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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의 첫 열매(고린도전서15:12-20)

목사님 0 72

     

     4월이 되자 날씨는 완연한 봄이 됐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얼어붙은 것 같던 대지가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이 아무리 강하게 보여도 새 생명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지난 겨울 매서운 추위가 있었지만 새싹이 돋아나고 꽃피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다 죽은 것 같아 보였던 생명의 씨는 그 씨앗 안에서 때를 기다렸다가 

봄이 되니 다시 피어났습니다. 

해마다 새움이 돋는 이때가 되면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이 부활의 소식을 꽃봉오리에 새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꽃피는 계절, 봄이 부활절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이 대자연의 변화가 부활절의 영적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저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평화주의자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부활’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면 풀은 생기를 되찾아 움이 트고,

뿌리만 지탱하던 가로수 길의 잔디는 물론 돌 틈에서도 

파란 싹들이 돋아나고,

자작나무나 포플러, 벚나무 등에도 부드럽고 향긋한 새 잎이 펼쳐지고,

보리수 역시 새 움을 터뜨린다.

새들은 봄을 맞아 즐겁게 둥지를 만들기 시작하고,

풀도 나무도 새도 벌레도 아이들도 모두 즐거워 보였다.

 

톨스토이는 역동적인 계절의 변화를 그림처럼 묘사하면서 이 소설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소설은 속물이었던 주인공 네플류도프가 자기가 버린 여인 카추샤 때문에 죽은 듯 잠들어있던 참된 인간성이 되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문제투성이였던 러시아가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그런 소망을 담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주목할 것은 톨스토이가 주님의 부활에서 이 이야기의 ‘모티브’를 찾아냈다는 점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주인공 네플류도프가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톨스토이는 봄기운이 대지에 스며들면서 대자연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 신앙이 한 심령에 그리고 한 공동체에 자리 잡게 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봄기운이 대지에 충만해 지면서 잠자던 개구리가 깨어나는 것처럼,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충만해 지게 되면 잠자던 심령이 깨어나게 됩니다. 

봄이 얼어붙었던 대자연을 꽃 대궐로 바꾸어놓는 것처럼,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심령과 공동체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었고,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의 날 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의 승리의 날입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때는 

새벽이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 새벽, 몇 사람의 여인들이 찾아간 곳은 예수님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새벽은 특별했습니다. 

온 세상을 향해 위대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새벽은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새벽이 되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어떤 죄인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습니다.  

기독교의 특징,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단은 다 틀렸다, 이것만 해결하고.

본래 죽음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검정색입니다. 

부활의 새벽 이전까지는 온통 검은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고, 태양이 떠오르면 온 세상이 각각의 색깔을 드러냅니다. 이 찬란한 화사함, 이게 바로 부활의 색깔이고, 생명의 색깔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부활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우중충한 절망의 그늘에서 떨쳐 나와 생명의 빛 아래서 화사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밝은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새벽이 밝아지자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절을 맞은 우리도 영혼의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실로암 찬양

 

그리고 부활절의 대표적인 음식으로서 계란이 있습니다. 

계란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계속되고 있으며, 

마치 겨울 뒤에 숨어있는 봄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부활절 계란은 주님께서 살아나셔서 부활의 새 생명을 얻으셨던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계란을 하나씩 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김미경 집사님의 정성이 들어간 

그런데 그 계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유정란과 무정란.  

유정란은 그 속에 생명이 있는데 무정란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정란은 어미닭이 품으면 나중에 병아리가 나오는데 무정란은 

어미닭이 아무리 품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분들도 유정란과 무정란과도 같습니다. 신자와 교인.

교인은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니까 아무리 10년, 20년 다녀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명이 없으니까. 

그러나 신자는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서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가 불쌍한 사람들도 구제하고,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교회의 사명은 부활의 신앙을 민족의 가슴마다 심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애국이, 효도가 없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그 마음에 심어주면, 그 인생은 병이 들었어도, 돈이 없어도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이 땅의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로 봐서는 지금 전도가 정말로 필요한 절실한 시기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는데 국민의 3대 의무가 있듯이 우리 교인들은 

신자의 3대 의무를 지켜야, 주일성수, 십일조, 성경 일독. 

저는 목회자로서 설교 준비 열심히 하고 여러분들은 주일성수와 십일조, 

성경 일독을 열심히 하면 교회가 부흥. 지금 우리 교회는 지금 이 자리에 

남느냐 아니면 또 이전을 해야 하느냐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머지 않아 교회를 이전해야. 무슨 일이든지 협치를 해야.

여러분들에게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의 다시 살아나심,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부활절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 가족이 복음을 들고 제물포 항에 도착해서 한국 땅을 밟음으로서 이 땅에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한국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장로교 소속 선교사님이고, 아펜젤러 목사님은 감리교 소속 선교사님이십니다. 

그 당시 교회법은 먼저 도착한 교단의 선교사가 그 땅에 우선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두 분이 사이좋게 손잡고 같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같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펜젤러는 도착 즉시 미국 감리교 선교부에 편지를 보내었는데 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우린 부활절 아침에 이 땅에 도착 했습니다. 이 날 사망의 철장을 깨뜨린 주님께서 이 백성들을 묶고 있던 결박을 푸시고 그들을 주의 자녀로, 빛과 자유로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이것이 불과 137년 전의 일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부활절 아침에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본문 19절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만일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부활이 있기에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떤 부자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선교사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남루한 차림에 삐쩍 마른 모습의 선교사가 땀을 흘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부자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어디를 가고 계십니까?” 선교사가 대답했습니다. “예, 저 고개 너머 나환자촌에 복음을 전하러 가고 있습니다.” 부자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나 같으면 백만불을 준다고 해도 그런 곳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선교사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정도 돈을 받고는 안 갑니다.” 부자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얼마를 받고 가는 겁니까?”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에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어. 

사도 바울의 위대한 고백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0절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 장차 성도들이 부활할 것에 대한 샘플이요 보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세계인 자연계에서도 부활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봄이 오면 죽은 것 같았던 단단한 나뭇가지에서 화려한 꽃이 피어납니다.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 문장이 오늘 부활장 고린도전서 15장에서 8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반드시 있다. 틀림없이 있다. 확실하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 문장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 58절까지 비교적 긴 장입니다. 

오늘 오후 시간에는 부활장, 고린도전서 15장을 펼쳐놓고 한번 정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능력이, 부활의 기쁨이, 부활의 기쁜 소식이 여러분의 심령을 가득 채워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부활신앙이 여러분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습니까?

주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며 부활 새벽의 은혜를 가슴에 안고 위로부터의 하나님의 음성에 힘차게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22-28장

22장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순종과 여호와 이레의 축복, 

나홀의 계보. 나홀의 후손 중 브두엘의 딸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고 

브두엘의 아들인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은 야곱의 아내가 되기 때문에 기록 

 

23장 사라의 죽음과 막벨라 굴 구입

4절 9절 15절 이 구절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땅 문서라고 주장

 

24장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나홀과 밀가  브두엘의 딸 리브가 아들 라반

 

25장 아브라함의 서자들의 족보(그두라)와 아브라함의 죽음

에서와 야곱의 출생, 야곱의 장자권 획득

 

26장 아내를 누이라 속인 이삭의 실수와 번성한 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 

에서의 결혼 34, 35절 에서와 에서의 후손들은 여호와 신앙에서 떠나게

 

27장 장자 축복을 빼앗은 야곱에 대한 에서의 분노 및 야곱의 도피

25장 23절의 축복

 

28장 야곱의 밧단아람 도피와 벧엘 언약의 체결 및 야곱이 서원

찬송가 3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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