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말씀

그가 살아나셨고 (마가복음 16:1-8)

목사님 0 12

   

 

 

      코로나 19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에게도 봄이 찾아 왔습니다. 

매년 겨울 매서운 추위가 있었지만 새싹이 돋아나고 꽃피는 봄은 꼭, 반드시, 마침내 찾아옵니다. 다 죽은 것 같아 보였지만 생명의 씨는 그 씨앗 안에서 웅크려 때를 기다렸다가 봄이 되니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이 부활의 소식을 꽃봉오리에 새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다 죽은 것 같아 보였지만 생명의 씨는 그 씨앗 안에서 웅크려 때를 기다렸다가 봄이 되니 다시 꽃을 피웠습니다. 

죽음이 아무리 강하게 보여도 생명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해마다 새움이 돋는 이때가 되면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활절의 대표적인 음식으로서 계란이 있습니다. 

계란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계속되고 있으며, 

마치 겨울 뒤에 숨어있는 봄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부활절 계란은 예수님께서 부활의 새 생명을 얻으셨던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 예배 후에는 김미경 집사님께서 준비하시고 정성껏 포장한 계란을 

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때는 새벽이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 새벽, 몇 사람의 여인들, 마리아들이 찾아간 곳은 예수님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새벽은 특별했습니다. 

여인들은 평생 동안 그 날 새벽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날 새벽은 온 세상을 향해 위대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모든 것은 새벽에 시작됩니다. 하루도 새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새벽은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새벽이 되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어떤 죄인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습니다.  

기독교의 특징,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시작하는 부활의 새벽,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새벽의 색깔은 화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부활의 새벽 이전까지는 온통 검은 것뿐이었습니다. 

본래 죽음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검정색입니다. 

그러나 새벽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고, 태양이 떠오르면 온 세상이 각각의 색깔을 드러냅니다. 이 찬란한 화사함, 이게 바로 부활의 색깔이고, 생명의 색깔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부활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우중충한 절망의 그늘에서 떨치고 나와서 생명의 빛 아래서 화사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밝은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새벽이 되면 사람들은 창문을 열어 방안의 탁한 공기를 몰아내고 신선한 공기를 들어오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절을 맞은 우리도 영혼의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맑은 생명의 공기를 들이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지난 주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었고,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의 날 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를 믿고 따르는 크리스찬들의 승리의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초대 교회 사람들이 전한 메시지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예수 부활하셨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한 마디가 초대 교회가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세계로 기독교가 뻗어 나가는 시금석. 

기독교는 부활의 역사적 사실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istorical fact.

현재를 사는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재의 내 삶 속에서도 이루어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은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확실히 밝혀 두고 있습니다. 부활장. 오늘 오후에는 15장을 음미하면서 집에 가서 꼭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중에서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만약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 우리의 구원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순례의 길입니다. 한번 이 땅에 태어나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낯설은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그 종착점은 묘지요 죽음입니다. 인류의 삶은 결국 묘지를 향해가는 길고 긴 행렬입니다. 

가는 순서만 다르지요. 

이 땅의 수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종교는 없었습니다. 

이 땅의 종교 창시자들이 많은 업적을 남기고 죽었습니다만 결국 그들도 

사망을 이기지 못하고 무덤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화가 나면 나 죽으면 그만이지? 라고 말합니다. 

누가 그만이라고 얘기했습니까?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것인가?

영벌에 세계에서 괴로운 삶을 살 것인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만일 부활이 없다면”을 8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있다. 틀림없이 있다. 확실하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 문장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누군가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내면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시체는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의 다시 살아나심,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부활절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 가족이 복음을 들고 제물포 항에 도착해서 한국 땅을 밟음으로서 이 땅에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한국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장로교 소속 선교사님이고, 아펜젤러 목사님은 감리교 소속 선교사님이십니다. 그 당시 교회법은 먼저 도착한 교단의 선교사가 그 땅에 우선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두 분이 사이좋게 손잡고 같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같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펜젤러는 도착 즉시 미국 감리교 선교부에 편지를 보내었는데 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우린 부활절 아침에 이 땅에 도착 했습니다. 이 날 사망의 철장을 깨뜨린 주님께서 이 백성들을 묶고 있던 결박을 푸시고 그들을 주의 자녀로, 빛과 자유로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이것은 불과 136년 전의 일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부활절 아침에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때 그 순간 어디 있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운 좋게 그 자리에 있어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는가 하면 반대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지 못해 일평생 후회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세 명의 여인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물론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확신하고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고, 다만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려고 간 겁니다. 

그런데 동굴에 갔을 때 이미 굴을 막았던 큰 바위는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는 곱게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21장으로 연결이 되며 제자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왜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가 아니고 갈릴리입니까? 

삶에서의 부활은 현재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라는 뜻이 있는 겁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실패의 자리일 수도 있고, 권태로운 자리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이란, 엉망인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답은 언제나 지금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만약 지금 있는 자리가 답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라는 싸인을 주십니다. 떠나는 것은 그때 떠나도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주의하여 할 점은 작년에 하지 못한 일, 지난 달에 하지 못한 일, 어제 하지 못한 일 다시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새 날이 있고, 새 달이 있고, 새 해가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오늘 못한 게 있다면 밤에 “주님 제가 오늘 게을렀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믿음으로 주무십시오!

그러면 버리는 날은 그날 하루로 끝납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열심히 살면 됩니다. 새 날은 어제 일을 잊고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성경일독.

새 달은 지난 달을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새 해 역시 묵은 해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지 못하면 과거에 얽매이게 되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진정한 생활 속의 부활이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이제 자기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부활 신앙이 정말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나? 

주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이 내게 진정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어려운 시기에 이러한 질문에 답하며 부활 새벽의 은혜를 

가슴에 안고 힘차게 출발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주님!

2000년 전 오늘 새벽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셔서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에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 좌정하여 주시사, 

우리 모두 다시 만나 영원히 살게 될 것임을 기억케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부활절 성찬식

고린도전서 11장 27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찬송 311장 1절 “내 너를 위하여”

 

초대와 응답

집례자 

이 성찬식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과 우리들을 섬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초청에 응하시는 모든 분들은 

이 거룩한 은혜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제정의 말씀(집례자)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떡과 잔을 받으시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여 

주님과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떡과 잔을 나눔 144장  

(떡을 떼며) 이 떡을 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멘.

(잔을 들며) 이 잔을 마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멘.

 

성령 임재의 기원 

이 부활의 날에, 주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비취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온누리에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이 기쁜 소식이 가득하게 하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