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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도, 나가도 (신명기 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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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뉴스에 보니 강남역 한 음식점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쉐이크 쉑 햄버거(Shake Shack), california에 가면 in and out burger가
있습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버트란트 러셀은 그의 ‘행복론’에서 ‘자신의 존재를 겸허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근본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어 평가하고 사는 사람은 항상 자기 성공에 놀란다고
합니다. ‘아 나는 이만한 사람이 못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복이...’ 자기 앞에 이루어지는 그 일에 대해서 스스로가 놀라면서 삽니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자기를 스스로 높이며 사는 사람은 실패에 대해서 놀라며 산다는 것입니다. ‘내게 이런 일이 있다니, 내게 어찌 이런 불행이...’
‘어쩌다 저런 인간을 만났단말인가. 내가 저런 인간하고 살 사람이 아닌데... 이거 하나님이 실수했나 내가 실수했나?’ 그러고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 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선택하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선택은 내게 있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복과 저주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은 자유이지만 선택에 따르는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package로 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많은 종류의 사람들과 같이 섞여서 다니게 되는데 친구 분들 몇이서
부부동반으로 온 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불평 불만을 하니까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계속해서 툴툴대니까 나중에는 피하게 되고 같이 여행하기가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불평불만하는 그런 사고로는 스스로도 불행하고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불행제조업자들이 되고 맙니다. 구제불능입니다.
들어왔던 복도 다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실패하기를 원해서 실패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실패에서 벗어나는 빠른 길은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실패의 원인을 본인 스스로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부인하고 싶은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우선 환경에 두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고, 여건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실패의 원인을 둡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이런 사람들을 종속적 인간이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속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능하기만 하면 실패의 원인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책임 전가하는 심리입니다.
성경에서는 그 대표자가 가인이라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아담의 두 아들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동생인 아벨은 정성을 다하여 믿음으로 드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지만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믿음으로 하지 않고 아마도 형식적으로 동생이 한다니까 그저 따라서 제사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이럴 때에 가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얼른 회개하고 정성을 기울여서
제사를 다시 드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사가 상달되지 않은 원인은 동생 때문이라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는 시기와 질투로 마음 끓이다가 마침내 동생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인류가 지은 두 번째 죄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으로 지은 큰 죄가 바로 질투,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잘못까지도 다른 사람이 잘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실패는 계속되고 악순환은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쓰리고 아프고 찢어지는 괴로움이 있어도 원인을 나 때문이라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저의 목회 철학의 기본은 종속 변수이던 인생을
독립 변수로 돌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늘 말씀합니다. 복된 환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된 사람이 있다고,금수저나 흙수저가 아니라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복된 존재가 있고, 복된 길이 있다고... 복된 길로 가는 자에게 복이 따르는 법입니다.
복은 우리가 복된 존재가 되면 자연히 뒤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착각 중에 하나가 복을 쟁취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쟁취해서 얻은 권리, 쟁취해서 얻은 복, 그것이 복이 되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왜요? 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우리가 받는 것이지 쟁취해서 얻는 것은 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야곱, 하나님이 큰 자가 아우를 섬기리라, 에서가 아니라 야곱.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의 방법으로 하다가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에서를 피해 외가집, 외삼촌 라반이 있는 밧단 하란으로 피신.
거기서 열심히 노력해서 부인들과 재산을 얻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는 길에 에서만 생각하면 걱정이 돼서 잠이 안와요.
그래서 맨 앞에 부인들과 자녀들을 세워놓고 자기는 맨 뒤에 따라갑니다.
운명의 얍복 강가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다가 하나님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가 달라집니다. 꾀돌이 겁쟁이 야곱이 아니라 당당한 야곱이 됩니다. 맨 앞으로. 진정한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와 직면하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복된 사람이 되는 길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가 복되리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여기서도 복을 받고, 저기서도 복을 받고, 너뿐만 아니라 네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짐승까지, 심지어 네 집안에 있는 그릇들도 복을 받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복받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삼가 듣는 것, 그것이 복받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신앙생활하면서 꽤 많은 교인들과 같이 지내면서 교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들이 설교 듣는 자세를 보면 ‘저 사람이 어떻게 되겠다’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은 듣는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성공하는 비결로 지능, 지식, 기술, 태도를 듭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능도 지식도 기술도 아닌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attitude,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듣는 자세, 예배하는 자세, 기도하는 자세, 공부하는 자세...
거기에 운명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격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인격자의 대부분은 남의 말을 듣는 자세가 좋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고 말고요’ 그러니 만나면 또 만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시원치 않은 사람들은 뭐라 합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허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말도 안돼’
모름지기 듣는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몸과 마음을 삼가면서 집중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말씀의 능력이 나를 사로 잡아 여호와의 지혜가 내 지혜가 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나의 권능이 되는 것입니다.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듣고 나서 그 들은 것이 다 내 마음에 들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안 드는 것도 있고, 이해되는 것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이성적 비판을 누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그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된 길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똑똑한 것 같지만 병든 이성이라 제대로 작용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 경험과 내 지식이 내 결단을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다 버립시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귀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문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많은데 끝에 가서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아니합니다마는 이성의 비판을 누르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 얼마나 위대한 기도입니까? 내 이 어리석고 좁은 생각, 내 경험에의 집착, 다 버리고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이것이 복된 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가라’하실 때 떠났습니다.
도대체 어디 가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떠나라’ 하시니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도저히 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모세에게 맡기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지팡이로 홍해를 내리쳐라’ 내리 쳤습니다.
‘건너가라’ 건너갔습니다.
그 말씀에 대한 순종 자체가 모세의 능력이요, 지혜요, 용기였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들으면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제가 들어주지 않는 기도 부탁이 몇 가지 있습니다.
‘새벽 예배 나오게 해 주세요’ ‘담배 끊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지금 담배를 떡 물고 안 피우게 해 주세요. ‘술 끊게 해 주세요’
해서는 안될 일을 계속하면서 ‘이 일 안하게 해주세요’하는 것이 기도입니까? 스스로 끊을 것은 끊어버리고 ‘하나님이여,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이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담배 끊었는데 다시 피우지 않게 기도해 주세요.

사랑하는 새하늘 청담 교회 교우 여러분!
너무 변론을 벌이지 마시고 너무 꾀를 부리지 마십시오.
정직하게, 때로는 우직하게, 때로는 고집스럽게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복된 자가 되는 길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복된 자가 되면 보십시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내 직업, 내 현주소가 어디냐고 물을 것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 그는 복을 받습니다. 환경이 복이 아닙니다.
복된 길을 등지고 복 받기를 바라는 그런 인간이 되지 말 것입니다.
복된 자가 되고 복된 길에 설 때 그 앞에 전개되는 모든 것이
복으로 화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자세를 고치고 분명히 복된 길에 서서 복된 자의 길을 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07/31 1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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