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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출애굽기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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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준비하면서 지금 우리교회의 상황과 overlapping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오늘 본문은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새로운 각오로 5월의 마지막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양치기 목동으로서의 모세와 같은 무기력한 나의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소명을 받는 중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십니다. 

엄청난 이야기가 아닙니까? 

나이 80세, 인생으로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자 행하신 일은 천지개벽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고 오직 조용히 ‘한 사람’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나 하나,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상이야 어떻게 가든 나 하나만이라도 똑바로 서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겠다, 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을 하는 한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볼장 다 보고 마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너무나 두려운 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라 하면 너는 갈 일이다, 네 과거도 알고 네 미래도 알고, 네 현재의 부족함도 안다, 

다 안다, 그리고 처음 주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 과거, 네 미래, 네 신분, 네 자존심, 다 벗어버리라, 함입니다. 네 발의 신을 벗고 여기서부터 새로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무대 정면에 위대한 인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설교를 듣거나 기도 할 때, 성경을 읽는 중에 어떤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으면 의심 없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받아들이십시오. 그 순간 하나님이 지금 나를 부르시고 계시구나! 하고 얼른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겠나이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한 번 듣고 나면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반응한 사람들은 모두 새롭게 되어서 대단히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을 희망이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을 묘사할 때마다 새 것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고, 천국에서 부르는 노래를 새 노래라 하고,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언제나 새로움이, 참신함이, 신선함이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은혜가 떨어지면 그 사람에게서 새로움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목회를 이런 상태로 끝내야 하고 있었는데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은혜를 받아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믿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부름 받는 시간 이후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순간부터 공적인 경기가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부름 받기 이전을 잘 설명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말하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의 30년의 세월에 대하여 거의 언급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과 저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지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난 다음 어떻게 살았느냐? 어떻게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은 자랑할 것도, 또 부끄러워 할 것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계획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벌써 80년 전에 모세를 나일강에서 건지시고 바로의 궁에서 40년간 공부하게 하시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게 하시어 낮추시고 낮추신 것입니다. 

80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르시는 것입니다. 

당시 모세의 나이가 80세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인간적으로 볼 때에 80세는 희망이 사라지는 나이입니다. 

여러분이 모세라면 믿어지겠습니까? 

똑 같은 말씀을 몇 사람이 같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큰 축복을 받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4:2을 보면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들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내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게 느껴지지만 내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놀라운 일이 내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습니다. 나를 향해서 큰 복과 놀라운 비전을 준비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이 믿음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기독교는 사실 예수님 만나서 팔자 고치는 종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우리 새하늘 교회에 와서 팔자를 고치기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 희망없이 살아가던 80 노인 모세가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 거듭 태어나고 보니 의미없다고 생각했던 지난 80년이 버려진 과거가 아니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 속에 그 80년은 예비된 기간, 필요한 훈련기간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그는 바로의 궁전에서 많은 애굽의 문물과 애굽의 학문을 익힙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자면 애굽을 잘 알아야 됩니다. 

또 그런가하면 광야에서 목자로서의 40년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때 교만하기도 했고 혈기도 있었습니다. 마음대로 안된다고 사람을 때려 죽이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동안 그는 과거의 혈기 다 버렸습니다. 애굽의 왕자로서 갖고 있던 꿈도, 욕망도 완전히 버려집니다. 인내를 배웁니다. 온유함을 배웁니다. 거기서 그는 새사람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이 40년도 지도자의 소양을 키우는데 꼭 필요한 그런 40년이었습니다. 쓸데없는 과거가 아닌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과거도 오늘을 위해서 있었던 과거입니다. 여러분, 혹 실수한 일 있으십니까? 

그 실수 때문에 내 인생은 다 망쳐버렸다고 하시겠습니까? 

누구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 이렇게 말하십니까?

이제 끝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경륜과 그 뜻 안에서 새롭게 자기를 발견하는 순간 지난 날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3:5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소망의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형편을 다 아시고 부르십니다. 

그의 혈기, 그의 죄악됨, 그의 나약함 다 아시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너는 가라,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고, 아주 무능한 것 같아도 너는 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의 그 말씀에서 그는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특별합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고하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그 분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 소명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내가 고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파울로스 아포스톨로스 둘로스 예수 크리스투’

바울, 사도, 종,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나 사도 바울은.

사도란 높은 이름입니다. 종은 낮은 이름입니다.

사도는 영광된 이름입니다. 종이란 비천한 이름입니다. 

이 두 이미지를 한 몸에 지니고 삽니다. 

사도인 동시에 종이요, 종인 동시에 사도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입니다.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주님의 뜻만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종됨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사명이 뭐냐? 사명파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세상에 보내셨으며 내 일생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가, 이 사명을 알고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절에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합니다. 

‘일꾼’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풀어보면 ‘노를 젓는 자’라는 뜻입니다.

옛 노예선 노예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일제히 노를 젓습니다. 빨리 저으라면 빨리 젓고 멎으라면 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여기에 질문은 없습니다.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노를 젓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일꾼입니다. 

 

오늘의 이 부르심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절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나의 능력도, 나의 경력도, 나의 과거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이 사실만을 믿어라, 백성들로 이 사실을 믿게 하라, 이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가져야 할 자기의식, 정체감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 모세를 통한 이적, 기적입니다. 

모세가 모세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적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생애는 이적으로 충만하고, 이적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역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전적인 순종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믿으려면 전부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여 이것을 요렇게 빼고 저것을 조렇게 빼서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테레사 수녀님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순종한 것 뿐입니다.”

내가 부족한 것 다 아십니다. 그러니 할 말 없습니다. 

그저 딱 한 마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 뿐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말이 전혀 필요없습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어린 사무엘이 사무엘아 하고 부를 부르실 때 

“말씀하소서, 종이 듣겠나이다”합니다. 말씀하소서, 종의 듣겠나이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간 주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것이 성령 충만한 이사야의 응답이었습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나의 맘 나의 몸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주소서

가진 것 모두 다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나를 받으옵소서 나를 받으옵소서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람을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믿음의 사람, 진실로 응답하는 사람, 헌신하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나의 부족함과 허물은 끝이 없이 많지만 그러나 내 모습 이대로를 하나님께 바치는 그 사람,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오늘도 부르고 계십니다. 

그 누구든 오늘 주님의 그 음성을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하고 그대로 주께 맡기면, 그렇게 응답하면, 이제 

새로운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새로운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새로운 능력으로 크고 놀라운 일을 이 땅에서 펼쳐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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