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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자의 삶 (시편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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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올해는 정말 우리 새하늘 교회 모든 형제, 자매님들이 행복해지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하고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 어디 한 번 진지하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복의 개념은 ‘오복’.

그 오복이란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의 다섯 복을 말합니다. 

‘수’라고 하면 오래 사는 것, 장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라고 하면 물질적인 넉넉함입니다. 

‘강녕’이라고 하면 심신이 건강하고 편한 것을 말합니다.

‘유호덕’이라고 하면 덕을 지켜서 얻는 낙을 의미합니다. 

‘고종명’이란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살다가 깨끗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온 복의 개념입니다.

2019년 국민일보 연말특집으로 ‘무연고사’에 대하여.

고종명의 의미, 이렇게 죽어도 모르겠구나, 

셀모임에 한 번 빠졌더니 다 우리 집에 들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이러한 복의 개념은 다 환경과 여건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 자체와 그 인격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된 사람’이 핵심인 것입니다. 

수험생들은 입시에 합격만 하면 아무 소원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들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는 돈만 좀 생기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당장 행복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합격하고 나면 또 여러 가지 고민 거리들이 생기고, 재벌들 보면 감옥에 가는 게 항상 돈을 더 마련하려고 하다가. 

그러니까 행복은 환경이나 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겨울이 좋다. 쨍하게 코끝 시린 날도 좋고,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 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 오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봄이 좋다”

“초목이 우거지고 활기에 넘치는 여름은 또 그 나름대로 좋다. 하지만 풍성한 열매 맺는 가을도 좋다”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봄이 되면 꽃샘추위도 싫고 노곤해서 싫다.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다. 가을이 되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겨울은 추워서 싫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어서 여름이 왔으면, 여름이면 어서 겨울이 왔으면 하는, 어디에 가져다 놓아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새해가 없습니다. 행복도 없습니다. 

미혼 때에는 결혼해 달라고 죽자 사자 쫓아다니다가 결혼하고 나니 “미혼 때가 더 좋았는데”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때, 어느 여건에 처해도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이 따로 있습니까? 

행복한 사람은 여건에 관계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하고, 혼자일 때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복의 문제는 복된 사람의 문제이지 복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족정들은 다 복의 근원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곧 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한평생 발붙일 만큼도 땅을 얻지 못한 채 항상 나그네로 삽니다. 자식도 많지 않습니다. 편치 않은 생을 살지만 그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창세기 30장 27절에 보면 야곱이 하란에 가서 지내는데 그 외삼촌 라반이 20년이나 같이 지내놓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창세기 39장에 보는 바 요셉에 관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지마는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집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다고. 39장 5절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여러분, 금년을 어떻게 살아가실 작정이십니까? 

살살 피해가면 기회주의자처럼 살 것입니까? 

아니면 이 사람 저 사람 원망하며 살 것입니까? 

2020년에는 그러지 맙시다. 부동자세로 서서 누가 나에게 복을 갖다주기를 바라고, 복된 여건이 와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설령 에덴동산에 들어간다 해도 쫓겨나고, 실낙원하고 말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에덴 동산처럼 좋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들이 복된 사람들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낙원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가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갖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지만 감옥에서도 그는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삼아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이 새해가 어떤 해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말씀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복있는 사람의 환경이 전혀 복스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 생각 같아서는 복된 사람의 환경이란, 악인도 없고 죄인도 없고 유혹도 없고 교만한 사람도 없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성경 본문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된 사람은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사람들 속에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혹도 없고 죄도 없는 곳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복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여기서 복있는 사람의 문제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고, 여건의 문제가 아니고, 소유의 문제가 아니고 이렇게 시작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렇게 소극적으로 말씀을 시작합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는 말은 히브리 원문대로 보면 ‘걷지 아니한다’라는 뜻입니다. do not walk. 악인의 꾀를 따라서 걷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do not stand.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do not sit.

악인과 함께 가지도 않고, 악인과 함께 서지도 않고, 악인의 무리에 섞여 앉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복이 넉넉하니까요. 복있는 사람은 자기 복과 행복에 충만한데 악인의 꾀를 따를 까닭이 없습니다. 가끔 스스로 속았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내가 속았다’하며 억울하다, 분하다 하지만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왜 속았습니까? 속인 사람도 잘못이지만 속은 죄도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욕심이 있으니까 속았습니다. 유혹에 빠진 것은 소극적으로 말해서 거기 빠지게 될 수 밖에 없는 허점이 내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내가 넉넉지를 못했습니다. 

내 행복으로 충만하다면 악인의 꾀를 좇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 행복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면 악인의 꾀에 빠질 필요도 없고 죄인의 길에 서서 서성거릴 필요도 없고 오만한 자와 같이 앉아서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왜? 내 행복으로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넉넉한데 뭐가 답답해서 죄인의 길에 선단 말입니까?

이것이 복의 소극적인 면입니다.

 

적극적으로는 본문에 보는 대로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이제 행복관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즐거워하는고 하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율법을 사랑하고 율법 듣기를 즐거워합니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 설교 듣는 것, 예배 드리는 것, 이것이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일 이 시간에 가고 싶은 데가 많을 것입니다. 

마지못해 나온 것도 복되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예배가 더 중요합니다. 

거기보다 예배드리는 이 곳이 더 행복합니다. 그래서 여기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이 행복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복된 사람이다. 그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또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딴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다고 합시다. 남들이 볼 때에는 

하찮은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준 선물이니 썩 기분이 좋습니다. 

이걸 볼 때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사람이 생각이 납니다. 

이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는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만 하면 괴로우니까요.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명상을 합니다. 

하루 종일이라도 가만히 생각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 생각만 해도 좋은 것입니다. 

 

85장.

 

이 생각 속에서 즐기는 이것이 인간적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있으면 그 속에서 내게 주신 과거의 은혜가 생각납니다. 내게 주신 약속이 생각납니다. 바로 이것이 묵상입니다. 

말씀이라고 하는 프리즘을 통하여 우리는 무한한 세계를 바라봅니다. 

앞으로 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요단강 건너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를 환하게 바라다 보는 것입니다. 

묵상할 때 여기서 지혜가 생기고 능력이 생기고 활력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초월합니다. 

자기 욕심, 자기 약점, 자기 나약함을 다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금년에도 과거가 그랬듯이 앞으로도 깜짝깜짝 놀랄 일이 계속될 것입니다. 놀랄 것 없습니다. 그렇게 역사는 흘러 왔습니다. 

다만 우리는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스스로 복된 사람이 되도록만 힘쓸 것입니다. 내가 복있는 사람만 되면 어디 가서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복된 자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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