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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거룩하게 (여호수아 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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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애굽에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으로 향하는데 그들의 거룩함이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저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게 됩니다.

40년 동안의 긴긴 훈련 뒤, 지도자 모세는 세상을 떠났고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그토록 가기 원했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단강을 건너 맨 처음 만나는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종종 경험하게 되는 일 가운데 이런 일이 있습니다. 시간도 충분하고, 인적 자원도 충분하고, 그래서 그 일은 당연히 꼭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변수가 나타나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일은 추진할 때 어려움 투성이에다, 여건도 좋지 않고, 물질도 시간도 부족하고, 인적 자원도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기도하고 감당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되는 것을 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인간적으로 완벽해 보여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실패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완전해 보여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됩니다. 이 경험을 풍성히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감격으로 충만하여 이제 그 여세를 몰아 그 다음에 있는 아이 성을 쉽게 보고 공격하였는데 그만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전쟁이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지만 이 전쟁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거룩한 전쟁이기 때문에 패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해서가 아니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전쟁에서 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가나안 족속이 저들이 섬기는 여호와도 별 것 아니구나 하는, 그래서 밀고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해

버릴, 위기 중의 위기입니다.

답답하고 괴로운 나머지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하루 종일

하나님의 법궤 앞에 엎디어 웁니다. 통곡을 합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는 것입니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엎드렸느냐? 엎드렸다고 해결이 되느냐, 운다고 해결이 되느냐, 통곡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그러면서 패전의 원인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패한 이유가 적이 강해서가 아니고, 전략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상황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원인은 성결의 문제요, 거룩의 문제라고 하나님께서 지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고 정황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정말로 그렇습니까?

문제의 근본은 성결에 있고 신앙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치르시는 거룩한 전쟁, 성전입니다. 그런데 아간이란 자가 있어 이 전쟁을 강도질하는 전쟁으로 의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거룩한 역사에 웬 도적질이고, 웬 강도질입니까?

여러분들, 아간이 지은 죄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전쟁을 하는 중에 본즉 좋은 외투가 있단 말입니다.

아 이 아까운 외투를 왜 불태워?’하고 아간은 외투를 취하고, 은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도 취하고, 또 금덩이가 하나 눈에 띄므로 아 이 이까운 걸 버리다니, 그럴 것 없다, 요걸 잘 감추어 놓았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에 꺼내 가지고 살아야겠다

경제논리로 보면 그런 것들을 불태우고 없애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선민의 논리로 볼 때 그거는 안 될 일입니다.

여호수아 6:18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과 금이 나를 살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역사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빗나가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탐내어 가졌나이다라고 합니다.

외투 한 벌을 보는 순간 욕심이 생겼습니다. 금덩어리를 보는 순간 탐심이 발동하였습니다. 거기서 정신이 확 돌아간 것입니다.

언제나 탐심이 문제입니다. 욕심이 문제입니다. 탐심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추해지고 더러워지고 악해지고, 이웃도 없고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돈에, 욕심에 눈이 멀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 욕심의 결과로 감추었는데라고 합니다.

감추었다는 것, 은폐하였다는 것, 하나님께서 이것을 용납치 않으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고 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서 땅을 팔아 하나님께 바치려고 서원을 했는데 땅을 팔고 보니 그 돈이 너무 많아 아깝다는 마음이 들어 반은 감춰 놓고 나머지 반만 가져와 베드로 앞에 갖다 놓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땅 판 것 전부냐?’하고 물을 때

아닙니다. 반은 놔두고 반만 가져왔습니다했더라면 문제가 없었는데

다입니다하였습니다. 반이나 바쳤는데 죽어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이것입니다. 이 부부 괜한 일 하다가 죽었습니다. 안 바치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왜 바치려다가...

거짓말 한 마디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고 하니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서 이 같은 거짓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간의 행위가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거짓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능력이 있고 없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그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정직이라고 하는 것은 잘했나 못했나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진실을 묻는 것입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느냐, 아니냐 이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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