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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마가복음 5: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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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설교준비를 하는데 노트북 어둡게 보이는 거예요.
아 유나가 밝기를 만졌나보다 하고는 어두운 채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최윤실 선생님이 목사님 노트북 화면이 너무 어두워요.
이따 유진이 오면 손보라고 할께요, 그런데 조금 이따가 제가 쓰려고 하니 완전 깜깜. 난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플러그가 빠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플러그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은 플러그입니다.
내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결정됩니다.
돈, 지식, 아는 사람. 하나님께 플러그 인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합니다. 말 잘하는 것, 많이 아는 것보다 능력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능력, 유혹을 이기는 능력, 죄를 이기는 능력, 불의를 극복하는 능력, 이런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믿음을 활용하고 적용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세상의 많은 분들은 교회 와서 예배드릴 때의 믿음이 다르고 세상에 살아갈 때의 믿음이 다릅니다. 사업하고, 공부하고, 살아가는 것은 믿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관되게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왜곡해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사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북단에 있는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는데, 오늘 본문의 사건은 바로 그 회당의 회당장이었던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났습니다.
보통 유대교 회당에는 열 명의 장로가 지도를 하는데, 그 장로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회당장입니다. 그러므로 회당장은 유대교에 철저히 헌신하고, 율법에도 능통하며,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회당장이었던 야이로가 자기 딸의 병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역사를 살펴볼 때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정통 랍비 출신도 아니었고, 단지 나사렛이라는 시골 출신의 목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 그 발아래 엎드려 “내 딸을 고쳐주소서!” 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식을 뛰어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왜? 나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나는 못한다.
그리고 소문으로 들은 그 분만은 할 수 있다는 믿음.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고난 가운데 무너지고 실패하고 좌절해버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문제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다기보다는 해결하는 길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오직 믿음이 대수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 그 믿음이 대수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청을 승낙하시고, 그의 집으로 함께 가서 죽어있는 이 어린 딸을 향해서 “달리다굼!”하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소녀가 일어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하는 인생의 여러 가지 고통과 시련과 위기 앞에서 기적을 체험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예수 앞에 나와서 간구하셔야 합니다.
야이로는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어 간구했습니다.
22절, 23절 말씀을 읽습니다.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아멘.
야이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와서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간곡히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가진 문제가 어떤 것이든,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해결을 받습니다.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는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 우리의 아픔과 실패와 절망을 고침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물리치고 주님 앞으로 나아 와야 합니다.
참된 치유와 회복의 역사는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와 겸손하게 무릎 꿇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앞에 나올 때 인생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소경인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오는 순간,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예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부르짖을 때, 바디메오가 눈을 뜨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기적의 출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내가 일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편합니다.
포크레인이란 장비, 저희 집사람 초등학교 졸업 50주년 수학 여행을 갔다가 버스가 바닷가 모래밭에서 빠졌답니다. 렉카차를 부른 것이 아니라 포그레인이 오더니 차를 들어 올리더랩니다. 사람 100명이 가도 잘 되지 않을 일이 포크레인 오니까 간단히 해결되더랍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의탁하면 슥. 끝.
열심히 삽질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한번 포크레인으로 들어서 쓰시도록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예수께 나아와서 기도할 때 기적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 기적을 체험하려면 응답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25절부터 34절까지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와 함께 그의 집을 향하고 있을 때 한 군중의 무리와 부딪치게 됩니다.
“예수님이다!” 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쌓습니다. 그 중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내가 예수님의 옷깃에 손만 대도 병이 나을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 곁에 와서 아무도 모르게 손을 댔는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칭찬하십니다. 본문 34절을 보니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하고 칭찬해서 보냈습니다. 이러느라고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병 든 딸을 눕혀놓은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급했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얼른 빨리 가야지, 딸이 죽기 전에 도착해야 할텐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진정한 믿음의 테스트는 응답이 늦어질 때, 시련이 길어질 때 여러분이 얼마만큼 잘 견디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야이로가 힘들다고 그냥 내팽개치고 그냥 가버렸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우리들은 기다림을 통해서 믿음의 성숙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때로 응답이 늦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실 때 여러분의 인생에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 2:3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그리고 문제 앞에 기적을 체험하려면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오늘 회당장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열두 해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만남으로 꽤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마음은 조급하고 안타까워죽겠습니다. 지금쯤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 안타까운데 드디어 하인 한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그리곤 딸의 죽음을 전합니다. 이제 상황은 끝났다고 합니다.
숨이 붙어있을 때, 살아있을 때 의사가 필요하고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이제 아이가 죽었는데 예수님이 온들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 오늘 이 아이가 죽었다는 최악의 상황에서 야이로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성경에는 없지만 몹시 당황하고 슬펐을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야이로가 너무 놀라서 쓰러질 뻔 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당장의 마음은 아마도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말합니다.
36절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지금 너에게 최악의 상황이 왔을지라도 아니, 끝이라고 선언되었더라도 공포에 떨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의 줄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가 재미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역전승.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입니다. 믿음도 그런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밑바닥까지 갔다고 해도 이젠 끝장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언제 뒤집어질지 모릅니다. 믿음의 묘미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인간이 끝이라고 할 때부터 하나님은 시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의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면.

그의 딸이 죽었다고 알려 와도 회당장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에까지 안내합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중도에 가 봐야 뭐합니까? 애가 죽었다는데... 선생님 이제 가시지요?라고 했다면 예수님이라도 가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때로 실패할지라도, 넘어질지라도, 좌절할지라도 끝까지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집에 갔더니 역시 장례가 났으니 그 집안의 사정이 어땠겠습니까?
성경에 보니 시끄럽게 떠들면서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 나라 장례식의 공통점은 곡하는데 있습니다.
곡 소리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시끄러운 가운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잠자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이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달리다 굼”이라는 말은 두 가지 단어로 되어 있는 말인데,
먼저 “탈리다”(ταλιθα)라는 말은 작은 여자아이라는 뜻이고, “쿰”(κουμ)이라는 말은 “arise”(일어나라)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탈리다 쿰”이라는 말은 41절 하반 절에 번역된 대로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그 때 아이가 마치 잠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의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청담 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늘 인생의 문제 앞에 부딪칩니다. 좌절하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 절망의 자리, 한숨의 자리, 포기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식들이 하나같이 “이제는 끝났어.” “이제는 더 이상 소망이 없어.”하는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려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이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아침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일어나라!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서 과감히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서 선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ate: 2016/06/12 1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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