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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결단 (여호수아 24: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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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하는 선두에 섰던 백전노장의 여호수아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하나님 앞에 가기 직전, 고별 설교를 하는 대목입니다.
오늘 말씀은 특히 이스라엘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한 시대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는 장면입니다.
가나안 땅은 이교의 문화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여호와만을 섬길 것인가의 문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땅은 정복했는데 영혼은 정복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15절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입니다. 절대신앙이고 절대순종입니다. 타협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산에 가 보시면 산을 오르는 코스가 얼마나 많은지요.
각기 코스가 다 나름대로 특징이 있고 또 매력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번에 한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많은 길이 있지만 우리는 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 언제나 어느 한 길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힘들고 고달픈 삶은 사는 까닭도 알고 보면 우리의 선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합니다.
한 사람과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귀기 시작한다면 그동안의 다른 이성과의 관계는 끊어야 합니다. 양다리는 관계를 깨어 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분명한 선택을 하라고 촉구합니다. 열왕기상 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삶이 피곤한 것은 애매한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애매한 선택을 하게 되면 눈치를 보게 됩니다.
신앙이면 신앙, 세상이면 세상이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예배 나오신 분들은 참 잘하신 겁니다.
세상의 여러 소리를 뒤로 하고 하나님을 택해서 이 자리에 나오신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많은 복 중의 가장 큰 복은 믿음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생각하면 할수록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멀고 험한 이 세상 길,

선택과 결단에서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선택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분별입니다.
중요한 것일수록 더욱더 그렇습니다. 비싼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고릅니다. 그래서 선택을 할 때는 집중력과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다른 여러 신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14, 15절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선택에 앞서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친히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 음성을 들으시고 그들을 애굽의 바로에게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 소설같고, 동화 같은 사실을 눈으로 보고 실제로 격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정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날마다 보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면서부터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식과 법을 전수하지 못하고 가나안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길을 동경하여 흉내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호통을 친 것입니다. 15절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백성들의 대답은 16절입니다.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굳은 결단으로 화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여호수아 24장에서 한 장을 넘기면 사사기가 도래하는데,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은 아주 빠르게 영적 어두움의 시대로 진입하고 맙니다. 여호수아 앞에서 했던 그들의 결단의 흔적은 너무 빨리 지워져 버리고 영적 혼란기의 사사 시대가 오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각오는 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결단한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확신의 근거는 감정만으로는 안 됩니다. 기도원 사는 아줌마.
내가 믿고자 하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선택과 결단은 확고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고, 공부했으면 합니다.
기태희 자매님과 암송, 만화 성경, 로마서.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 택하라”입니다.
선택을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단의 때를 미루지 않습니다.
구원의 사건도 시간의 문제입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타이밍을 알고 만사를 제치고 행동합니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때에 맞게 반응하는 것이 분별력입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미루면 위험합니다. 마귀가 가장 잘 쓰는 전략이 “내일 하라”는 것입니다. 미루다 보면 결국엔 못하게 됩니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사람이 내일 하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이런 결단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수아 한 사람의 결단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단호한 행동은 수만 마디 말보다 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모범이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여호수아처럼 결단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는 각오를 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단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5:1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그런데 결단과 결심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나 한 사람이 이렇게 결심하며 살아갈 때 이것이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여호수아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결단하자 이 결단의 파장이 온 이스라엘에 미쳤습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청담 교회 교우 여러분!
모두가 넘어지고 타협하고 흔들리고 있는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한 분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선택하고 결단하고 따르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선택에 제 인생을 걸고 싶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여호수아의 고백을 저도 하며 살고 싶습니다. 늘 하나님 편에 서서 좁지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Date: 2016/05/29 11: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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