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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 갈렙(여호수아 14:6-15)

목사님 0 856

 

 

   

많은 사람들은 성공의 결과에만 주목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성공이 있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남의 성공은 보면서도 그 이면의 수고는 보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흔히 우리가 값없이 은혜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가 받은 구속의 은혜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스스로 한 알의 밀알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생명이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대충 대충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맞추어 우리의 인생을 섭리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없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너무나 쉽고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영적 법칙에 동의하면서도 지난 주 설교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들 중에 57명이 의사가 되거나 의대생이 된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었는데 이태석 신부님이 그들에게 심어준 것은 사랑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랑을 보고 나도 잘 살아야지가 아니라 나도 저런 사랑 나눠주면서 살아야겠다. 많은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중요.

거기에 나를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이간 조용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하여 지금 무엇을 심고 있는가?

 

성경에는 처음에는 반짝하고 등장했다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고, 처음에는 별 시선을 끌지 못했는데, 이후에 주목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에 반짝하고 등장했다가 나중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전형적인 예가 맛디아 같은 사람입니다.

맛디아는 사도행전 1장에서 가룟유다를 대신에 열 두 사도에 숫자를 채우기 위해 제비뽑기로 선택된 사도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1장 이후에 보면 더 이상 맛디아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습니다.

반대로 처음 등장할 때는 조용했다가 나중에 시선을 끈 사람의 예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렙이란 인물입니다. 갈렙은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열 두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 열 두 명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오로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애초부터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 돼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됩니다.

반대로 갈렙은 그때 그 사건 이후에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섬깁니다. 그러다가 언제 주목을 받느냐?

바로 정탐꾼으로 다녀온지 45년이 지난 후 나이 85세가 되어서입니다.

갈렙이 45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다렸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믿음은 기다림을 반드시 수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 나이 85세에 헤브론 땅을 분배받은 갈렙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큰 모험을 하지 않고 그저 편하게만 살려고 들 합니다. 그런데 갈렙은 달랐습니다. 나이 85세에 가나안 여러 땅들 가운데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헤브론 정복을 자기가 하겠다고 나섭니다.

헤브론은 산세가 워낙 험악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게다가 이 헤브론 지역에는 호전적인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일찍이 열두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둘러보고 모세에게 보고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어떤 문제가 닥쳐왔을 때, 그 문제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영적인 시각이 얼마나 좁은지를 깨닫곤 합니다.

이 민수기 13장에 기록된 가나안 정탐 사건은 가나안 땅에 대한 정확한 보고가 문제가 아니라,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과연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못하느냐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결국 40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떠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광야에서 배워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이 이구동성으로 보고한 내용은 가나안 땅, 특히 헤브론 지역의 거민은 네피림의 후손들인 아낙 자손들인데 얼마나 크고 거대한지 자기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갈렙은 바로 이런 땅을 자청해서 자기가 정복해 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것도 젊은이가 아니라 85세의 노인이 이 험난하기 짝이 없고 도무지 정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산지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쉬운 일을 하려고 하지 힘든 일은 하려고 들지 않는 법입니다. 실제적으로 오늘 날 우리들은 너무 쉬운 일만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 적은 노력으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성공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뉴스를 보면 실업자가 많다고 하는데 공장을 하시는 분들의 고민은 일할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힘든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차라리 놀면 놀았지 그런 일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궂은 일들은 외국인들이 다 도맡아서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되고, 무슨 무슨 핑계를 대고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 적은 강하고 나는 늙고 약하지만 이 모든 조건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즉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12).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극복하여여야 할 장애물들이 있는데 갈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렙의 장애물들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먼저, 갈렙은 출신성분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6절 전반부에 보면 갈렙을 소개할 때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과 민 32:12절에서도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니스 족속은 창세기 15:19절에 처음 나타나는데 가나안 족속 중의 하나로 유대 족속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인종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히브리 주류 사회에 진입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난히 혈통의 순수성을 따지는 유대 사회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워낙 적극적인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이방 소수 민족 출신이지만 정통 유대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제 1세대 사람들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인 미리암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출애굽의 영도자인 모세 역시 요단강 건너편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밟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후손이 아닌 그니스 사람 갈렙이 가나안 땅을 밟았습니다.

그의 하나님 언약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지 남에게 있지 않습니다.

패배하는 사람은 무슨 탓, 무슨 책임을 타인과 사회에 돌리지만.

믿음의 사람 갈렙에게 인종적인 차이는 조금도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환경 탓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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