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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피날레(신명기 34:1-12)

목사님 0 275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일을 만납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승승장구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질병으로 고생할 때도 있고, 경제적인 위기를 만날 때도 있고,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어둔 밤을 지날 때입니다. 은혜의 세계는 밤만 있는 세계도 아니고 낮만 있는 세계도 아닙니다. 그 둘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입니다. 

살다보면 아무리 피하려 해도 어둠의 시간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조차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리듬 속에서 자라납니다. 

코로나 19는 우리들의 일상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다들 잘 이겨나가시기를 바라지만 특별히 목회자로서 바라는 것은 신앙이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듯이, 믿는 우리들도 때로는 곤고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고난이 중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한시라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시편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얼마나 실감하며 사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언제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이 제 아무리 비루하고 남루해 보여도 우리의 '있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삶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의 삶은 성실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함부로 다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2021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매번 연말이 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세월이 빠릅니다. 

순식간에 1년이 지나가버린 느낌입니다.

여러분, 왜 연도수가 중요하고 연말연시가 중요할까요?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연도가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뭐가 달라지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연도수가 바뀌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분주한 일상의 삶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던 우리가 잠시 멈추어서 인생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말이 있고 송년주일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다시 한번 시작할 수 있기 때문.

교회적으로 보면 새하늘 교회형 성경일독표 구약편을 만들어서 1년 동안 

통독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2022년형 성경일독표를 나누어 드릴텐데 

한분도 빠짐없이 참여해서 2022년은 전교인이 성경일독을 같이 함으로 

신앙이 자라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이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똑같이 주신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잘 붙잡은 사람들.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기 때문에 왔을 때 붙잡아야 합니다.  

신앙도 그런 면에서 선택과 결단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멋진 피날레로 인생을 마친 인물, 모세가 등장합니다. 

모세는 흔히들 모세오경의 저자라고들 합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오늘 신명기 34장은 모세오경의 마지막 부분, 피날레입니다. 

그는 이제 120세에 도달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파란만장했던 일생이었습니다.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바로의 압제로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애굽 공주의 양자로 궁궐에 들어가 40년 동안 애굽의 왕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히브리 민족이 핍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여 그후 40년 동안은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처갓집 더부살이를 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40년 동안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군하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온 120년 세월이 마치 주마등처럼 모세의 눈앞에 스쳐갔을 것입니다. 

이제 그가 떠날 날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하고 홀로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이 느보 산 중에서도 가장 높은 최고봉인 비스가 봉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합니다.

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만 보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34:4 

인간적으로 보면 아쉽고 섭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는 거기까지, 

모세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수긍하고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34: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그때 모세가 120세였는데도 기력이 쇠하지 않고 정정했습니다. 

34:7 그는 기력이 쇠해서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사명을 다해서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고 모세는 그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처럼 모든 사명을 다 마치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여호수아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의 생애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이래서 모세를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슬람에서도 모세는 예수와 같은 반열의 존경받는 선지자.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은 복된 죽음을 요한계시록 14:13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결코 복되다고 말하지 않지만 ‘주 안에서 죽는 죽음’은 복되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살다가 죽는 죽음, 예수 믿고 천국을 소망하다 죽는 죽음은 복되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수고하고 애쓰며 살아갑니까? 그런데 그 모든 수고를 마치고 안식하게 되었으니 복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믿음으로 수고하고 애쓴 결과 천국의 상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정말 이 말씀대로 오랜 세월 수고한 모든 삶을 마치고 이제 천국의 안식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모세처럼 죽은 신앙의 선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바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치열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순교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적 서신이 디모데후서인데, 그 중에 마지막 부분에 그의 최후 고백이 나옵니다. 

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그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천국에 들어갈 것과 주님 앞에서 면류관을 받을 것을 당당히 선언합니다.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당당하다는 것, 믿는 사람들의 상장.

 

우리가 인생을 살다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은 하나님을 뵙는 날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 살 동안에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을 보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가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 당시 거울은 청동.  

그 때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뵈올지 생각하면서 마치 결혼 날짜 받아놓은 신부처럼 나 자신의 모습을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즉시 천국 갈 수 있지만,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사명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시간을 두고 성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겁니다. 

마치 안경알을 닦듯이 우리의 영혼을 맑고 투명하게 갈고 닦으며 수련을 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야 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다윗의 귀중한 깨달음이 나오는데 그는 내가 가치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비로소 내가 인간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평가해 볼 때 내가 쓸모가 있어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아직 멀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구제불능인 인간을 하나님께서 먼저 엄청나게 사랑해 주시고 또한 깊이깊이 사랑해 주시기에 내가 오늘날 가치있는 존재가 되었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성화의 과정은 심은대로 거둔다.

이 엄연한 진리 앞에 우리는 좀 더 숙연해져야 합니다. 

내가 심은대로 거둔다 이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고로 우리는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또 심었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늘 심고 오늘 당장 거두는 게 아닙니다. 오늘 심어 놓고 10년 후에 거두기도 하고 20년 후에 거두기도 하고 때로는 나 죽은 후에 거두기도 합니다. 

모세도 죽은 후에 거둡니다. 여호수아가.

반드시 거둡니다. 그런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고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조급해하며 당장 눈 앞에 있는 사건 하나하나로 울고불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쓸데없이 조급하게 판단했다가 뒤늦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워 하지는 않았습니까?

기다리되 낙심하지 말고, 초조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릴 것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결과가 올 것입니다.  

모세에 대한 평가를 10절에서는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합니다. 그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래 함께 하면 닮기 마련입니다. 모세는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어떤 사람이 됐습니까? 

민수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사람을 때려서 죽인 사람, 다혈질의 사람이었지만 온유해진 사람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린도후서 4:16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모세는 아름다운 작별로 장엄한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모세가 떠날 때, 그리고 떠난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십시오. 백성들이 얼마나 슬피 울며 애도했는지 모릅니다. 34:8 

여러분, 모세와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을 성경을 통해 더듬어 보십시오.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습니까? 백성들의 반역과 핍박, 심지어 모세를 죽이려고 달려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끊임없이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섬겼습니다.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었습니다. 

백성들은 떠나가는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울며불며 30일 동안이나 애곡합니다. 아름다운 작별의 장면입니다. 

 

여러분, 송년주일을 보내면서 1년을 마무리하는 가운데 내 인생의 피날레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족하지만 다행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2022년이라는 기회를 새롭게 주십니다. 

부디 한 해를 뒤로 하고 한 해 한 해 변화된 모습으로 살다가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모세처럼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월 26일 

스가랴 14장, 말라기 1-4장, 시편 1-6편

 

14장 그리스도 재림 시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과 열방에 대한 심판

그리고 메시야 왕국의 영광

 

말라기 

구약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여 신, 구약의 가교 역할을 하는 예언서.

 

말라기서는 제 1차 포로귀환(B.C 537년)이 이루어진 지 약 1세기가 흘러 

성전 재건, 성벽 수축 등 일련의 재건 사업이 끝나 어느 정도 국가로서의 

외형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를 비롯하여 학개, 스가랴 등에 의해 예언된 영광된 메시야 왕국이 가시적이며 즉각적으로 임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신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점차 타락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을 회개케 하고 오직 의로운 경건한 자만이 앞으로 반드시 도래할 메시야 왕국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1장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및

제사장들의 고유 직무와 관련된 죄악상

 

2장 범죄한 제사장들을 향한 저주 선포와 백성들의 

문란한 결혼 생활에 대한 책망

 

3장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의 도래 예언과 

십일조와 헌물 규례 위반에 대한 책망 및

의인과 악인의 최종적 분리 예언

 

4장 여호와의 날에 임할 최후 심판과 엘리야의 출현 예언

 

3:1 내 사자, 4:5 선지자 엘리야

세례 요한

 

시편 1-6편

총 150편의 시들은 1,000년 이상의 오랜 세월에 걸쳐, 시대와 지역을 달리하는 수십 명의 저자에 의해 각각 창작되었습니다. 

 

1편 의인과 악인의 두 길

2편 다윗 왕가의 정통성과 다윗의 왕가에서 나실 메시야의 영광 선언

3편 압살롬 반란 사건으로 피하는 다윗의 간구

4편 여호와 신앙에 근거하여 반역의 아픔을 이긴 다윗

5편 악인의 응징과 의인의 보호에 대한 기도

6편 다윗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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