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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시다 (마가복음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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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반갑습니다. 3주 만에 다시 뵙습니다. 이 엄중한 시기를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의 신앙이 성숙해지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도서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바이러스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에게도 봄이 찾아 왔습니다. 

새싹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다 죽은 것 같아 보였지만 생명의 씨는 그 씨앗 안에서 웅크려 때를 기다렸다가 봄이 되니 다시 꽃을 피웠습니다. 

죽음이 아무리 강하게 보여도 생명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해마다 새움이 돋는 이때가 되면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 하게 됩니다. 

부활절 대표음식으로 달걀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었고,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승리의 날 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를 믿고 따르는 크리스찬들의 승리의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초대 교회 사람들이 전한 메시지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예수 부활하셨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한 마디가 초대 교회가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세계로 기독교가 뻗어 나가는 시금석. 

기독교는 부활의 역사적 사실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istorical fact.

현재를 사는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재의 내 삶 속에서도 이루어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은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확실히 밝혀 두고 있습니다. 부활장. 오늘 오후에는 15장을 음미하면서 집에 가서 꼭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중에서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만약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 우리의 구원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순례의 길입니다. 한번 이 땅에 태어나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낯설은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그 종착점은 묘지요 죽음입니다. 인류의 삶은 결국 묘지를 향해가는 길고 긴 행렬입니다. 

가는 순서만 다르지요. 

세상 사람들은 흔히 무덤의 크기로 생전의 권세와 위용을 자랑하곤 합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렇고, 중국의 진시왕릉이 그렇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종교는 없었습니다. 

이 땅의 종교 창시자들이 많은 업적을 남기고 죽었습니다만 결국 그들도 

사망을 이기지 못하고 무덤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신천지의 이만희가 죽지 않는다고 했다죠?

제 아무리 크고 화려한 집에 살아도 한번 숨 거두고 나면 그 집에 5일 이상 머물 수가 없습니다. 3일장 아니면 5일장입니다. 요즘은 죽기도 전에 병원 영안실로 떠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화가 나면 나 죽으면 그만이지? 라고 말합니다. 

누가 그만이라고 얘기했습니까?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것인가?

영벌에 세계에서 괴로운 삶을 살 것인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만일 부활이 없다면”을 8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있다. 틀림없이 있다. 확실하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 문장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 종착점에서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까?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분 세상 떠났다고 합니다. 

갈 곳이 있으니 떠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인간은 온 곳이 있더라는 뜻입니다. 알지 못하지만 그곳이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인간은 자연스럽게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러시아 모스코바 붉은 광장에 가서 레닌의 무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썩지 않게 방부제로 처리하고 항상 무덤 안을 섭씨 16도로 유지하여 지금도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기 위해서, 

혹은 우리처럼 구경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부활의 종교입니다. 누군가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내면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시체는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의 다시 살아나심,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부활절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 가족이 복음을 들고 제물포 항에 도착해서 한국 땅을 밟음으로서 이 땅에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한국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장로교 소속 선교사님이십니다. 아펜젤러 목사님은 감리교 소속 선교사님이십니다. 그 당시 교회법은 먼저 도착한 교단의 선교사가 그 땅에 우선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두 분이 사이좋게 손잡고 같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같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펜젤러는 도착 즉시 미국 감리교 선교부에 편지를 보내었는데 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우린 부활절 아침에 이 땅에 도착 했습니다. 이 날 사망의 철장을 깨뜨린 주님께서 이 백성들을 묶고 있던 결박을 푸시고 그들을 주의 자녀로, 빛과 자유로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이것은 불과 135년 전의 일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부활절 아침에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때 그 순간 어디 있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운 좋게 그 자리에 있어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는가 하면 반대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지 못해 일평생 후회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1995년 교회에 출석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비포, 애프터

 

안식 후 첫날 세 명의 여인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물론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을 확신하고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고, 다만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려고 간 겁니다. 

그런데 동굴에 갔을 때 이미 굴을 막았던 큰 바위는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을 쌌던 세마포는 곱게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나서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부활하면 갈릴리로 가겠다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셨다고 알려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 21장으로 연결이 됩니다. 제자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왜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가 아니고 갈릴리입니까? 

삶에서의 부활은 현재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뜻이 있는 겁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실패의 자리일 수도 있고, 권태로운 자리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진정한 부활이란, 엉망인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답은 언제나 지금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만약 지금 있는 자리가 답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라는 싸인을 주십니다. 떠나는 것은 그때 떠나도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주의하여 할 점은 작년에 하지 못한 일, 지난 달에 하지 못한 일, 어제 하지 못한 일 다시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새 날이 있고, 새 달이 있고, 새 해가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오늘 못한 게 있다면 밤에 “주님 제가 오늘 게을렀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믿음으로 주무십시오!

그러면 버리는 날은 그날 하루로 끝납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열심히 살면 됩니다. 새 날은 어제 일을 잊고 다시 시작하는 날입니다. 

새 달은 지난 달을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새 해 역시 묵은 해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지 못하면 과거에 얽매이게 되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진정한 생활 속의 부활이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이 내게 진정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부활신앙이 정말 나에게 소망을 주고 있는가?

이 어려운 시기에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며 부활 새벽의 은혜를 가슴에 안고 힘차게 출발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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