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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바친 물건 (여호수아 7:10-15)

목사님 0 41

    

   오늘 먼저 민족이란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들은 한반도에 같이 살면서 같은 민족으로.

일본은 같은 섬에 살면서 같은 민족으로.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면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구나.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받아 출애굽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구원을 받아 애굽과는 관계를 끊고, 이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430년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으로 향하는데 그들의 경건과 거룩함이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저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날을 바라보며 광야에 머무는 동안 교회가 세워지는데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광야 교회라고 합니다. 그 광야 교회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훈련을 받으면서 이제 가나안 땅의 삶을 준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그 광야 교회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애굽 생활의 독, 노예 근성을 뽑아내 버려야.

그리고 또 하나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에 지켜야 할 율법, 하나님의 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됩니다. 세상 법을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익히도록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자동차 운전도 그렇습니다. 운전 면허만 따면 다 끝난 것입니까?

운전 면허를 따고 자동차에 올라 운전을 해야 면허증을 땄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처음 운전을 해 보면 운전이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내가 편안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되는데는 적어도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지간히 사고도 내고 이리 찌그러지고 저리 부딪치고 해가면서 운전을 몸에 익히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드라이빙 마인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운전이라는 것도 능숙하게 되기까지는 긴 훈련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40년 동안의 긴긴 훈련 뒤, 지도자 모세는 세상을 떠났고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꿈에도 잊지 못하는 가나안 땅을 밟게 됩니다.

우리가 종종 경험하게 되는 일 가운데 이런 일이 있습니다. 

시간도 충분하고, 인적 자원도 충분하고, 여건이나 물질까지도 풍족해서

당연히, 그 일은 꼭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변수가 나타나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일은 여건도 좋지 않고, 물질도 시간도 부족해서 그 일은 안될 것 같아 보였지만 믿음으로 기도하고 감당하다 보면 성공하는 것을 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인간적으로 완벽해 보여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실패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완전해 보여도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남들이 뭐라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맨 처음 만나는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감격으로 충만하여 이제 그 여세를 몰아 그 다음에 있는 아이 성을 공격하였는데 그만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답답하고 괴로운 나머지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하루 종일 하나님의 법궤 앞에 엎디어 웁니다. 통곡을 합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는 것입니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목놓아 웁니다.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엎드렸다고 해결이 되느냐, 통곡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그러면서 패전의 원인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11절).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지 마라.

남에게 탓을 돌리면 아직 멀었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나와 하나님의 관계 해결.

그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13절에서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패한 이유가 적이 강해서가 아니고 원인은 거룩의 문제요, 신앙적 문제라고 하나님께서 지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고 정황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정말로 그렇습니까?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문제의 근본은 거룩에 있고 신앙에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특별히 “너희 속에 아간이라는 반역자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치르시는 정복전쟁, 성전, 거룩한 전쟁의 의미를 아간이라는 

작자가 강도질하는 전쟁으로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아간이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경제 논리에 충실하였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는 중에 본즉 좋은 외투가 있단 말입니다. 

‘아 이 아까운 외투를 왜 불태워?’하고 아간은 외투를 취하고, 은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도 취하고, 또 금덩이가 하나 눈에 띄므로 ‘아 이 이까운 걸 버리다니, 그럴 것 없다, 요걸 잘 감추어 놓았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에 꺼내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경제논리로 보면 그런 것들을 불태우고 없애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선민의 논리로 볼 때는 그거 안 될 일입니다.

은과 금이 나를 살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역사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성결하게 하신 다음에 사용하십니다. 

기도, 주세요, 주세요, 하다보면 회개할 것이 생각나고 회개케 하고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기복신앙으로 시작, 거룩한 기도로 맺음.

여기서 빗나가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외투 한 벌을 보는 순간 욕심이 생겼습니다. 금덩어리를 보는 순간 탐심이 발동하였습니다. 거기서 정신이 확 돌아간 것입니다. 

언제나 탐심이 문제입니다. 지나친 욕심이 문제입니다. 

탐심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추해지고 더러워지고 이웃도 없고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욕심에 미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땅속에 감추었는데”라고 합니다. 

감추었다는 것, 은폐하였다는 것, 하나님께서 이것을 용납치 않으십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참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초대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고 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서 땅을 팔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데 땅을 팔고 보니 그 돈이 너무 많고 아깝다는 마음이 들어 반은 감춰 놓고 나머지 반만 가져와 베드로 앞에 갖다 놓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땅 판 것 전부냐?’하고 물을 때 ‘아닙니다. 반은 놔두고 반만 가져왔습니다’했더면 문제가 없는데 ‘다입니다’하였습니다.

‘너 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느냐?’ 딱 한 마디 떨어졌는데 죽어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이것입니다. 이 사람들 괜한 일 하다가 죽었습니다. 안 바치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왜 바치려다가... 

그 거짓말 한 마디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고 하니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벽두에 이 같은 거짓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간의 행위가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거짓말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거짓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능력이 있고 없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그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정직성이라고 하는 것은 잘했나 못했나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진실을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윤리도덕의 기본입니다. 

경제의 기본입니다. 정치의 근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 자녀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하고 싶습니까? 첫째가 무엇입니까? 

유능한 사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능한 사람, 이것이 망조입니다. 

다른 말은 못 들어도 좋습니다. 잘나고 못나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저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그리고야 경제도 되고 나라도 되는 법입니다. 

 

성경상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역사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빈약하여 망한 나라는 없습니다. 어느 나라 없이 망할 때는 윤리, 도덕적으로 문란할 때 망했습니다. 

대로마제국이건, 바벨론이건,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락해서였습니다. GNP가 높아졌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잘살게 된다고 하여 거기에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바로 깨어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깨어 있어서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영적 의미를 감지할 수 있는 지각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이 무려 22번이나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서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합니다.   

멍청하게 생각 없이 있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것입니다. 

도적이라도 알고 기다리면 손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다음에는 그 은혜를 기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내리는 가운데서 기적적으로 출애굽합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채 두 주일도 못되어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받은 바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곧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빨리 잊어버렸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가 감옥 벽에 써놓은 기도문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고 합니다. 

“기도한 내용을 잊지 말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예전에 기적이 있었다면 오늘도 일어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 하나님,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게도 똑같은 기적이 나타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욥이 신앙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모릅니다. 

오직 주께서 아십니다. 모르는 길을 오늘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주님의 인도에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하셨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성결하여질 때를 기다리십니다. 

모름지기 먼저 스스로 성결케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일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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