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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살아나리라! (에스겔 37:1-10)

목사님 0 119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1단계에서 1.5단계 2단계 매주 한 단계씩 거리두기가 격상되고 있습니다. 

급기야 오늘 오후에는 중대본에서 2.5단계를 갈지를 결정해서 발표한다고 

합니다. 다들 마음이 심란할 줄로 압니다. 

우리 교회는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한 번 예배 참석 인원이 교회 좌석수의 20%를 넘지 말라고 해서 오늘 예배를 1,2부로 나누었는데 그러면서 어제 계속해서 이게 잘한 것일까?라는 회의.

또 우리 교회 홈페이지와 영상을 담당해주고 있는 박유진 대위가 부대 내에 코로나가 급속히 번지는 바람에 이번 주일과 다음 주일에 예배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서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아름다운 청년 안진현을 잘 길러놓아서 오늘 진현이가 예배 영상을 책임져 줍니다. 

 

어제 마음이 불편해서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겠더라구요.

보통은 금요일에는 본문과 설교 대강의 얼개를 짜고 토요일은 집중해서 

준비하는데 어제 오전까지도 본문이 떠오르지 않아 심란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의자에 앉아 기도하던 중에 딱 떠오른 하나님의 말씀이 마른 뼈를 살리신 사건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라신 사건이 등장을 하고

엘리야가 사르닷 과부의 딸을 살리신 사건도 등장을 하지만

에스겔에서는 이건 그냥 죽은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라 마른 뼈들에게 말씀으로 명령하여 다시 살리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들과 안 믿는 사람들의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지요.

우리들은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기적이 믿어지는 사람들이고요

안믿는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합니다.

 

동물은 하등동물과 고등동물로 나뉘는데 한번 생각을 해 보시면 

하등동물일수록 땅을 쳐다보고, 더 하등한 동물들은 땅속에서 기어다니고,  고등동물일수록 점점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귀한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믿음이란 참 귀한 보배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늘 말 하는 ‘믿음’을 근본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구원받는 믿음과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믿음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을 때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 믿음이 없이는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을 지라도,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을지라도 구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같이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똑같이 기도를 하고, 똑같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는데 믿음의 체험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은혜의 체험은 평상시에 무슨 생각을 하며 마음에 무슨 영상(imagination)을 그리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내 인생에서 새롭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하십니까? 

우리의 인생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겨우겨우 사는 걸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지난 주에 서정훈 형제님이 기도에 대한 자기의 부정적인 생각을 중보기도를 통하여 완전히 바꾼 사건에 대하여 간증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오늘은 그 좋은 하나님을 특별히 찬양하겠다고 하십니다. 

나오실 때 박수로 렬렬히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정훈 특별 찬양

 

오늘 읽은 본문은 에스겔에서 가장 유명한 본문으로서 그 내용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기를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망하여서 소망이 없고 민족의 앞날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는 뼈들로 가득했습니다. 

본문의 환상에 등장하는 마른 뼈는 영적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와 비참한 삶을 살아 가고 있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한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또 그것이 지금 우리들의 영적인 모습을 반영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물으십니다.  

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납니까? 어떻게 죽은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과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볼 때 절대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이 소망이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네가 다시 회복될 것을 믿느냐?”

에스겔은 3절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게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문제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자신에게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에스겔도 우리와 똑같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면 아무리 마른 뼈라 할지라도 능히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40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말씀하였을 때 그는 들을 수 없는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바로 믿는 사람에게만 허락하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의 능력이 되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소망이 사라졌고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상태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회복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시키실 때 말씀을 통해 회복시킵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대언하여 선포할 때 흩어진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뼈들이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힘줄이 생깁니다. 

실제적으로 포로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그리워하며,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예배하는 도중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실히 받아 들였습니다. 그때 말씀을 통한 신앙회복이 있었고 그리고 절망적인 포로생활에서 기적적인 귀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용기가 생깁니다. 결단력이 생깁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인생이 살아납니다. 말씀이 우리들에게 위로와 소망과 회복을 주십니다. 말씀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시편 119편 50절의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뼈들이 소리가 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뼈와 저 뼈가 들어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5절을 같이 읽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이 생기는 창세기 2:7에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빚으신 후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다는 그 생기와 같은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루아흐’로 표시되어 있는데,

히브리말에 바람과 숨결과 성령은 다 같은 말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하나님의 살리시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에스겔이 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만 대언하였습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순종하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기적의 순간들을 체험해 보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힘이 붙습니다. 파워가 생깁니다.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새하늘 교회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바람이 불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바람, 소망의 바람, 성령의 바람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바람은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을 살릴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마른 뼈가 서로 연결될 때 소리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서로 연합되려면 소리가 나야 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기도 소리가 나야 합니다. 

함께 찬송하는 찬송 소리가 나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통하여 한 마음으로 연합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성령은 능력을 부어 줍니다. 

성령은 마른 뼈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강한 군사로 만듭니다. 

살아 있는 기독교인이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믿는 우리들의 인생에서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붙어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10절을 같이 읽습니다.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큰 군대더라” 생기가 들어갔더니 큰 군대더라. 

뼈들이 서로 연합할 때 그들은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도 서로 연합하지 못하면 큰 군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끊임없이 가정과 교회를 분열시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믿는 우리들은 마귀에게 속지 말고 연합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가 분열되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교회를 분열시켜 하나님의 강한 군대가 되지 못하게 하려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방해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붙잡아주지 못하게 합니다. 

분열시키는 일이 마귀의 전문 사역입니다.

 

이제 후로는 우리를 살리는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의 살리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세상을 이기고 

나에게 처해 있는 어려운 환경을 정복해 나가는 당당한 하나님의 군사들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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