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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굳건하게 (베드로전서 5:8-9)

목사님 0 958

 

 

  

 

예배, 정확하게는 교회에 대한 제한이 많지만 

 

예배는 허용해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축되지 말고 가슴을 폅시다. 

 

저희는 잘못한게 전혀 없지요. 방역 수칙도 잘 지켜왔습니다.

 

명단 작성, 구청에서 전화가 와서 100인 이상은 같이 예배드리면 안됩니다.

 

오늘 성가대, 하경삶, 새신자반, 여호수아 셀 성경공부는 쉬도록 합니다. 

 

교계와 정부가 대화가 잘되서 다음 주에는 다들 시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권고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종교입니다. 

 

디모데후서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가정, 학교, 교회에서는 자녀를 올바른 인격자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양육과 교육을 받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고, 귀한 사람이 되고, 세상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쓰임 받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본자세를 잘 배워야 합니다. 기본자세는 누구에게나 굉장히 중요합니다. 

 

각종 스포츠도 기본자세가 있습니다. 

 

스포츠 입문자들은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본자세가 자기의 생각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자기의 생각과 고집을 과감하게 버리고,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데도 기본자세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봉사자들에게 기본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1절에서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고난을 싫어하는 자들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절대 영광이 오지 않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3절을 보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지도자들은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합니다. 

 

본이라는 것은 모델이 되라는 것입니다. 패션모델들은 지금 여름이 다가오는데, 겨울 옷을 입고 준비합니다. 미리 앞서 가는 사람들입니다. 

 

양 무리의 본이 된다, 교회의 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앞서가는 것입니다. 

 

셀 리더들이 성경 공부를 가르칠 때에도 미리 앞서 공부해서.

 

교회는 이렇게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앞장서서 모델이 되고, 앞장서서 양무리의 본이 되는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우리 교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주인 의식, 주인공 의식. 

 

  

 

솔로몬 성전에는 두개의 기둥이 성전을 떠받들고 있었는데 

 

역대하 3장 17절에 의하면 이름이 각각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세우리라” 즉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뜻이고 

 

보아스는 “능력이 있다” 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세우셔야 능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이 세우셔야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이 세우셔야 능력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님이 세우셔야 능력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두 가지의 강도에게 유린당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 첫 번째는 어제에 대한 후회입니다. 

 

이 사람들의 전문 용어는 “...껄”입니다.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 껄” 

 

두 번째는 내일에 대한 염려입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전문 용어는 “만약...”입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염려라는 말은 마음이 갈라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염려하면 우리 마음이 갈라져서 한 곳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염려하기 시작하면 하나의 염려가 해결되면 또 다른 염려가 생깁니다. 

 

직장 생활로 염려하고, 결혼문제로 염려하고, 그리고 자녀 양육 문제로 염려합니다. 그 염려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를 오늘 성경에서는 

 

주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염려할 일이 생기더라도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일은 기도와 간구. 문제 해결은 그분의 영역.

 

  

 

마귀는 우리의가 믿음이 연약해지는 순간 역사하는 영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흔들리면 마귀는 벌써 우리들의 믿음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좋은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입니다. 

 

때문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아주 강하고 담대한 믿음 그리고 흔들리지 않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근신하라는 말은 감정, 욕망, 염려 등에 대해 절제하라는 말입니다. 

 

먹는 것을 절제하고 노는 것을 절제하고 말하는 것도 절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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