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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여호수아 4:1-9)

목사님 0 50

   

     한 할머니가 택시를 탔습니다. 한참 가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소리쳤습니다. “기사양반, 내가 어디로 가자고 했지?” 

이때 기사 아저씨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아이구, 깜짝이야! 할머니, 언제 타셨어요?“ 

 

사람은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삽니다. 

그 기억 중에서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을 기념비라고 합니다. 나라마다 대표적인 기념비가 있습니다. 

뉴욕에 가면 자유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미독독립을 기념하여 프랑스가 선물한 기념물입니다.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든 여신의 모습 속에서 미국의 자유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이 있습니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는데 그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운 기념물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가면 “야드바셈”이라고 하는 유명한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나찌의 만행과 이스라엘 백성의 학살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관입니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 폴란드를 비롯한 전 유럽에서 유대인 성인 450만, 어린이 150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념관 벽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망각은 파멸로 이끌지만, 기억은 구원의 비결이다”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면 흥하고, 망각하면 망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하려고 기념관을 세웠습니다. 

기념비는 항상 그것이 세워진 역사와 함께 그 다음 세대에게 

그 역사를 잊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해 세워집니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생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길갈에 세운 기념비’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이제 그들은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여 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그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건져 주셨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고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랑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공급해 주시긴 했지만 광야에서 그들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고, 광야에서 그들의 삶은 풍요로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고생이 끝났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가 곡식을 거두는 시기라, 요단강물이 최고의 수위에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요즘 이스라엘을 가보면 요단강이 마치 개울처럼 작아서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수영을 조금만 하는 사람이면 충분히 건널 텐데 ...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현재의 지형과 많이 달라서 그때는 제법 큰 강이었다는 겁니다. 보통 때는 강폭이 30m 정도였는데, 우기가 되면 강물이 범람해서 1.6km까지 되었고, 깊이도 몇 길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물살이 빠른 급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당도했을 때가 마침 범람기였습니다. 

여호수아 3: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널 때에 요단강의 수위는 최고조였습니다. 요단강의 물은 강둑을 넘어설 것 같은 기세로 넘실거리며 흘러가고 있고, 그런 요단강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험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모두 다 힘겨운 삶을 살아냅니다. 그래서 “인생은 장애물 경기와 같다.” 

장애물 경기를 허들 경기라고 부르는데, 그냥 달리는 게 아니리 중간 중간 장애물들을 여러 개 세워 놓고 넘어가야 합니다. 종목에 따라서는 허들 외에 물웅덩이를 여러 개 만들어 놓고 경기를 치르게도 합니다. 

그냥 달리기도 힘든데 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달리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을 가리켜 장애물경기와 같다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은 장애물 경기보다 훨씬 더 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애물 경기는 장애물을 미리 예상하고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장애물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돌출할지 전혀 모릅니다. 미리 연습할 수도 없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장애물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그 장애물을 잘 이기느냐 못 이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홍수로 넘실대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 요단 강을 건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어떻게 불가능의 강을 건넜을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신앙의 힘으로 건넌 것입니다. 

절대 순종, 그들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던 힘은 절대 순종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단강 도하 사건은 순종의 완결편입니다. 

여호수아 3:8을 보면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홍해를 건너게 하실 때에는 홍해의 물을 갈라 육지처럼 만들어놓으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에 요단강물은 무섭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그리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세게 흐르는 요단강에 들어가서 발이 물에 잠기자 그 때서야 거세게 흐르던 요단강 물이 멈췄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요단강은 그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언제 강물이 갈라졌습니까? 발이 물에 잠기자 곧! 물이 갈라집니다. 

제사장들은 강 한가운데 있고 이제 백성들이 건너갑니다. 

그때 백성들도 한 역할 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머뭇거리고 불순종했다면 요단강은 영영 불가능의 강으로 남아 있었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체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결정적인 순간! 절대 순종의 순간!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기적이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일어난다면 아무나 체험하겠죠. 

결정적 순간까지 믿음을 지키고 나아간 사람, 온전한 순종을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니까 기적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 십년 이십년 해도 무미건조한 겁니다. 반대로 신앙생활 엊그제 시작했어도 시키는 대로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막 체험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기적의 공식입니다! “믿음 + 순종 = 기적”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첫 불순종의 사건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

처음에는 하라고 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대로 지켜서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내 생각이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하게 되고

불순종하면서 ‘본인은 불순종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낙원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간단하게 사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면 편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집니다. 

그 중심에 주일 성수와 십일조가 있습니다.

주일성수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이대면서 

꼭 교회에서만 예배드려야 예배냐? 모든 일주일이 주의 날인데 다른 날 

예배 드리고 주일은 잘 즐기면 되는 거 아냐? 

십일조에 대해서도 자기 논리대로. 

 

이런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전에도 이미 수없이 많은 기적들을 경험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에 애굽 전역에 내린 열 가지 재앙도 모세를 쓰셔서 해결하셨는데 특별히 마지막 열 번째 재앙 때에는 어린 양을 잡아 

그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만 죽음의 사자가 건너가 장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또 홍해를 건넌 것도 그렇거니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던 것, 

반석이 갈라져 물이 흘러나오고 반역을 일으킨 자들에게는 땅이 갈라져 

반역자들을 집어삼킨 것 등등 그들이 경험한 기적 같은 일들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수많은 기적들을 그들 앞에 베푸셨지만 단 한 번도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런 일들을 기억하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요단을 건너게 하신 후에는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요단강을 건너가 그들이 머문 그 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머물러 살 땅은 바로 요단강을 건넌 이후에 주어진 바로 이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도착하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지자 여호수아는 곧바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12명을 뽑아 요단강에 가서 돌 하나씩을 메어오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그 돌들로 길갈에다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4:6-7

두고 두고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억해고 다음번에 불가능의 강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두려워 말고 반드시 승리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4장 마지막절인 24절에서는 그렇게 기념비를 세운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너희와 너희 후손이 영구히 머물러 살 곳이고, 그래서 너희 후손들이 자주 이곳에 와서 이 기념비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길갈에 세운 기념비는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고, 지난날 그들의 조상을 지켜주시고 약속하신대로 이루어주신 그 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베푸셨던 은혜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길갈에 기념비를 세워 지난날 도우셨던 하나님을 늘 기억하도록 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지난날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우리는 받은 은혜를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받은 상처나 아픔은 빨리 잊어야 하고 우리가 받은 귀한 은혜는 돌에 새겨 오랫동안 잊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일 때가 참 많습니다. 

기억해야 할 은혜를 너무 빨리 잊어버립니다. 때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런 이기적인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지난 날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주 기억할수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그 힘들 때 나를 도우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를 돕고 계시고, 때로는 내 삶의 여정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함으로 이겨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 지금 눈앞에 어떤 불가능의 강이 넘실거리고 있습니까? 

인간의 재주나 의지가 아니라 신앙의 힘으로! 담대히 건너십시오!

앞으로도 계속 불가능의 강은 내 인생의 여정 곳곳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배운 대로 절대 순종의 원리를 적용하셔서 계속 승리함으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놀라운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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