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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된 종 (마태복음 25:14-30)

목사님 0 828

   

 

     코로나 19사태가 진정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더 확산되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가 세상의 모범이 되어 방역 수칙을 잘 지켜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오시면 먼저 손소독제로 손을 소독을 구석구석하시고 체온 측정을 한 후 출입부 명부에 꼭 기록하여 주셔야 합니다. 

방역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앞으로 1년만 잘 견뎌내면 내년 이맘때쯤이면 백식도 보급되어서 이전 수준의 삶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 이제 일년, 서로 격려하며 잘 이겨나가도록 합시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이 세상에는 틀림없이 종말이 오고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5장에서는 종말을 의식하며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세 가지 비유를 통하여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 비유입니다. 

그 중에 오늘은 달란트 비유를 함께 살펴보기로 합니다. 

 

어떤 부자가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종들에게 각기 다른 분량의 달란트를 맡긴 후 종들이 그 달란트로 얼마나 남겼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5절을 보면 ‘각각 그 재능대로’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종들이 그들의 재능   에 따라 달란트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주인은 종들의 능력을 바르게 평가. 

 16절 ‘바로 가서’ 맡기자 마자 바로, 미루지 않고. 

 뒤로 미루면 기회가 없어짐. 

오늘 이 비유의 클라이막스는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기고 떠난 주인이 나중에 돌아와서 종들과 계산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때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칭찬과 상을 내리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책망을 하고 있는 것까지 다 빼앗습니다.  

30절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저는 이 부분을 성경에서 참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마지막 날 저와 여러분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주님은 똑같이 평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죽음만큼은 확실합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포도원에 일할 일꾼을 찾아 장터에 나가 이른 아침에, 또 아침 9시에, 12시에 그리고 오후 3시에 각각 사람들을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 나가보니 그때까지도 일을 찾지 못해 놀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도 포도원에 보냅니다. 

보통 하루 일은 6시에 끝나기 때문에 5시에 일꾼을 쓰는 주인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주인은 한 시간밖에 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종을 채용했습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아침부터 일한 종과 1시간을 일한 종 사이에는 분명히 일한 시간과 일한 분량에 큰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계산한 것은 일한 시간이나 양이 아니라 일한 종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한 시간이지만 주인에 대한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어쩌면 남들이 쉴 시간에도 쉬지 않고 정말 죽도록 일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비유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제 자신이 한 시간짜리 종과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주님이 너무 좋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도 똑같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 받은 종에 비하면 결과는 두 배 반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같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주인이 칭찬하는데 결과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너는 남보다 더 많이 남겼기 때문에 이 상을 준다”고 하지 않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기 때문에 칭찬하고 있습니다. 21절, 23절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러므로 우리가 너무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컴퍼스로 원을 그릴 때, 큰 원이든 작은 원이든 크기는 달라도 원은 원입니다. 작다고 해서 원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중심이 같은 것을 보시고 똑같이 칭찬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비록 한 시간 밖에 일하지 못한 종이지만 하루 종일 일한 종들에 못지않은 그 충성, 신실함 때문에 주인에게서 똑같은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은 ‘최선’이란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충성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사역에 헌신, 희생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를 보면 압니다. 스트레스 주지 마세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되는 일이 있습니까? 저도 목회자로서 스트레스, 설교 스트레스

사실 헌신, 희생이 들어가지 않은 신앙 생활은 취미 생활이지 참된 신앙 생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헌신, 희생은 우리의 신앙 생활이 참된 신앙 생활임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도 증명해줍니다. 

여러분이 다섯 달란트를 맡았든 두 달란트를 맡았든, 하나님은 일의 결과가 아니라 여러분이 그 일에 바친 희생과 헌신을 평가하십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한 달란트 받은 종에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가진 오해의 첫 번째는 인생은 안전하고 편안하면 좇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은 순탄한 인생, 문제없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것을 땅 속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왜 “괜히 장사한다고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주인에게 꾸중이나 듣게 될 것이고, 어디 장사가 쉬운 일인가? 얼마나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부딪칠 텐데” 

그래서 주인의 꾸중도 듣지 않고 고생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받은 그대로 지키고 있다가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를 악한 종이라고 꾸짖었습니다. 특별히 신앙의 현상유지는 죄가 됩니다. 

선을 행할 힘이 있었고 선을 행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안전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능력 범위 안의 일을 합니다. 자기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만 합니다. 늘 얕은 물가에서 물장구나 치며 놀지 저 깊은 바다 속을 헤엄쳐 보지 못합니다. 

오직 내 능력 범위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쉽고 편안한 일, 문제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왜 믿음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안전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에 고통이 없고 위험이 없는 안전지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바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처음부터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고난 없는 삶을 사시지 않았습니다. 힘겨운 인생의 짐을 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고난 없는 삶, 문제없는 인생을 한 번도 약속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라 하시고, 그 지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은 고난을 피하는 길, 희생 없이 사는 길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형통이란 고난이나 문제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이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고난과 문제 때문에 내 신앙이, 내 인격이 성장하게 된 것에 감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만 하면 서로 하나가 되고, 그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누가 제일 목소리가 큰지 아십니까? 

제일 고생 많이 한 부대에서 근무한 사람들입니다. 

거기가 제일 군기가 세고 훈련이 고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도 그럴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제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사람들은 주님 위해, 복음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도 적지만 주님과 비슷한 흔적이 있네요. 주님 보세요.” 

그때 십자가의 흔적을 지닌 성도들은 자신있게 주님의 가슴에 안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하는 성도들도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상에서는 진정한 쉼도 없고 휴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 지상에서의 안전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문제없는 곳은 어느 곳도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 가는 곳에는 항상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이고, 사람 있는 곳에는 문제가 있는 법인데 

어떻게 문제를 피하면서 교회를 나오시려고 하십니까? 

누구 때문에 교회 못온다.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생깁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문제없는 교회가 아니라 문제를 믿음으로 이겨내는 교회, 문제를 은혜로 덮는 교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문제 때문에 오히려 믿음이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러니 문제 있는 곳에 간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열심히 문제를 만들어 내지만 롬팔이팔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뤄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24절을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19:21에서는 ‘엄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굳은 사람’이란 완고하며 거칠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기를 믿고 맡겨주는 주인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엄격한 기준으로 하나하나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율법을 책임과 의무로만 여겨지고 무거운 짐으로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지 하는 강박감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때에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요구하십니다. 또 일을 시키실 때에는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이미 주신 것을 가지고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최선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잘못된 생각에서 우러난 자기가 만들어낸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아주 잘못되었고, 조금 잘못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온전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자라려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참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만 잘못된 하나님의 이미지를 교정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점점 더 형성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만들어낸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참된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된 후에는 주를 섬기는 것이 강박감이나 죄책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감사함에서 우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랑 없이 하는 일은 무거운 짐이지만 사랑하면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마지막으로 이 종은 자신이 받은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두 종과 비교해 보고 하찮은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이 종은 자기가 받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가져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임무를 포기했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는 항상 비교의식이 남아있습니다. 

자녀들 교육에서도 비교의식이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모릅니다.

비교의식은 대통령이나 재벌이 되면 없어집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비교의식만 들어가면 자신을 초라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연 불평, 불만이 생깁니다. 

비교의식을 버리려면 자녀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각 사람을 어딘가 필요한 곳에 쓰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서로 비교하여 누가 더 잘 낫는지 싸우라고 다르게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드셨다면 틀림없는 걸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생을 살 때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늘 남과 비교하고,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늘 내게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고 수많은 기회를 놓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비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29절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마지막 날 많은 성도들이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책망 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리고 오셔서 우리와 결산하실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의 남은 생을 올 인하여 주님의 칭찬과 상급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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