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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하시는 하나님 (역대하 1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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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에는 사도행전을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한 사도들의 행적인데 특히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1차 2차 3차 지도를 가지고 카톡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바울’입니다.

이 영화는 바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는 아니지만 사도 바울이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가르침, 기독교의 기본정신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것이 아주 감동적이고 중보기도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깨끗한 신앙을 보게 됩니다. 순수하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 교회 화장실, 자기 생각대로.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특히 16장, 제가 가본 도시들이 많으니까 더 재미.

생각해 보니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하고 세 번 여행.

이스라엘, 터키 그리스, 이태리, 이태리 다녀오면서 이제 전 교인이 가지 않으면 가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가고 오고 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교인들과의 추억이 있어서 참 좋았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 교회는 수련회가 없어서 추억을 만들고자 남이섬에서 야외예배.

경비가 좀 들기는 했지만 아주 좋은 시간.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벌써 11월 세 번째 주일입니다. 

이제 금년도 겨우 40일 정도 남았습니다.  

년 초에는 이런 저런 계획도 세우고 제법 그럴듯한 결심도 했었는데, 

과연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해 봅니다. 

뿌듯하게 잘 보내셨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대개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세월을 보냈다는 자책감을 갖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든지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무리를 잘하여 보람된 한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라톤에 있어서 처음 출발도 좋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골인점에 먼저 도착하는 것입니다. 출발할 때에 경쾌하게 시작해서 선두를 유지하면서 달리던 선수가 반환점을 돌고 골인지점이 다가오면서 선두를 내어주고 뒤로 처지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신앙인들 중에도 이렇게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용의 머리처럼 거창하게 잘 하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뱀의 꼬리처럼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용두사미라고 하지요.

 

오늘 본문을 보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용두사미 같은 인생을 살았던 남유다의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솔로몬의 증손자 아사입니다. 

솔로몬의 증손자,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그의 인생 초반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축복 받은 삶을 살았지만, 

후반에 가서는 신앙이 변질되어 말년을 비참하게 보냈던 왕입니다.  

전반에 잘 살았어도 후반에 가서 어렵게 살면.

전반에 좀 어려워도 후반에 잘 살면. 

모든 게 다 그렇지요. 그런데 미래는 현재가 결정합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사느냐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현재의 종교라는 하는 겁니다. 

과거에 아무리 기도 많이 하고, 은혜 많이 받았어도,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현재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랑도 현재가 중요한 거지요? 사랑한다가 중요하지 사랑했노라, 사랑했었지

아사 왕의 인생을 교훈 삼아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사왕은 역대하 14-16장에 걸쳐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선친 아비야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먼저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당시 남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가 성행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우상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일제히 척결했습니다. 

더 나아가 15:16을 보면 태후가 우상숭배 한다고 폐위까지 시킬 정도였습니다. 조정 안팎의 부정부패를 척결했고, 군대를 강화하고 국방을 든든히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물론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로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스의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올 때 당시 유다의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대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14:11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사랴에게 말씀을 주시어 예루살렘으로 개선하는 아사를 만나 전하게 하셨습니다. 15:2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의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순서는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이미 오셨기 때문에.

15:15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15:19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그런데 16장을 보면 안타깝게도 이야기가 반전됩니다. 거듭 실패하고 

마침내 아사가 발의 병, 발병나서 죽게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6장을 보면 북 이스라엘의 바아사가 남 유다를 침공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 구스와 전쟁을 치를 때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을 의지합니다. 아람이라는 강대국, 시리아.

지난 주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

믿은 내가 잘못했구나, 교인들에게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라고 수 없이 가르쳤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힙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신앙이 약해질 때의 특징은 생각이 많아집니다. 

사도 바울, 단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담담합니다. 디모데후서 15: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래서 주변의 강대국이었던 아람에 파병을 요청합니다. 

그 결과 북 이스라엘의 침공을 격퇴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아람에게 이스라엘 침략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이럴 때 선지자 하나니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합니다. 9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감찰하십니다. ‘감찰한다’는 말은 주님의 눈이 온 땅 여기저기를 두루 다니시면서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어디서든, 어떤 곳에서든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 항상 찬양하는 사람 ….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전심으로”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집중해서’라는 뜻입니다. 

살다 보면 정말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하려고 하다보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일편단심으로’라는 뜻입니다. 

공동 번역에서는 “야훼께서는 당신께 일편단심인 사람에게 용기를 주시려고 온 나라를 두루 살피고 계십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일편단심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본문의 아사 왕은 시작은 훌륭했으나 나중에 가서 주님과 그 말씀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9절 후반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아람과 동맹함으로 전쟁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전쟁이 계속되어 골머리를 앓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사왕의 믿음이 식어버리자 나타나는 현상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됩니다. 이때 아사의 태도가 10절에 나오는데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초기에는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켰으나, 이제는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를 핍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언제나 좋은 것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시지 않습니다. 

좋은 의사는 우리가 병들었을 때, 병들었다고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수술할 것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니의 권고를 무시한 아사왕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복있는 사람, 다윗은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   

 

그 후 아사의 발이 병듭니다. 

‘발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통풍으로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여호와께(는)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만) 구하였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즉 의사의 손을 빌더라도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했어야 했는데 아사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이제는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버렸다는 명백한 증거였고, 그것이야말로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무슨 병에 걸렸든지 간에 의사의 치료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시는 대표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절에는 2년 후에 아사 왕이 결국 죽고 말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죽음의 원인은 인본주의에 의한 교만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신본주의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제일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도움을 구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인생 초반에는 신앙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본주의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그가 형통하고 태평성대를 누렸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기 힘으로 이룬 줄 착각하고 하나님을 멀리 했던 겁니다. 

이래서 성경은 늘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줍니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교만해진 겁니다. 인간은 결코 홀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셔서 서 있음을 명심해야 됩니다. 

그래서 역사가 토인비는 세계 문명사를 연구하면서 하나의 법칙과도 같은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성공한 자는 그 성공한 것으로 망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사왕은 한 마디로 신본주의로 시작하였다가 인본주의로 끝나버렸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쳤습니다. 

그의 통치 말년에는 하나님보다는 인생을 의지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선지자까지 옥에 가두는 불신앙으로 병들어 쓸쓸히 죽어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하늘 교회 교우 여러분! 

올해도 지금까지는 어떤 모습이었든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올 한해 남은 기간,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고,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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