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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게 하라! (여호수아 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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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2년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그러부터 정확히 200년 후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조선 땅으로 파죽지세로 쳐들어옵니다. 

어느 관리 하나 제대로 나서서 전쟁다운 전쟁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왕은 한양을 내주고 북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현재 코로나로 당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부화뇌동하지 말고 신앙생활에 올인하여야겠습니다.  

 

어느 부자가 세상을 떠나려고 보니까 그 동안 모아 놓았던 재산이 너무 

아까운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 세상에서 벌었던 모든 재물을 천국에 

가져갈 수 있게 해달라고 때를 썼습니다. 

그러자 너무 때를 쓰니 하나님도 할 수 없어 허락을 했습니다. 

그 대신 samsonite 여행용 가방 하나만 가지고 가라. 

그러자 부자는 모든 재산을 금으로 바꾸어 가방 하나에 담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끌고 천국에 이르자 베드로가 나와서 가방 검사를 합니다. 그리고는 ‘자네는 보도 블록을 뭐하러 들고 왔나?’ 하더랍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관일 겁니다.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과 사람과 자신을 보고 사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바르고 정확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데, 우리 인간은 죄와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 중요한 인생관이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왜곡된 인생관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십자가 없이 세상과 역사를 보면 절망스럽게 보이지만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과 역사를 보면 소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십자가를 통하여 그 

절망적이고 불안한 상황을 다시 보면 소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신비.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면 이렇게 충고한다고 합니다. 내려가려고 애쓰지 말고 위로 올라가라, 높은 데 올라가서 다시 내려다보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그 다음에 내려가라, 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에 매여 현실문제에만 급급해서는 해결이 안됩니다. 높은 데로 올라가서 이 세상을,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해야 할 작업들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들은 성도의 교제도 있고, 구제도 있고, 봉사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에 있습니다. 안정된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때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타락한 생활을 하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이란 출애굽의 역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아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습니다.

이제 애굽과는 관련을 끊었습니다. 이것이 첫째 구원입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 구원의 날을 바라보며 광야에 머무는 동안 교회가 세워지는데 그것을  광야 교회라고 합니다. 그 광야 교회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많은 시련을 통하여 훈련을 받으면서 이제 가나안 땅의 삶을 예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그 광야 교회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옛날 생활의 잘못되었던 풍속, 세계관, 가치관 이런 것들을 끊어버리고 하늘나라 지향적인 사람으로 커나가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옛 생활을 하나하나씩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에 지켜야 할 율법, 하나님 나라의 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됩니다. 

세상 법을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몸에, 생활에 익히도록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나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7, 58을 보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승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승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인생 길이 피곤한 겁니다.

승리는 그 분이 주신다는 깨달은 사람들은 그 분께 결과를 맡기고 나는 

그 분이 하라고 하신 일 하면서 여유있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사람들 중에는 일상적인 것보다는 파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왁짜지껄, 야단법석을 떨어야 무엇인가 해냈다고 생각하고 일상적인 것보다는 건수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단이 이런 사람을 가만 놓아두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사단의 종노릇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구름타고 오시고, 사단은 틈을 타고 온다. 

 

진정한 삶의 즐거움과 행복은 일상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인생의 큰 문제 앞에서 간절히 주님께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똑같은 

일상 가운데 주님께 헌신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영웅적인 신앙생활도 좋고 영웅적인 특별한 헌신도 좋지만 그보다는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겸손하게 기도생활하면서 신앙생활을 잘해 나가는 사람이 더 신앙적인 것입니다. 그런 성도가 저는 더 존경스럽고 사랑스럽고 좋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에서 영웅적인 신앙인이 나오는 것보다는 일상적인 신앙생활을 잘 하는 그런 성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58절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구약을 보면 신명, 즉 하나님의 이름이 몇 가지로 등장하는데 처음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다.

두 번째 등장하는 이름이 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나의 깃발, 승리.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빠져 나와 모세의 영도 하에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아말렉 족속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승리의 비결이 앞에 나가서 싸우는 여호수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산 꼭대기에서 손을 든 모세에게 있었습니다. 즉 모세가 손을 들면 전쟁에서 이기고 모세가 피곤해서 손을 내리면 전쟁에서 지는 겁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손을 바쳐 들어서 승리하게 됩니다. 

모세가 나라도 힘을 보태야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감정이 아니라 말씀을 따르겠다고 결단.

결단하십니까?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성 함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난공불락의 성.

기도하니 하나님이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감격으로 충만하여 이제 그 여세를 몰아 그 다음에 있는 아이 성을 쉽게 보고 공격하였는데 그만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가나안 족속이 저들이 섬기는 여호와도 별 것 아니구나 하는, 그래서 밀고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해 버릴, 위기 중의 위기입니다. 

답답하고 괴로운 나머지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하루 종일 

하나님의 법궤 앞에 엎디어 웁니다. 통곡을 합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는 것입니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목놓아 웁니다.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엎드렸느냐? 엎드렸다고 해결이 되느냐, 운다고 해결이 되느냐, 통곡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그러면서 패전의 원인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고 정황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정말로 그렇습니까?

문제의 근본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아간이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21절

전쟁을 하는 중에 본즉 좋은 외투가 있단 말입니다. 

‘아 이 아까운 외투를 왜 불태워?’하고 아간은 외투를 취하고, 은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도 취하고, 또 금덩이가 하나 눈에 띄므로 ‘아 이 이까운 걸 버리다니, 그럴 것 없다, 요걸 잘 감추어 놓았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에 꺼내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경제논리로 보면 그런 것들을 불태우고 없애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선민의 논리로 볼 때는 그거 안 될 일입니다.

은과 금이 나를 살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빗나가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탐내어”라고 말씀합니다. 외투 한 벌을 보는 순간 욕심이 생겼습니다. 금덩어리를 보는 순간 탐심이 발동하였습니다. 거기서 정신이 확 돌아간 것입니다. 언제나 탐심이 문제입니다. 탐심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추해지고 더러워지고 악해지고, 이웃도 없고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돈에, 욕심에 미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심입니다. 내 생각만 한 것입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고 민족이 어떻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되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나 하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기주의에 사로 잡히면 내가 나만을 생각하였으니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기주의자는 고독합니다. 

 

또한 “감추었는데”라고 합니다. 감추었다는 것, 은폐하였다는 것, 하나님께서 이것을 용납치 않으십니다. 거짓말 이것이 문제입니다. 

능력이 있고 없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그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정직성이라고 하는 것은 잘했나 못했나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진실을 묻는 것입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느냐, 아니냐 이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투명성, 이것이 윤리도덕의 기본입니다. 

심지어는 경제의 기본입니다. 정치의 근본입니다.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빈약하여 망한 나라는 없습니다. 

어느 나라 없이 망할 때는 윤리, 도덕적으로 문란할 때 망했습니다. 

대로마제국이건, 바벨론이건,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락해서였습니다. GNP가 높아졌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잘살게 된다고 하여 거기에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바로 깨어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기적이 있었다면 오늘도 일어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 하나님,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게도 똑같은 기적이 나타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욥이 신앙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모릅니다. 

오직 주께서 아십니다. 모르는 길을 오늘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주님의 인도에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하셨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성결하여질 때를 기다리십니다. 

모름지기 먼저 스스로 성결케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일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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