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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마 (신명기 6:4-9)

목사님 0 21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예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가정의 영적 질서입니다. 

세상의 불행의 시작은 가정의 파괴에서부터 일어납니다. 

그래서 마귀는 가정을 파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아담이 무슨 죄를 지었을까?”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계속해서 선생님이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아담이 받은 벌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똘똘이가 손을 들고 대답을 합니다.

“그 벌로 아담은 하와랑 결혼을 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첫 번째 죄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죄가 핑계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다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핑계를 대며 삽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핑계를 대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가복음 7:11에 보면 ‘고르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람어로 정확하게 읽으면 ‘코르반’인데 본디 하나님께 바친 성별된 헌물, 

제물을 뜻하는 말인데 점점 어떤 뜻으로 바뀌어 갔는가 하면, 어떤 사람이 이 돈은, 이 물건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것이다 하고 선언하면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자식들 중에 부모를 공양하기 싫을 때, 부모 때문에 기 돈 쓰지 않으려고 이 고르반을 악용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런 고르반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뿐만 아닙니다. 직장 생활, 신앙생활에도 수많은 고르반, 수많은 

핑계가 있지 않습니까? 주일 성수. 

참 고르반이 다양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 복받는 인생이 되길 원한다면 

그 기막힌 고르반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각을 해야.

간절히 소망하고 결단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어버이날의 유래는 지금부터 약 100 여 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라는 마을에 ‘안나 자이비스’라는 소녀가 어머니와 단란하게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엄숙히 치르고 그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던 카네이션 꽃을 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워 하는 마음을 담아 카네이션을 달고 어느 모임에 나갔습니다. 

보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소녀는 대답하기를 “어머님이 그리워 어머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꽃을 달고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후 안나 자이비스는 어머니를 잘 모시자는 운동을 벌여 1904년에 시애틀에서 어머니날 행사가 처음 개최되었는데, 이 날 어머님이 살아계신 분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은 자기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달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에서는 1913년 이래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였고, 점차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였으며, “그럼 아버지는 뭐냐”는 여론에 따라 73년부터는 “어버이 날”로 바꾸었습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구별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일본제국주의의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고안해 낸 것이 술집과 유곽.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그런데 우리 어린이들은 이런 일본제국주의 탄압 아래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어 우리 민족의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1923년 소파 방정환선생님이 어린이들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민족의식을 불어 넣기 위하여 어린이날을 제정하였습니다. 

 

‘어린이날 노래’ 아십니까? 

“(1절)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2절)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예수님께서 오시기 70년 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성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얼마 있지 않아서 예루살렘이 함락될 지경까지 갑니다. 이때 아킵바라는 유명한 랍비가 비밀리에 

로마의 총사령관 베스베잔을 만납니다. 그리고 아킵바는 베스베잔에게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내일 아침에 우리가 대항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로마 군인을 맞아들이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청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한 가지 청이 무엇이요’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조그만 집이 있는데 그 집만큼은 손을 대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약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도대체 손대지 말라는 그 집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러는 겁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집에는 책이 있습니다. 그 까짓 책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으니까 내가 그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하였습니다. 

아킵바가 생명을 걸고 보존하기를 원하는 작은 건물은 예루살렘성전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말씀 학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살아오다가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수많은 아랍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없애려고 전쟁을 하지만 전쟁을 하면 이스라엘이 언제나 승리를 합니다. 이런 무서운 민족, 힘있는 민족, 이런 막강한 민족이 된 배후에 어떤 비밀이 있겠습니까? 

바로 아킵바가 이야기 했던 ‘그 집’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 집만은 

양보 할 수 없다는 가치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강성한 비결입니다. 유대인들의 집에는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신앙교육의 총체가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쉐마라고 하는데 그 뜻은 “들으라!”는 말입니다. 

이 ‘쉐마, 들으라’에는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이 들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읽고, 외우고, 이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예수님도 십계명 중 제일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에 즉각적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쉐마’는 성경전체의 요약이요 성경전체의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교육의 교사는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국사회는 일류선생님한테 보내놓으면 다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착각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의 미래는 부모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최고로 유명한 학원선생님, 가정교사가 자녀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가 훌륭한 자녀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시편 127:3을 보면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식은 내 자식 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경건하게 잘 키우라고 내 가정에 맡겨 주셨다는 사실을 믿음의 가정에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나는 너의 육신의 부모이지만 너의 참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므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를 잘 만나게 하고 그 아버지를 사랑 하게 하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비결입니다. 

자녀에게 빠져 가지고 그것이 내 것인 것처럼 키워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할 때 결국 하나님 아버지도 모르고 육신의 부모도 모르는 망나니가 되고 말 때가 흔히 있습니다. 

요즈음 부모들은 흔히 자녀들 ‘기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방임적으로 아이들을 양육합니다. 

어릴 때 방임해 버리면 나중에는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사회가 원치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생각이 이미 굳어진 다음에는 교육이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자녀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서 힘을 쓰고 있습니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은 자녀들의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 성 어거스틴 뒤에는(사도 바울,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틴 루터, 장 칼뱅)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모니카는 눈물로 기도했고, 30년에 걸친 눈물의 기도는 응답되어 마니교도

이었던(신천지를 연상하면 됨) 어거스틴을 회심시켜 중세 최대의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자녀의 신앙을 위하여 울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링컨도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은 성경이었다고 고백을 하고, 록펠러도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머니가 믿음의 재산을 물려주심으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었기 때문인데, 그 중에서도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 중에 으뜸은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 입니다. 다윗의 유언이 역대상 28장 9절에 나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다윗은 자기를 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섬기던 하나님을 아들 솔로몬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므로 솔로몬 사후 나라가 두 동강이 나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부모들은 그들이 당한 고난을 잊지 말라고 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되면 쓴 나물과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질문을 합니다. ‘엄마 왜 이렇게 맛이 없는 것을 먹으라고 하지요?’하고 물으면 부모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노예였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단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돼! 우리가 그래서 1년에 한번 씩 이렇게 하는 것이야’ 그러면 그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고 쓴나물과 맛없는 빵을 씹으면서 우리 민족들이 이렇게 고통을 당했지!하는 것을 알게 합니다. 

지금도 초막절이 되면 집 밖으로 나가 텐트를 치고는 불편하게 일주일 동안 생활을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냐고 자녀들이 물으면 우리가 광야를 지나올 때 이렇게 지냈단다.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때를 잊지 않게 합니다. 우리의 교육은 피상적이고 과거를 덮어 두려고만 하는데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아팠던 과거를 잊지 말라고 실제적으로 가르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어버이,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내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교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영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다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제 자녀들의 영혼 구원과 영적 성장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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