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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명 (고린도후서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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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고고학자들이 제일 찾고 싶어하는 것 두 가지.

모세의 십계명이 담겨있는 법궤와 성경 원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원본이 아닌 사본을 번역한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사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본은 ‘사해사본’, ‘쿰란사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히브리어 사본은 거의 전부가 9-11세기에 기록된 것인데, 사해사본은 2-3세기의 것으로 현존하는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본입니다. 이 사해사본은 우연히 발견 되었습니다. 

1947년 베두인족 양치기 소년이 동굴 속으로 돌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소년이 굴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큼직한 항아리가 10여개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양피지에 글이 쓰인 두루 마리들이 수북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사해 사본의 첫 발견입니다. 

이후 고고학자들에 의해 주변 동굴에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등으로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된 850여 개의 두루마리가 더 발견되었습니다. 

두루마리를 처음 발견한 소년은 골동품상에 팔면서 횡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루마기 사본의 가치는 가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 항아리는 값싼 토기였지만 그 안에 엄청난 보물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 존재의 연약함을 질그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이라는 것은 진흙으로 빚어진 값싼 그릇을 의미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흙’은 히브리어로 ‘아다마’ 곧 ‘먼지’라는 뜻입니다. 

먼지에 불과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시자 살아있는 생명이 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각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쉽게 넘어지고 때때로 낙심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습니다. 

질그릇이란 진흙으로 구워 만든 그릇으로서 아직 유약을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윤기도 없고 깨지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무가치함을 표현할 때 질그릇이라는 

은유를 곧잘 사용합니다. 

질그릇은 쉽게 깨지고 한 번 깨지면 못 쓰게 됩니다. 그러나 이 질그릇보다도 더 약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서운한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 입은 마음은 깨진 질그릇 조각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세상에는 취급주의해야 할 물건들, 취급을 잘못하면 재앙이 되는 물건들이ㅣ 많은데 그 중에 가장 취급을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인간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행불행이 결정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훨씬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 섭공이라는 제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 문제가 있었으니, 백성들이 날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니 인구가 줄어들고, 세수가 줄어들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초조해진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날마다 백성들이 도망가니 천리장성을 쌓아서 막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 (近者悅 遠者來) 여섯 글자를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해줘야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 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연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를 움직이는 엄청난 힘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 비밀을 사도 바울은 이 질그릇 속에 보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보배입니다. 

사도 바울은 질그릇처럼 보잘 것 없는 자신도 하나님께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주셨기에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노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도 질그릇 같이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에 우리는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으면서도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사는 삶의 모습은?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으면 

8절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욱여쌈을 당한다는 말은 포도즙을 짤 때 포도를 짓누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에 ‘고혈을 짜내다’라는 표현처럼, 극심한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짓눌릴 때가 있습니다. 좌우 앞뒤가 꽉 막혀서 정말 앞이 캄캄하고 숨조차 쉬기 어려워 몸부림칠 때도 있습니다. 

죄와 세상의 유혹, 질병이 우리를 둘러쌉니다. 혹은 생활의 염려와 근심, 불안과 초조, 절망이 우리를 둘러싸기도 하고 합니다. 

그때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싸우려고 하다가는 우리의 질그릇은 여지없이 깨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문제는 달라집니다. 믿는 성도들은 고통과 아픔으로 짓눌려져도 내가 깨지지 않고 터지지 않는 것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으면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삶이 됩니다.

욱여쌈을 당하는 것이 외부적인 불안과 고통이라면, 답답한 일을 당한다는 것은 내적인 고통과 근심과 걱정, 그리고 불안으로 인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답답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유대 여호사밧 왕 때 갑자기 암몬, 모압 연합군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대적할 능력이 없으니 여호사밧 왕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래서 답답한 심정을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역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지금은 미국, 중국, 일본 눈치 볼 때가 아니라 기도할 때

 

어느 모임에 가느라 버스를 탔더니 

NO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민중은 살아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해도 환난을 당할 수 있고, 선한 일을 했는데도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주님을 잘 섬기고, 주일 성수하고 십일조도 잘했는데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생선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뱀이 나타나기도 하고, 떡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돌이 나타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할 때 분명히 깨달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어떤 큰 일을 행하시려고 하시는구나! 

어려운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찬. 나를 통해서 기적적인 일을 하시려고 하실 때에 도저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로부터 시작하신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쓰시기 위해서 노예로 팔리게 하셨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40년 동안 양떼를 치게 하셨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 바울을 로마 감옥에 가두셨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 현실 속에서도, 그 안에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7절)이 있기 때문에 “싸이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버려지지 아니하고” “망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어려운 인생의 고난과 맞닥뜨린다 해도,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피할 길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도 바울의 또 다른 고백은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36-37절에 보면 “조롱, 채찍질, 결박, 옥에 갇힘, 돌로 치는 것, 톱으로 켜는 것, 칼에 죽는 것, 궁핍, 환란, 학대”등의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한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 버림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버림을 당하나 하나님께로 부터는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찬의 승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중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것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들의 이 썩을 몸에 나타난다고 오늘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니 않습니까? 

이 말씀은 아무리 죽음이 다가와도 우리 속에 있는 부활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넘치게 붙잡아 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확신으로 삽니다.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섭니다. 

 

지금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 어디에도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까? 조용히 앉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속에 간직된 그 엄청난 믿음의 능력과 예수의 생명을 이제 확신하십시오. 그리하면 헤쳐 나가지 못할 문제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 놓여 있다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로 도전해 가십시오. 

여러분 속에는 보배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보배의 능력으로 마침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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