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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1-12)

목사님 0 21

  

 

   사람 된 값어치는 그의 용모나 그가 지니고 있는 재산이나 지식의 정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누구를 위해 일하느냐, 무엇에 

쓰임받느냐, 이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값어치가 평가됩니다. 

사람은 흔히들 잘 먹고 잘 입어서 행복한 줄로 착각합니다마는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면 행복이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진정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 내가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 시간에도 나를 꼭 필요한 존재로 보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 심지어 내가 생각해 볼 때에도 내가 불필요한 존재로 보일는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내가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나를 이 땅에 두신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나 우연으로 내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행복을 맛보고 존재의 가치도 깨닫게 됩니다. 

 

아시는 대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로,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크게 쓰임 받은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름을 받았던 당시에는 말할 수 없이 처량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가 남들이 말하는 좋은 처지에서 하나님께 부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살인자요 도망자였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체포될 것이 두려워 도망 다니던 사람입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마음 놓고 사람을 만날 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은둔과 피신으로 이어지는 방랑자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심신은 늘 불안하고 불안정했을 겁니다. 

그리고 모세는 재산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처갓집의 양을 치는 초라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이 여든이 되었습니다. 온전히 나를 포기한 상태에서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고 양을 치고 있던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은 바로 그런 때입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것이 그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방송국에서 계속 전파를 보냅니다. 누군가 라디오를 가지고 주파수를 잘 맞추면 당장 소리가 들립니다. 뉴스도 들리고 음악도 들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라디오가 있어도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주파수를 잘 맞추지 못하면 절대 들을 수 없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파수를 잘 맞추지 못함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8:2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의심으로 가득하여 마음을 닫고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완고한 고집으로 거부하는 자세로 있으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잘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설교를 듣거나 기도할 때, 성경을 읽는 중에 어떤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으면 의심 없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받아들이십시오. 그 순간 하나님이 지금 나를 부르시고 계시구나! 하고 얼른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겠나이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한 번 듣고 나면 그것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반응한 사람들은 모두 새롭게 되어서 대단히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마흔의 나이에 찬송을 부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이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같지 않는 나 같은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가득한 음성으로 부르시고 그렇게 구원해주셨습니다. 

 

나이 80세, 실패한 사람, 좌절한 사람, 인생으로서는 끝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너무나 두려운 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라 하면 너는 갈 일이다, 네 과거도 알고 네 미래도 알고, 네 현재의 부족함도 안다, 

다 안다, 그리고 처음 주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행하신 일은 천지개벽도 무슨 기적도 아닙니다. 오직 조용하게 ‘한 사람’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르고 있었지만 벌써 80년 전부터 나일강에서 건지시고 바로의 궁에서 40년 공부하게 하시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게 하시어 지도력을 키우신 것입니다. 80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심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인생을 놀라웁고도 

아름다운 인생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한 위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모세의 나이가 80세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인간적으로 볼 때에 80세는 희망이 사라지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숨어서 지내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인도하여 내시겠다는 어마어마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여러분이 모세라면 믿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믿음으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똑 같은 말씀을 몇 사람이 같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큰 축복을 받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4:2에 보면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화합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내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게 느껴지지만 내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놀라운 일이 내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습니다. 나를 향해서 큰 복과 놀라운 비전을 준비하셨군요.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하는 이 믿음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떠나야 합니다. 

기독교는 떠남의 종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목동의 신분을 떠났고,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의 삶을 떠났습니다. 

기독교에는 역설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약한 자를 쓰셔서 강하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택해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없는 자들을 택하사 있는 자들을 폐하게 하시고.  

떠나면 망할 것 같은데 사실은 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박해를 받아서 쫓겨나고 밀려나서 

고향을 떠났는데 얼마 후에는 그들이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떠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미지의 세계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삽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해 출발하려고 할 때에 항상 ‘두려움’이란 것이 방해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새로운 일을’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되지’ 미래에 대한 도전이나 꿈을 접고 사는 태도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본토, 친척, 아비 집’ 이 모든 것들은 아브라함에게 익숙한 것들입니다. 지금까지 누리며 살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익숙한 것에서 떠나지 않고는 결코 새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익숙한 것은 우리를 안주하게 만듭니다. 발전적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향해 부지런히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성능 좋은 배가 있을지라도 배가 돛을 올리고 항구를 떠나서 바다로 향하여 나가야만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좋은 배를 항구에 묶어만 둔다면 그 성능 좋은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떠나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바꾸거나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려고 할 때 많은 갈등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앞서 갈등을 했습니다. “나는 말을 못합니다. 입이 뻣뻣합니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갈등을 믿음으로, 순종으로 넘어섰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갈등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떠나라면 떠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고는 엄청난 사명을 맡기십니다. “내가 너로 하여금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게 하리라”

깜짝 놀란 모세의 고백이 11절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 내가 누구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죄를 지은 도망자가 아닙니까? 이 처량한 꼴로 40년을 썩어온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이 너무 크고 위대한 것인데 나의 형편이 그런 일 하기에는 당치도 않게 초라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진정한 자기 고백입니다. 

그의 약함과 구제불능과 비참한 모습을 액면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소원을 아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백성을 제발 구원케 해 주세요’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나로 하여금 위대한 일을 하게 해 주세요, 지도자가 되게 해 주세요, 이 백성을 구원하게 해 주세요, 보람있는 생을 살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중점 내용은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고, 모세는 

단지 그 하나님의 손에 들려 쓰임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모세가 하나님께 붙들리어 하나의 그릇으로 쓰임받고 있을 뿐입니다. 

부름 받는 그 순간에 그는 전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보십시오. 그가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인해서입니다.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 강에 버려지고 정처 없이 떠내려 가다가 바로의 공주 앞에 닿고 그 눈에 띠어 40년 동안을 애굽의 궁전에서 자라나지 않습니까? 그는 그 곳에서 애굽의 모든 문물을 공부하게 되고 지도자로 훈련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결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애굽의 궁전에 살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시기 위해서 진작에 설정해 놓으신 소중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그는 광야로 내쫓겨 양을 치는 목자가 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그야말로 코가 땅에 닿도록 낮아질대로 낮아집니다.

꺾이고, 찢어지고 완전히 자기를 버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중동 지역에 ‘양을 쳐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미련한 양을 치면서 많이 생각하고 인내와 사랑과 지도력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격언입니다. 

긴 세월 그 40년, 어찌 우연이었다고 하겠습니까? 

이윽고 모세가 부름을 받는 그 순간, 

그때 하나님께서 먼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과거와의 절대 단절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얼마나 깨끗하게 단절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미래를 향한 추진력의 바로미터가 됩니다. 

과거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면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혼이란 미래를 향한 약속인 동시에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완전한 청산을 의미합니다. 

이전에는 애인이 몇 명이었든지 간에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는 깨끗이 청산하여야 합니다. 결별하여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부르시면서 과거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도 지난 날의 성공을 가지고 무슨 큰일이나 한 듯이 교만해서도 안되며,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여 자포자기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네 신을 벗으라’, 이것이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40년 동안 양을 치던 목동이 이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히브리 민족들을 이끌고 나와야 하는 그 순간에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여든 노인이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어디를 가고 어디를 옵니까?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어 주세요. 이대로 살다 죽으렵니다.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타성에 젖는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중학교 때 목발을 1년 동안 짚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1년 뒤에 목발을 제거하고 걷는데 의사 선생님이 목발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가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마 이렇게 변명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애굽에는 정녕 못갑니다.’

게다가 나는 입도 유창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내가 가라면 가는 것이지 왠 말이 이렇게 많으냐’

‘가라!’ 행동적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 생각으로 긍정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종한테는 나의 감정이 깨끗하게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기분이 좋다, 나쁘다, 뭐가 어떻다 저떻다 해서는 종이 아닌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느니, 못알아주느니 이런 이야기가 종으로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에는 내 존재가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속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하나님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건 이 백성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이끌 것이다. 반드시 가나안 땅까지 이끌어 갈 것이다. 

저 모세가 참으로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마는 그가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를 쓰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와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와 소명을 분명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에 내 생은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의 그 귀한 사역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애굽기 28-34장

 

28장 제사장 복식에 대한 규례

4절 에봇 대제사장이 겉옷 위게 입는 조끼의 일종

30절 우림과 둠밈

돌로 만든 주사위의 일종

 

29장 제사장 위임식 규례

46절 

 

30장 분향단, 속전, 물두멍, 향에 대한 규례

11-16절 속전,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헌금하는 제도

 

31장 성막 제조자 임명과 안식일 규례, 십계명 두 돌판

1-11절 성막 건축의 주역, 브살렐과 오홀리압

12-17절 안식일 규례

18절 십계명 두 돌판

 

32장 금송아지 우상 숭배

1-6절 금송아지를 숭배한 백성들

7-14절 모세의 중보 기도

15-20절 증거판을 깨뜨린 모세

21-24절 아론의 변명, 24절 4절, 조각칼로 새겨

25-29절 우상 숭배자들을 도륙함

30-35절 재차 중보 기도하는 모세

 

33장 1-6절 가나안 동행을 거부하시는 하나님

7-13절 모세의 기도와 간구

14-23절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34장 모세의 2차 40일 기도와 새로 받은 십계명 두 돌판

29-35절 광채나는 모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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