

1-4절 매일 정리해야 할 등불 규례

5-9절 일주마다 한 번씩 교체 정리해야 할 진설병 규례

10-16절 불경죄의 처벌

17-23절 상해죄에 관한 규례, 탈리오의 법,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마 5:38-44 원수 사랑

 

25장 안식년과 희년의 법

1-7절 안식년 제도

8-22절 희년에 관한 제도

23-34절 토지에 관한 규례

35-55절 가난한 동족에 대한 보호 규례

26장 백성을 향한 순종의 촉구

1-13절 순종에 대한 축복

14-39절 불순종의 형벌

40-46절 경고와 약속

 

27장 이스라엘 백성의 헌금법

1-27절 서원물에 관한 율례    하나님께 서원할 때는 함부로 해서는 안되며 일단 서원한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28-29절 아주 바쳐진 것에 대한 규례

30-34절 십일조에 관한 규례

마태복음 

1장 예수의 족보와 동정녀를 통한 성육신 탄생의 과정

1-17절 예수의 족보

18-25절 동정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장 동방박사들의 방문과 헤롯의 유아 학살 및 아기 예수의 피신

1-12절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 방문과 경배

13-18절 헤롯의 유아 학살과 예수의 애굽 피난

19-23절 예수의 나사렛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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