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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 부활전 (여호수아 8:18-23)

목사님 0 16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삶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번 사태의 마지막은 우리 인간의 승리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번 사태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환경을 지켜내지 못하고 오염시킨 우리 인간들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경고이기도 하지만, 이번 사태는 코로나라는 질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세상(better life)을 살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신앙인은 심판 속에서 소망을 보는 사람들.

 

인생에는 성공과 실패가 함께 공존합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항상 성공만 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누구도 평생 실패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인생에 닥쳐오는 성공과 실패를 잘 관리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성공했다고 앞으로도 마냥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오늘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장난 것처럼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딛고 재기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패자부활전’인 셈입니다. 

운동 경기에서 종종 패자부활전(Revival Match) 방식이 실시됩니다. 

처음에 패배했지만 다시 기회를 주는 경기 방식입니다. 실제로 패자부활전을 통해 우승까지 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패자부활전이 있습니다. 어제 실패했지만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재기의 기회를 잘 살리면 얼마든지 내일은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구약 성경의 전쟁은 우리의 삶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늘 삶의 현실 가운데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전쟁을 하듯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전쟁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삶에 적용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호수아 6장서부터 읽어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6장을 보면 여리고성 정복 전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첫 번째 관문이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공략하기 어려운 크고 단단한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대로 매일 성 주위를 돌다가 일 주일째 되는 날은 일곱바퀴를 돌고 나팔 소리에 맞추어 큰 소리로 외침으로 대승을 거둡니다.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됐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리고 성이 폭삭 무너지고 정복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의 정복지였던 아이 성이 문제였습니다. 

아이 성은 여리고 성에 비해 아주 작은 성입니다. 주민 수도 남녀 모두 합쳐서 1만 2천명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아이 성 정복 전쟁의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7장 5절을 보면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패배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낙심한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일단 낙심이 임하고 그로 인하여서 절망하거나 좌절하게 되면 마음이 물같이 녹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사단이 완전히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조정해 버립니다. 

결국에 가서는 그 사람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단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안 속아!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후 낙담에 빠져 있었습니다. 

7장 6절을 보면 , 옷을 찢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큰 슬픔의 표시로 옷을 찢습니다. 크게 슬퍼했다는 뜻입니다. 7절을 보면,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뻔하였나이다.”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그때가 족한 것 아니야?

 

여러분,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 단번에 잘라버리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재기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는 어쩌면 재기한 사람들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그 결과는  철저한 배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너도 예수의 제자지?하고 묻는 사람들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마지막에는 저주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닭울음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하고 통곡합니다. 그리고 재기해서 마침내 로마 카톨릭의 초대 교황이 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마침내 자살해서 죽습니다. 

베드로나 가룟 유다나 잘못한 것으로 치면 거기서 거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를 주셨을 때 회개했느냐 안 했느냐 여부입니다. 

 

7장 6절을 보면 이런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는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아 범인을 색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는 음성을 듣기까지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시험에 질수는 있지만 절대로 낙심 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처럼 이 낙심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있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재기하기 시작합니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원인을 분석하는 게 선행되어야 합니다. 아이 성이 작은 성임에도 불구하고 정복하지 못한 원인은 아간의 숨겨진 죄악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에서 모든 전리품은 하나님 앞에 구별해서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몰래 훔쳐서 숨겨둡니다.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금덩어리, 은덩어리 등을 장막 밑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여러분, 죄악은 절연체와 같습니다. 절연체가 있으면 전류가 흐르지 않는 것처럼 죄악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은혜의 통로가 막혀버립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 전투를 앞두고는 얼마나 절실히 기도했든지 5장 13절 이하를 보면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후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이해되지 않는 그 지시에 순종하여 여리고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 아이성 전투를 보면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정탐꾼을 보내서 동정을 살핀 후 가볍게 판단한 나머지 3천명만 파견합니다. 

우리들의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께 물어 보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 인생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게 겸손입니다. 

 

실패의 원인을 깨달은 여호수아는 죄인을 찾아냅니다. 

스스로 자수하고 회개하지 않자 제비뽑기를 통해 부족별, 가문별로 색출합니다. 마침내 아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들통이 나자 하는 수 없이 실토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들통 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들통 나기 전에 스스로 고백하고 돌이키는 게 회개입니다. 

아간은 진정으로 회개치 않았기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처단합니다. 아간과 그 일족을 불태웠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아골 골짜기입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18절과 26절입니다. 18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26절.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여기에서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말렉과의 전쟁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여행으로 인해서 지치고 피곤한 가운데 있었고, 

특별히 노약하거나 유약해서 뒤에 쳐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말렉은 그런 그들을 뒤에서 무참하게 살륙하고 공격해 왔습니다. 

그때에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겼고, 모세가 피곤해서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홀이 모세를 큰 바위 위에 앉게 하고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잡아서 그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고,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단창을 손에 들고서, 그 때의 일을 기억하면서 싸움이 끝날 때까지 손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손을 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기게 해주시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의 기도가 계속되는 동안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여호수아도 아이와의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에, 손을 들고 내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해주실 것을 기도하면서 계속 들고 있었습니다. 아이성에서 거둔 승리는 여호수아의 신호와 명령에 따라서 군사들이 잘 움직여 준 것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향해서 단창을 든 손을 내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다는 것을 여호수아서 우리들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를 쉬면, 기도하는 손을 내리게 되면, 영적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기도의 손을 내리지 않으면, 기도가 계속되는 한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시 실패의 현장 가운데 있었지만, 다시 회복되어져서 다시 승리를 거두고 전진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패했던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다시 회복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와 패배는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에서 승리했던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성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했던 것은,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성에서 다시 그들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서 감옥에 갇혔을 때 그 환경을 본다면 그는 절망하고 결코 일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의 지위는 감옥에 있는 죄수이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두려워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까봐, 그것만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언제든지 잘못을 저지르고 범죄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이스라엘이 결국 승리합니다. 

모든 아이 성 주민을 진멸하고, 그 왕도 생포해서 나무에 매달아 공개 처형을 합니다.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따라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나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주인, 나는 종입니다. 

하나님은 왕, 나는 백성입니다. 

이런 관계를 잘 지켜 나아갈 때 승리는 보장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성공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계속 성공할 것입니다. 더 큰 성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혹시 실패하셨습니까? 하나님의 패자부활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실패가 성공으로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제하시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하여 승전가를 이어 부르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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