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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일(야고보서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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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일을 우리는 모릅니다. 아니 알 수가 없습니다. 

WHO 사무총장이 드디어 PANDEMIC을 선언하였습니다. 

PANDEMIC은 WHO가 분류한 전염병의 위험도 6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인 6단계에 해당하는 조치로 국제적 공조가 필요한 질병을 의미합니다. 

PANDEMIC은 그리스어인데 'PAN'은 '모두', 'DEMIC'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겉잡을 수 없이 번져 전세계를 위험으로

몰아놓고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인류의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나님이 조금만 비틀면 어쩔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 진정국면에 들어간 것 같은데. 

이제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이 시작. 

불행 중 다행은 우리나라 의료, 특히 진단검사 기술이 전세계에서 인정을 받아 미국에서도 한국을 본받자, 특히 drive through 검사.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한국에 자문을 요청했다고.

이번 일을 통해서 우리 대한민국의 fundamental이 더 든든해지고

더 나아가 한국민의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코로나도 코리아는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모두 개인 위생에 주의하고

잘 이겨나가 전세계에 위대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 주십시다.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저술가인 ‘워치만 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20대에 중한 병을 얻어 사형 선고를 받아 죽음을 앞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환상 중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큰 바위에 부딪쳐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아 이 바위 좀 치워달라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하나님께서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해 주겠다’고 하셨답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바위가 있습니까? 그런데 내 앞에 있는 바위를 치워달라고만 기도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바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만 하면 어떤 시험도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장 실제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지당한 말씀 아닙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의 이야기로 말할 때에는 잘 통하다가 나의 문제로 오면 당황하며 거부하려고 합니다. 장례식에 가서도 어디까지나 남의 장례식만 생각했지 자기 

장례식 날은 생각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남이 죽는 것을 보고는 다음은 내 차례구나 하는 생각을 왜 못합니까?

죽음이 내 문제일 수도 있음을 부인하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대로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입니다. 

이 세대를 가리켜 불확실한 시대라고 합니다마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인생에 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러분, 끝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쓸데없이 오래 살겠다거나 계속 젊어지겠다고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생의 마지막이 있어서 끝을 낸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끝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일을 완성하고 난 뒤에 끝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그 시간이 곧 끝나는 시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완성 중에 완성의 시간이 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깊숙이 감추어져 있어서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우리들에게 유익하므로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발표하면서 제일 걱정했던 게 스포일러였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 중의 하나가 영화 결말을 먼저 이야기 하는 사람아니겠습니까? 결말을 알고 보면 재미가 반감.

신앙 생활이란 역적의 명수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두근 두근하면서 살아가는 것. 

나에게 무엇으로 잘해 주실까?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주실까?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어느 사람이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해서 이익을 보리라고 계획하고 있는 그 발상이 참으로 어리석음을 말해줍니다. 사람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같은 존재인데 어떻게 마음대로 아무 도시에나 가서 일 년 동안 돈벌어 오겠다는 그런 허튼 소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농사를 잘 지어서 ‘창고를 크게 늘려 오랫동안 먹고 마시며 즐기자, 내 영혼아’라고 말했을 때에 하나님이 ‘이 사람아, 오늘 밤에 자네 

생명을 취한다면 자네 소유가 누구 것이 되겠는가?’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알고 온유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수고는 내가 했어도 결국은 하나님이 기회와 능력을 주셨음을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종말론적인 윤리관을 배우고, 세워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본문 말씀대로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믿는 우리들은 순례자의 윤리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그런 망상을 가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끝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죽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주일만 되면 모든 것을 전부 중단(all stop)하고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부르시면 다 중단하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수주일하는 것이 세상 일을 중단하는 훈련이니, 죽는 연습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자는 것입니다. 

 

백만장자들에게 세 가지의 특징이 있더라고 합니다.

하나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만사에 부지런합니다.

마지막이 남을 원망하지 않고 환경 탓을 안하더라는 것입니다. 

 

첫째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남 원망하면 잘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은 21장에 보면 21절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 오셔서 다시 출발하는 이 귀한 시간에 베드로가 옆에 있는 사도 요한을 생각하고 하는 질문입니다.

묘한 질문 아닙니까? 사람에게 치사하고 더러운 것이 비교의식, 즉 질투입니다. 이 비교의식이라는 마음은 참으로 묘한 것이고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대화하는 이 순간에도 작용을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나 잘하세요’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만 생각하면 되는데,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면 되는데 왜 다른 사람을 생각합니까?

‘왜 저 사람이 잘되는 거죠?, 왜 저 죄인이 잘되는 거죠?, 왜 나쁜 사람이 출세하는 거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할 것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 맡기고 비교하지 말 것입니다. 꼭 비교하는데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진정 신경 써야 할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직선적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누구입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바가 무엇인지, 

또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그걸 똑바로 모릅니다. 여러분들, 우리는 내게 맡겨주신 것 그것만 알고 그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절대 비교하지 말 것입니다. 

 

많이들 고민하고 저에게 질문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 교육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 대답은 당신 할 일만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해야 할 일, 어머니는 어머니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세요.

부부간에도 서로 이런 사람이 되어 달라, 저런 사람이 되어 달라 할 것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와의 관계입니다. 

질투할 것도 없고 비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왜 요한하고 비교하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오직 너는 나를 따르라. 

 

두 번쩨로 환경 탓 할 것 없는 것입니다. 

잠언 22: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여러분, 환경을 탓하고, 밖에는 사자가 있다, 밖에는 위험이 있다 하는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모험 아닌 일이 어디 있습니까? 모험성이 없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전거를 배우다가 무릎 안까진 사람 있습니까?

운전도 배우면서 접촉사고 한 번도 내지 않은 사람 있습니까?

위험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웬만하면 다 자기 일 자기가 할 것입니다. 못할 것이 뭐가 있단 말입니까?

해 보면 의외로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의 기본은 직면 아니겠습니까?

재벌들, 잘 걷지도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몸종.

내가 할 일 남에게 맡겨 버릇하다가 이런 바보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의 결론은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회개도 겸손도 봉사도 선행도 충성도 다 기회가 있습니다. 

지나가면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하지 못하고, 진실하려고 해도 진실하지 못합니다. 겸손하고 싶고 충성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종말이 언제 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종말은 옵니다. 

종말론적인 윤리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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