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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전제, 회개와 감사(요나 2:1-10)

목사님 0 861

   

 

 

  오늘 읽은 본문인 요나서 이야기는 여러분 대부분이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순종해야 할 선지자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 바다에 던져져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요나서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설명이 다양하지마는 요나서는 역사적 사실, fact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나라는 인물이 실제적으로 선지자로서 활동을 한 기록이 열왕기서에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께서 직접 누가복음 11:29에서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고 하시면서 요나가 실제 인물임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역사적 뒷받침을 해 줄만한 내용을 요나서에서는 ‘아밋대의 아들’이라는 것 밖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14장 23-27절에 여로보암 2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 요나가 등장을 합니다.

열왕기하 14: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여기에 나오는 여로보암은 2세이고, 여로보암 1세는 북 이스라엘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을 41년 동안 다스리면서 

영토를 확장해 나가 옛 솔로몬의 영토를 회복시켰고, 북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가장 흥왕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시기에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어떤 말씀이 임하였느냐 하면 2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저 큰 성읍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 침략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기를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하시니 요나로서는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보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철야하며 기도하는 것보다 능력 있는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3천 배 같은 것이 없습니다. 금식하는 것보다, 철야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3천 번 절을 하는 것 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에는 부적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지도 않는데 그냥 주일에 슬쩍 교회에 왔다 갔다고 그것이 부적의 효과를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는 대신에 욥바로 내려가서 스페인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칩니다. 3절을 보면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기에서 사용하는 단어 ‘마침’은 정말 묘한 단어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하나님의 때나, 하나님의 뜻을 표현할 때도 사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요나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피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구요. 

두 번째는 피해갈 때에 마침 시기에 딱 맞게 일어나는 일들, 특히 그것이 

나에게 이롭게 전개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잘 되어지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요나도 다시스로 가려고 욥바로 내려갔다가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습니다. 이 때 요나는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께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신 게야. 그래서 이렇게 나를 다시스 가는 배를 만나도록 하신거야! 하면서 이 배를 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은 순풍에 돛을 달고 편안히 항해하던 배에 풍랑이 일어서 제비뽑기를 했더니 요나가 딱 걸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요나가 자기 잘못을 시인했다는 사실입니다. 

1:12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여러분,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 위하여 ‘나’ 때문이라는 고백이 필수적입니다! ‘누구 누구’때문이 아니고 ‘내’가 욕심 사납고 고집 세고 어리석기 때문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나의 경우도 그렇지 않습니까? 배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잠잠하고 평안하던 바다가 갑자기 노한 풍랑이 일어난 까닭이 그 어떤 사람 때문이 아니고  바로 요나 자신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문제의 원인을 아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깨달음만 있으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요나도 그랬습니다. 

‘나’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바다 속에 뛰어드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자기 한 사람이 자기 과오를 깨닫고 인정하니 모든 풍파가 일시에 그쳤습니다. 배가 안전해졌고 뱃사람들도 살았습니다.

더 나아가 요나가 자기 책임을 통감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바다 속에 뛰어드니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요나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니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나 하나님은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나는 형통을 주문했는데 고난이 배달되어 옵니다. 나는 풍요로움을 주문했는데 가난이 배달되어 옵니다. 나는 건강을 주문했는데 때로는 고통과 아픔이 배달됩니다. 나는 성공을 주문했는데 실패가 배달됩니다. 나는 행복을 주문했는데 때로 눈물이 배달됩니다. 

여러분, 그럴지라도 그것이 결코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다.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배달되었다면, 내 인생의 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다른 쪽 문이 열렸으니 다른 쪽을 바라보라는 주님의 지시임을 기억하십시다. 주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이쪽 문이 닫히고 다른 쪽 문이 열렸다면 우리에게 그것이 훨씬 더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되 버리시지 않습니다!

요나를 바다 속에 내던지신 하나님은 또한 물고기도 예비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밤낮으로 삼일 동안을 있게 됩니다. 그런데 물고기 뱃속은 무덤처럼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곳입니다. 

사방이 막혀 있어서 인간적인 기대와 소망이 끊어진 곳입니다.

요나는 바로 이 물고기 뱃속에서 거듭납니다. 이 모든 고난이 자신의 불순종에 대한 징벌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합니다.

욘 2:2-9절에 나타난 요나의 회개 기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2절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고난을 당할 때 크리스찬이냐 아니냐가 보여집니다. 

세상 원망할 것 없습니다. 남 탓 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 집사람 팔이 아픈 다음에 저는 부지런해졌다고.

부엌일도 열심히 배우고.

저는 고난을 기다리고, 저희 집사람은 기도하기를 고난 주시기 말기를

 

먼저 요나는 주님의 눈앞에서 쫓겨났어도 반드시 주님 계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다고 결단합니다. 4절 

지금 이렇게 사방이 막히고 절망스러운 물고기 뱃속 한 가운데 들어와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 계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다는 결심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세상에서 힘들고 절망스러운 일을 당할 때 새하늘 교회 성전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난 한 가운데에서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하면 멸망하지만 다시 주님 계신 성전을 바라보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절망의 밑바닥에까지 내려갔지만 주님께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세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우리를 외면할지라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세상은 우리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고난과 위기의 바다 속에 던져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냥 바다 속에 죽게 하지 않으시고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요나가 바다 속에 풍덩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해두셨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8-9절을 보세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요나는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저버리며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달리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마지못해서 억지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주님께 찬미의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표시, 징표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그 다음에 서원한 것은 무엇이든지 다 지키겠다는 결심입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비록 내게 손해가 오고 내 자신이 고달파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신실한 마음으로 지키고야 말겠다는 결단.  

그러면서 요나는 마지막에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온다는 고백입니다. 

사람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체 절명의 위기 앞에서 서게 될 때 그 구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주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참된 구원은 하나님 한 분께만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물고기 뱃속 한 가운데에서, 아무도 의지할 곳 없고 칠흑같은 어둠과 사방이 꽉 막힌 이 물고기 뱃속에서 진실한 회개와 결단이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요나는 이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회개하는 가운데 깨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옛사람을 청산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물고기 뱃속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무덤 같이 어두컴컴한 가운데 오직 주님의 빛만을 바라며,

사방이 꽉 막혀 아무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을 때 주님만 바라보며

가장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의 죄과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새사람으로 거듭 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결론 말씀은 2장 10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물고기 뱃속에서 온전한 회개가 일어나니 마침내 그 뱃속에서 나오는 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 기나긴 노아의 홍수가 끝나는 날이 마침내 왔던 것처럼 요나의 물고기 뱃속 시련도 드디어 끝나는 날이 왔습니다.

고난의 시간에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진실로 회개하고 

새사람 되어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월 12일

학개 2장 스가랴 1-6장

 

학개 2장

성전 재건 공사가 약 한 달 정도가 지날 즈음에 백성들 사이에서는 과거 

솔로몬 성전에 비해 너무 초라한 새 성전의 외형에 대해 낙담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지금 재건하고 있는 제 2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외형적인 면에서나 규모적인 면에서는 솔로몬 성전에 비해 외소하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으로 함께 하실 것임을 밝혀 성전 재건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성전 재건 사업의 재개는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성전 재건의 재개에 따른 축복 역시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받을 축복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성도들은 늘 성실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도자 스룹바벨에 대한 축복도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스가랴 1-6장

남왕국 유다는 B.C 58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갔지만 B.C 538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게 되는데 사마리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의 방해로 16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후 B.C 520년에 학개가 성전 재건을 부르짖었고 2개월 뒤에 스가랴도 

등장하여 성전 재건을 독려하여 B.C 516에 마침내 제 2 성전,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됩니다. 

본서는 성전 재건을 독려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8가지의 환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전반부와 메시야의 사역에 대한 예언을 담고있는 후반부로 나뉘어집니다. 

 

1-6장 선민의 회복과 열방의 심판에 관한 8가지 환상

이 부분은 스가랴가 환상을 본 시점을 기록하고 있고 나아가 성전 재건이라는 사명을 수행하여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1:1-6절, 그리고 성전 재건과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 및 악한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8가지 환상을 기록한 1:7-6:8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대관식을 거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한 6:9-15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 8가지 환상은 모두 동일한 날 보여진 것으로서 1-3환상은 성전 재건을 통한 시온의 회복 및 선민을 괴롭힌 원수 열방에 대한 심판 예언을,

4환상은 선민의 성결을

5환상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로 예표되는 왕과 대제사장의 직분을 동시에 소유하신 메시야에 의한 신약 교회 건설을 예언을

6-8환상은 악한 모든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보여줍니다. 

 

1장 회개의 권면 및 첫 번째 환상, 빨간 말을 탄 자의 환상과

두 번째 환상, 네 뿔과 네 공장의 환상

2장 세 번째 환상, 척량줄을 잡은 천사의 환상

3장 네 번째 환상, 여호와 앞에 선 여호수아의 환상

4장 다섯 번째 환상, 두 감람나무 사이의 순금 등대 환상

5장 여섯 번째 환상,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과 

일곱 번째 환상, 에바 안의 여인 환상  

에바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곡식의 양을 측정할 때에 사용하던 도구

6장 여덟 번째 환상, 네 병거 환상과 여호수아를 위한 면류관 제작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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