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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함을 누리니라(역대하 14:1-8)

목사님 0 838

  

 

     요즈음 새로운 단어들, 신조어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T.V를 보다보면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세대에 쓰던 단어들을 

젊은 사람들은 잘 이해를 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여러해 전에 신구 간의 단어의 해석 차이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언론사의 보도를 보고 놀란적이 있었습니다.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6.25는 북침인가 남침인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침이라는 대답이 약 70%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결과를 놓고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리고 그 탓을 전교조에 돌렸습니다. 전교조는 빨갱이다.

그런데 이 북침이라는 용어 자체가 북한이 먼저 공격을 했다는 건지 아니면 북쪽을 향해서 공격을 했다는 뜻인지가 학생들에게는 애매했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을 공격했다는 것이 북침의 원래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 언론사가 다시 조사를 했답니다. 이번에는 6.25전쟁은 어느 쪽이 일으켰느냐. 북한이 일으켰느냐 남한이 일으켰느냐. 이렇게 질문을 했더니 대답이 달랐습니다. 학생의 94%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렇게 대답들 했다고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6,25전쟁 71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렸지만 6,25전쟁은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는 아픔의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분단국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 완전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고 평화가 올 때까지 우리는 6,25전쟁을 기억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대해서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눈이 멀게 됩니다.” 

여러분, 과거에 매이면 미래가 없지만 그러나 과거를 잊으면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가난했던 때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병들었던 때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실패하고 낙심하고 미래가 캄캄하게 보이던 그때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것, 뼈아프게 경험한 것,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깨달은 것, 이거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실은 사람에게 있어서 경험한 것만 내 지식으로 남는 것입니다. 

치매가 왜 무섭습니까? 경험이 아무 소용없는 사람입니다. 

잠언 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여러분, 1950년 6월 25일, 그날은 바로 주일이었습니다. 주일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군인들과 공무원들이 쉬고 있는 그날, 휴가가고 없는 그날 전쟁이 터졌습니다. 이렇게 일어난 전쟁으로 사상자가 무려 520만 명, 이산가족이 1000만, 유엔군만도 15만 명이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6 25동란, 그것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그 누구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은 인간의 욕심과 오판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은 변명의 여지없는 죄악입니다. 전쟁은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전쟁은 절대로 문제의 해결이 아닙니다. 

오직 평화적으로 협력하여 통일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6 25전쟁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 6 25전쟁을 통해서 ‘이념’이라고 하는 것,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줄을 배웠습니다. 

이념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저 민족이요, 사랑이요, 화평이요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김 구 선생님도 ‘아, 민족이면 그만이지 이념은 무슨 이념이냐’하고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서 김일성을 만났는데, 만나보고는 이념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줄 몰랐다고 합니다. 민족 위에 이념이 있었습니다. 

이념이 이렇게 만듭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이 이념에 한 번 탁 걸려들면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전혀 딴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6 25전쟁이 우리에게는 ‘전쟁’입니다만 북한에서는 절대로 ‘전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국토통일을 위한 ‘해방전’ 민족통일을 위한 ‘해방전’이라고 합니다. 저들은 지금도 남한 사람들이 ‘미제국주의’라고 하는 외세 때문에 미국의 노예가 되어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들을 미국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자, 몇 몇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 저 지배 계급으로로부터 해방시키자, 그래서 ‘해방전’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통해서 뼈 아픈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정말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평화는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우리는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평화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름도 모르고 한 번 와보지도 못했던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 와서 피를 흘렸습니다. 

미국(1,789,000), 영국, 캐나다, 프랑스, 그리스, 터키, 호주, 뉴질랜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83), 태국, 필리핀, 콜롬비아, 남아공, 에디오피아

그들의 피의 대가가 오늘 이 땅의 번영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았는데 60년 만에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나라가 된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코이카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우리는 남왕국 유다의 아사라고 하는 왕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아사왕은 남왕국 유다의 3대왕입니다. 

여러분 잘 아다시피 솔로몬 이후에 남북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가 생기는데 남왕국 유대의 1대왕이 르호보암, 2대왕이 아비야, 그리고 3대왕이 바로 아비야의 아들 아사왕입니다. 

그런데 아사왕은 아주 정의로운 정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통치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14장 1절을 말씀을 다시 한 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년 동안 평안하니라” 아멘. 

아사왕 시대의 특징은 평안입니다. 

 

또 5절과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이어서 읽어보겠습니다.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여호와께서 그 땅에 평안함을 주셨다. 평안함을 누리니라. 

7절에도 보니까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이 평안의 특징이 있습니다. 

평화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바로 평화입니다. 여러분 내 마음의 평화나 가정의 평화가 내 뜻대로 되어지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평화를 주셔야 되요. 

이 아사의 시대에 찾아온 평화, 그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비결을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 첫째는 선과 정의를 행해야합니다. 

오늘 우리 2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아멘. 

이 선과 정의는 선정을 베풀었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백성 앞에서 그는 정의로운 통치를 펼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평안이 오게 된 첫 번째 비결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부정이 가득한 사회에 평화는 없습니다.

평화란 바로 정의의 기초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평화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평화는 정의 위에 세워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우리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정의의 기초 없이는 평화가 주어 질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는 내 자신이 오늘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정말 

한국 민족이 정의로운 길로 가고 있는 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정의란 헬라어 원문의 뜻은 각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삼권분립이나 정경분리 사상은 모두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정치인은 정치에만, 기업인은 사업에만 집중해서 양쪽이 유착이 되지 않으면정의는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얼마나 분별력 있게 인식하고 있느냐? 

정말 이 사회가 정의의 기초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내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해요. 

정의의 거울 앞에 우리는 이 민족을 비춰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정의로운가 

 

두 번 째로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우상을 척결해야 합니다. 

3절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아사 왕이 첫 번째 한 일이 종교 개혁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외에 다른 모든 제단을 헐어 버렸어요. 이방 제단 산당들 다 없앴어요. 

5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 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모든 산당과 태양상을 없앴더니 그 때에 하나님께서 평안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링컨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입니다. 

그는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노예들을 많이 사용하는 남쪽 지역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북군을 이끌고 남군과 전쟁을 치릅니다. 

그런데 사실은 남군과 북군을 비교해 보면 남군이 월등하게 우세합니다. 그리고 남군에는 리라고 하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봐도 북군이 이길 수 가 없어요. 그러나 결과는 북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이유를 링컨은 이렇게 자서전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전적으로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리장군 같은 명장이 없었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만 더욱 매어 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을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훌륭한 장군이 있었다면 기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의지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했어요. 그래서 북군이 승리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세 번째로 아사왕은 평화를 얻기 위해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찾게 했습니다.  4절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구를 의지합니까? 오늘 아사 왕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화의 시작입니다. 

 

우리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아멘.

우리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나님을 찾으니까 평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왜 없겠습니까? 여러분의 사업이나 직장에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 문제를 가지시고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구체적인 제목들을 내어놓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바르게 하나님을 찾는 길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가슴 아파할 일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입니다. 철저히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하나요, 구속받은 것이 하나요, 소망도 하나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가졌으면 얼마나 가졌고, 잘난들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다 같은 죄인이요, 모두 지옥 갈 사람인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사실만 확실히 깨닫고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만 있습니다. 지금 믿는 사람과 앞으로 믿을 사람.

 

버나드 쇼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가장 악한 죄는 

이웃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를 구별하는 것이다.’

구별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살인보다 더 무서운 죄입니다. 인권에 대한 살인입니다. 

우리는 다 같은 죄인이요, 다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다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죽어가는 것입니다. 

무덤에 가 보세요. 아무리 비석이 크든 작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는 무덤에 장식하는 것처럼 맹랑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석이 큰 게 무슨 대단한 것 같습니까? 쓸데없는 짓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오늘 세상 권력이나 물질을 의지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우리가 예배에 생명을 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사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세상이 주지 못하는 자유함과 기쁨과 평강을 진정으로 만끽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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